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s / Tame Impala

개인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겠지만, 음악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길 때보다 혼자 듣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케빈 파커(Kevin Parker)의 사이키델릭 프로젝트 그룹 테임 임팔라의 음악은 그런 면을 더욱 부각시키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사이키델릭의 소용돌이가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무너뜨리는 사운드에 무너진 내면 풍경을 그린 노랫말을 더한 그들의 음악은 현실에 부딪쳐 절망적 기분을 맛볼 때 든든한 동지가 되어주는 것 같다.
테임 임팔라의 1집과 2집의 타이틀은 “Innerspeaker”와 “Lonerism”이다. 각각 ‘내부의 목소리’, ‘개인주의적 성향’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가사도 주로 이와 비슷한 맥락을 다루고 있다.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달달하면서도 멜랑콜리한 멜로디를 엮어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를 높이면서 감성적 측면의 동요를 일으킨다.
Desire Be Desire Go의 가사, ‘워, 욕망을 그대로 둘 거야, 욕망을 내버려둬 / 내가 현실을 직면할 수 있을까? / 매일 매일 왔다 갔다, 그게 뭘 위한 거지?(Whoa, I’ll let desire be, desire go / Oh, dare I face the real world? / Every day, Back and forth, what’s it for?)를 살펴보면, 현실 세계와 불화하는 화자의 문제의식을 음각해 내고 있다. 고독이 축복이라 말하는 Solitude Is Bliss에서 화자는 발아래에 금이 간 도로를 내려다보며 그것에 대해 덜 신경 쓰게 된다고 말한다. 그곳에 자신을 바라보는 이가 아무도 없고, 그래서 마음껏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볼 수 있다고. ‘누구도 내 느낌에 근접하지 못할 것(Oh, you will never come close to how I feel)’이라며 내면 속, 그리고 음악 속에 깊이 자리한 자신과 외부를 구분 짓는 여기에선 약간의 나르시시즘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15년 나온 <Currents>의 제작 배경에 대해 설명할 때 케빈 파커는 이전의 두 정규 앨범들에 비해 좀 더 미니멀하게 풀어 가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레코딩뿐만 아니라 일상의 여러 테크니컬한 발전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가능성들이 생겨난 것을 의식하며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이었지만 Fleetwood Mac과 Bee Gees 같은 그룹들이 보여준 음악에 대한 순수성과 정수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집중하며. 결과는 기타보다 신시사이저의 비중을 더 늘리고 비트가 가미된 신스 팝에 근접한 사운드로 드러났다. 개인적으로는, 테임 임팔라의 초기 음악을 두루 들어보았을 때 비틀즈의 음악 중에서도 유독 사이키델릭한 성향의 것들, 특히 <Revolver> 같은 앨범이 떠오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테임 임팔라의 음악에서는 케빈 파커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한 바 있는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슈퍼트램프(Supertramp) 등의 그룹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다.
오프닝 트랙 Let It Happen은 금속성 패턴과 박력 있는 비트로 시작과 동시에 청자를 <Currents>의 무대에 귀속되도록 인도하는 저력이 있다. 3분 정도 흘러 브릿지 부분에 이르면 질서정연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공간의 연속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충분히 혼돈스럽지만 혼란스럽지 않은 명쾌함이 생명인 인상적인 첫 트랙이었다.
자기 자신의 메시지 한 토막이 무한히 루프 되는 장면을 묘사하는 듯한 Nangs. 몽환성이 극대화된 짧은 곡으로 이 노래가 통째로 하나의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Yes I’m Changing은 나직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이 곡과 다음 곡 Eventually는 둘 모두 이별의 징후를 그리고 있다. ‘우울해하지 마, 널 기다리는 다른 미래가 있으니까’, 라며 연인을 위로하거나 ‘마침내, 내가 더 행복해지고 너도 그럴 거’라 말하는 온화한 톤을 잃지 않으며 마음의 붕괴를 지나쳐간다.
Nangs와 Gossip은 보편적으로 노래에 대해 기대하는 것들이 순차적으로 담기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트랙들로 이 곡들은 어떤 단편적 분위기만을 드러내는 것에 충실한 덩어리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곡들은 진지함이 넘치는 트랙들 사이에서 질서 있는 흐름을 다소 방해하며 앨범을 통째로 들을 때 전환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문장에 비유하면 쉼표라고 할까. Gossip은 다음 트랙 The Less I Know the Better가 담고 있는 무거운 이야기의 프렐류드 같은 역할을 한다.
The Less I Know the Better는 Let It Happen과 Eventually에 이어 이 앨범을 대표하는 필청 트랙 중 하나라 생각된다. 실제로 이 곡은 호주의 라디오 방송국 Triple J가 선정한 2010년대에 발표된 가장 인기 있는 100곡(Triple J Hottest 100 of the 2010s)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상대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서 삼각관계의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가사로 몰입도를 높인다. ‘더 적게 알수록 좋다’는 말이 보통 좋지 않은 상황에 쓰이듯, 이 이야기는 약간의 비극을 그려낸다. 절망, 분노, 배신, 이기심 등 어긋난 사랑이 촉발시킨 감정들을 녹여내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기타 라인과 베이스 리프, 살짝 아래로 흘러내린 별빛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 로즈(Rhodes) 피아노 멜로디가 긴밀히 결합되어 잘 잊히지 않는 사운드 풍경을 완성했다.
Love/Paranoia는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와는 별개로 회한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런 제법 멋진 가사를 가졌다. ‘그리고 갑자기 난 가짜가 되어버렸어 / 문제를 가진 유일한 한 사람 / 진정한 사랑은 내 안에서 문제를 끌어내지 / 가장 최악인 나를, 난 이제 알아 / 우리가 바닷가에 함께 있던 그때를 기억해? / 난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었어 / 세상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곳에 있었어(And suddenly I'm the phony one / The only one with a problem / True love is bringing it out of me / The worst in me, and I know now / Do you remember the time we were / The time we were by the ocean? / I didn't care if it was day or night / The world was right where I wanted)’.
한 앨범이 담고 있는 건,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잘 파악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뮤지션 혹은 그룹이 막 통과한 삶의 한 단락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장의 앨범을 통해 그저 무언가가 지금 막 우리 곁을 지나갔음을 미세하게 감지할 수 있을 뿐이겠지만, 그것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의 무언가를 변화시키거나 혹은 방향을 살짝 돌려놓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영향은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가하는 사랑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앨범이 좋은 건 너무 길거나 마치 정지된 일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아픔의 긴 순간들을 ‘흐름’ 속으로 전송해 보낸 능력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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