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5의 게시물 표시

Barbie the Album / Various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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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감독의 작품인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의 사운드트랙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이 여성 감독의 작품 세계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여성으로서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한국인인 내게는 바비보다 국산 브랜드에서 나온 미미나 쥬쥬가 더 친숙했던 것 같다. 아무튼,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인형이 바비든 미미든 쥬쥬든 간에 중요한 것은 바비 인형이 가진 상징과 본질일 것이다. 어린 시절 역할놀이의 수단이자 여성 이미지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바비는 소녀들이 꿈꿀 수 있도록 하는, 가까이에 머무는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 상품화를 부추기거나 너무도 완벽한 미의 기준을 제시한 탓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바비>는 2023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드는 생각은 여전히 구체적으로 남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바비 인형이 가진 상징을 총동원하고 인간들의 사회에 빗대어 ‘가부장제’에 짓눌려 잃어버리거나 희미해진 여성의 주체성의 회복을 형상화하는 풍자성인데, 그것이 그려진 방식이나 취하는 어조에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시각과 감성이 살아 있다고 느낀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조금 삐딱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다정하며 온기 있는 낙관적인 시선. 전투는 하되 위협적인 무기는 버리는 것. 결국 남는 것은 승부에 따른 결과이고, 슬픔과 배려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이다. 바비랜드라는 장소 자체가 이미 과장된 현실로, 현실에 기댄 허상으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이 비현실적이라 해도 줄거리에서 크게 비약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전투, 파티, 현실과 공상 등의 소재들을 상징에 대한 접근과 해석으로서 다룬다. 바꿔 말하면 피상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지만 소재들의 내부에 깊이 배인 알레고리와 패러디화로 인...

I quit / H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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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아니지만, 하임의 새 앨범 소식이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달 전 일로 제법 기억이 선명하다. 순차적으로 공개된 신곡들을 듣고 그룹의 지난 음악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게 바로 하임의 음악이지’ 하는 익숙한 회상과 함께 희미한 인상이지만 음악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아니, 가볍다기보다는 뭔가 부여잡고 있던 것을 놓아버린 듯, 음악에 실려 있던 힘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는데 그게 자연스러워서 한결 더 듣기 좋았던 것 같다. 하임의 이전 앨범 <Women in Music Pt. III>와 <Something to Tell You>의 뮤직비디오들을 연출해 온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은 이번 앨범의 뮤직비디오는 담당하지 않고 앨범 커버 촬영만 했다. 그 너머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한, 영화의 스틸 컷 이미지 같은 앨범 커버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꽤 저돌적인 발언처럼 느껴지는 ‘I quit’이라는 타이틀도 새 앨범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요소였다. ‘I quit’이라는 타이틀은 자매들이 유년기에 즐겨 보던 영화 <댓 씽 유 두>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무명에서 시작한 한 밴드가 메이저 데뷔 과정을 거치는 이야기로, 영화에서 보컬인 주인공이 우울하고 감정적인 노래들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레이블 매니저가 그 반대의 것을 요구하자, 망연자실한 주인공은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하려다 말고 불현듯 ‘I quit, I quit…’ 하며 짐을 챙겨 퇴장한다. 회사 생활에 부대낄 때, 혹은 지속적으로 해오던 일이나 맺어 오던 관계에 대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 ‘이제 그만두겠어’라고 선언하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는가.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기에, 일단 이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하임의 네 번째 앨범 <I quit>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그룹이 오랜...

Currents / Tame Imp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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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겠지만, 음악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길 때보다 혼자 듣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케빈 파커(Kevin Parker)의 사이키델릭 프로젝트 그룹 테임 임팔라의 음악은 그런 면을 더욱 부각시키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사이키델릭의 소용돌이가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무너뜨리는 사운드에 무너진 내면 풍경을 그린 노랫말을 더한 그들의 음악은 현실에 부딪쳐 절망적 기분을 맛볼 때 든든한 동지가 되어주는 것 같다. 테임 임팔라의 1집과 2집의 타이틀은 “Innerspeaker”와 “Lonerism”이다. 각각 ‘내부의 목소리’, ‘개인주의적 성향’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가사도 주로 이와 비슷한 맥락을 다루고 있다.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달달하면서도 멜랑콜리한 멜로디를 엮어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를 높이면서 감성적 측면의 동요를 일으킨다. Desire Be Desire Go의 가사, ‘워, 욕망을 그대로 둘 거야, 욕망을 내버려둬 / 내가 현실을 직면할 수 있을까? / 매일 매일 왔다 갔다, 그게 뭘 위한 거지?(Whoa, I’ll let desire be, desire go / Oh, dare I face the real world? / Every day, Back and forth, what’s it for?)를 살펴보면, 현실 세계와 불화하는 화자의 문제의식을 음각해 내고 있다. 고독이 축복이라 말하는 Solitude Is Bliss에서 화자는 발아래에 금이 간 도로를 내려다보며 그것에 대해 덜 신경 쓰게 된다고 말한다. 그곳에 자신을 바라보는 이가 아무도 없고, 그래서 마음껏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볼 수 있다고. ‘누구도 내 느낌에 근접하지 못할 것(Oh, you will never come close to how I feel)’이라며 내면 속, 그리고 음악 속에 깊이 자리한 자신과 외부를 구분 짓는 여기에선 약간의 나르시시즘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