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quit / HAIM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아니지만, 하임의 새 앨범 소식이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달 전 일로 제법 기억이 선명하다. 순차적으로 공개된 신곡들을 듣고 그룹의 지난 음악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게 바로 하임의 음악이지’ 하는 익숙한 회상과 함께 희미한 인상이지만 음악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아니, 가볍다기보다는 뭔가 부여잡고 있던 것을 놓아버린 듯, 음악에 실려 있던 힘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는데 그게 자연스러워서 한결 더 듣기 좋았던 것 같다.
하임의 이전 앨범 <Women in Music Pt. III>와 <Something to Tell You>의 뮤직비디오들을 연출해 온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은 이번 앨범의 뮤직비디오는 담당하지 않고 앨범 커버 촬영만 했다. 그 너머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한, 영화의 스틸 컷 이미지 같은 앨범 커버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꽤 저돌적인 발언처럼 느껴지는 ‘I quit’이라는 타이틀도 새 앨범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요소였다. ‘I quit’이라는 타이틀은 자매들이 유년기에 즐겨 보던 영화 <댓 씽 유 두>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무명에서 시작한 한 밴드가 메이저 데뷔 과정을 거치는 이야기로, 영화에서 보컬인 주인공이 우울하고 감정적인 노래들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레이블 매니저가 그 반대의 것을 요구하자, 망연자실한 주인공은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하려다 말고 불현듯 ‘I quit, I quit…’ 하며 짐을 챙겨 퇴장한다. 회사 생활에 부대낄 때, 혹은 지속적으로 해오던 일이나 맺어 오던 관계에 대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 ‘이제 그만두겠어’라고 선언하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는가.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기에, 일단 이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하임의 네 번째 앨범 <I quit>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그룹이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 온 프로듀서 에리얼 렉트샤이드(Ariel Rechtshaid)의 기여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채로, 그의 부재로서 또 다른 좋은 면들이 발견된다.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의 초창기 멤버이자, 하임의 이전 앨범들에서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바 있는 로스탐 배트매글리즈(Rostam Batmanglij)가 이번 작업의 주요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한 인터뷰에서 알라나 하임은 이 앨범에 대해 그들이 ‘원하는 사운드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 설명했고, 다니엘은 ‘로스탐과의 작업은 빠르고 역동적인 부분이 있다’며 새로운 작업 환경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세 멤버의 욕망과 이상향들이 이 앨범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래 지속되던 연인 관계가 정리되고 세 사람이 각자 싱글이 되어 수다스럽고 엉망진창인 십 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과 ‘I quit’ 마인드가 가져다주는 약간의 해방감이 뒤섞인 에너지와 함께. <I quit>은 각 멤버들의, 그리고 그룹으로서의 주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자전적 성향의 새 앨범으로 나타났다.
첫 곡 Gone은 송라이팅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쓰인 곡이지만 이색적인 도입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오가닉한 사운드와 느슨한 보컬, 그리고 블루지한 기타 솔로와 유연히 결합하는 록 사운드를 접목한, 이완되면서도 다이내믹한 창의적 절충이 묻어난다.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Freedom! ‘90이 샘플링 되었는데, ‘freedom’을 외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Now it’s time에서는 U2의 Numb 기타 리프를 가져와 이 곡은 U2 팬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질 것 같다.
Relationships은 간결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듣는 재미를 더하는 이 앨범의 대표 트랙 중 하나다. 로맨스의 달콤한 순간을 묘사한 All over me와는 다른 분위기로,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화자를 앞세우고 있다. 상대를 사랑하지만 그와의 관계는 화자를 끊임없이 자문하도록 만든다. 록보다 팝과 알앤비 색채가 더 짙은 이 트랙의 숨은 공신은 아무래도 베이스 연주인 것 같다. 그동안 쌓아 올린 개별 트랙들이 빠지고 드럼과 보컬만 남은 브릿지 부분에 더해지는 베이스 라인이 없었다면 이 곡은 훨씬 딱딱하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Relationships은 간결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듣는 재미를 더하는 이 앨범의 대표 트랙 중 하나다. 로맨스의 달콤한 순간을 묘사한 All over me와는 다른 분위기로,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화자를 앞세우고 있다. 상대를 사랑하지만 그와의 관계는 화자를 끊임없이 자문하도록 만든다. 록보다 팝과 알앤비 색채가 더 짙은 이 트랙의 숨은 공신은 아무래도 베이스 연주인 것 같다. 그동안 쌓아 올린 개별 트랙들이 빠지고 드럼과 보컬만 남은 브릿지 부분에 더해지는 베이스 라인이 없었다면 이 곡은 훨씬 딱딱하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The Farm은 앞선 트랙들과는 사뭇 다르게 포크 분위기가 중심이 된다. Lucky stars에서는 빈티지 라디오의 잡음을 연상케 하는 기타 노이즈를 특징으로 해, 복고적이며 감미로운 드림팝 스타일의 트랙을 선보인다. Everybody’s trying to figure me out은 다니엘이 투어 후 공황발작을 겪고 쓰게 된 곡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화자의 불안정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결국 화자는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거야(You think you’re gonna die, but you’re not gonna die)’라고 중얼대며 적절한 탈출구를 찾아낸다. 드럼과 나란히 진행되는 이 노래가 그룹의 과거 음악의 사운드를 닮아 있는 듯해 특히 더 애착이 갔다.
앨범의 모든 트랙이 공개되기 전 몇 곡만 들어보았을 때, 그저 하임의 새 앨범이 나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앨범 전체를 가만히 들어 보니, 단지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화와 시도가 담겨 기존의 음악들과 차별화되는 전환점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에 머물기를 과감히 그만두고 미래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폴 토마스 앤더스 감독이 촬영한 라이브 뮤직비디오로 2집 <Something to Tell You>의 수록곡들이 담겨 있다
-참조
https://i-d.co/article/haim-relationships-single-interview/
https://youtu.be/Yk0x7jAtbEs?si=47ew0Sre7dDy7WeX
https://youtu.be/fRS0SVkWRyA?si=lS0l4hVgEeW6txvU
https://i-d.co/article/haim-relationships-single-interview/
https://youtu.be/Yk0x7jAtbEs?si=47ew0Sre7dDy7WeX
https://youtu.be/fRS0SVkWRyA?si=lS0l4hVgEeW6tx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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