Honey / Caribou

  

실은 일렉트로닉 음악은 한동안 내가 기피하던 장르였다. 가장 즐겨 듣던 때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달라질 때 선호하는 음악 장르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전자 음악이 가진 유달리 기계적인 면모나 청자와의 정서적인 유대를 저하하는 듯한 차가운 속성은 나로서는 한동안 그리 가까이하고 싶은 종류가 아니었다. 그러다 인생의 어떤 국면이 변화하고, 나 스스로 활동성과 활력을 적극적으로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일렉트로닉 음악을 찾게 되었다.

Caribou의 <Honey>는 그 무렵 마주하게 된 업비트의 댄스 음악 중 하나다. 히트곡 Can’t do without you에서 선보인 서정적 발라드의 일렉트로닉 음악에 이어, 개인적 고뇌를 많이 담아낸 2020년 앨범 <Suddenly>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가 AI로 상당 부분을 채운 보컬과 댄스 튠을 매치한 <Honey>로 돌아왔다. 웹에서 리뷰들을 찾아보니, AI의 도입에 대한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것 같고, <Suddenly>에서 보여주었던 감정적 깊이가 <Honey>에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들이 보였다. 어찌 됐든 뮤지션에게 AI의 도입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Caribou라는 예명으로 활동해오고 있는 캐나다 출신 뮤지션 댄 스네이스(Dan Snaith)가 수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힌트를 제공하는지도 모르겠다. 수학자의 생각으로는 어떤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고, 보통의 보컬리스트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개선 방법을 찾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보컬 범위나 스타일이 제한적이라고 느꼈고, AI 기술을 동원해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AI를 통해 자신의 보컬을 변주하여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여성 보컬이나 어린아이–인 것처럼 증식할 수 있다면, 그 기술은 머지않아 피처링을 대체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피처링이 꽤 오가닉한 감성의 전통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AI 보컬 사용이 일반화되면 많은 뮤지션들은 피처링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이 앨범은 충분히 그런 미래형의 ‘위협’을 동반하는 문제작에 가깝다. 뮤지션은 AI를 이용해 자신의 보컬을 변주해 나타내는 것을 자신과 AI 사이의 ‘연금술(Alchemy)’이라 여겼다. (https://www.jambase.com/article/caribou-album-honey-come-find-me-ai-single) AI 기술을 도입한 변화인 <Honey>에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Daphni가 보여줘온 샘플 기반의 댄스 음악을 접목한 것은 복잡함보다는 단순함, 무거움보다는 가벼움을 택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절충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댄 스네이스가 <Honey>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즐거움’에 맞닿아 있다. 춤을 추면 우리는 즐겁다. 혹은 즐거우니까 춤을 춘다. 칼군무가 아니어도 좋다.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발차기도 괜찮다. 뮤직비디오 촬영 겸 홍보용 컨셉트인 머리가 살짝 큰 비정상 비율의 아바타는 웃음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해도 이 음악과 전반적 컨셉트를 그저 코미디로서 소화할 수는 없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변조한 Broke my Heart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깊은 상심에 빠진 사람에게 ‘최대한 장난을 칠 것’이라는 처방이 내려진 것 같은. 장난의 동기인 ‘깊은 상심’이 밑바탕이기에 그 터무니없는 장난을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기분. 어린 시절 뮤지션이 처음으로 라디오에서 접한 일렉트로닉 음악 'Pump up the volume'의 샘플을 사용한 Volume은 이 앨범이 가진 가벼움과 위트 어린 기조를 상기하면 약간 다크하거나 진지한 톤을 유지하는 곡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도 원곡에 비하면 훨씬 소프트하다. 모르고 들으면 그렇지 않겠지만 알고 들으면 약간 소름 돋을지 모를 여성의 목소리로 대체된 Do Without you, Come find me는 멜로우한 비트와 약간 멜랑콜리한 멜로디의 결합 위로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제법 사랑스러운 트랙이다. 앨범은 후반부로 갈수록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트랙들을 선보인다. Over now, Campfire, Only you에 이어 마지막 곡 Got to change에 이를 때까지 대체로 말랑하고 포지티브한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난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 그리고 나는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아(And I know it’s got to change but I / And I know it’s got to change)’의 기계적인 되풀이 속에서 작은 망설임을 읽을 수도 있다.




AI는 이미 현대인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다. 음식점이나 상점만 가보아도, 우리는 캐셔를 대체하는 무인계산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댄 스네이스는 음악이라고 현실과 크게 다를 것 있겠느냐는 입장에 서 있는 것 같다. Come find me 뮤직비디오에서 그의 아바타가 춤을 추면서 런던의 거리와 일상적 장소들을 누비며 다니는 상황이 바로 그러한 생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Caribou의 <Honey>는 본연의 서정적이며 순박한 멜로디에 댄스 튠과 AI 보컬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풀지 않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한 센스가 눈길을 끈다.



-참조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4/oct/03/caribou-honey-review-this-ai-aided-album-is-dubious-on-so-many-levels

https://ra.co/reviews/3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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