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to Die / Lana Del Rey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꿈꾸기, 몽상하기, 일탈하기, 다른 패턴에 따라 움직여 보기, 문득 충동에 따르기. 음악 듣기, 책 읽기, 영화 감상 등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 관건은 얼마나 오래, 그리고 깊이 빠질 수 있는가 하는 것. 유감인 점은 몽상에 깊이 빠질수록 그만큼 현실에 무뎌져 현실적 상황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확실히 숨돌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는 몽상가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몽상가는 남다른 행복을 만끽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 아무런 방해가 없는 몽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누빌 수 있으니까. 라나 델 레이의 음악을 듣는 것? 그건 확실한 일탈이 된다. 그녀는 한두 번의 앨범 컨셉에 그칠 수 있는 과거 특정 시대 분위기인 5-60년대 할리우드 빈티지를 ‘라나 델 레이’의 주요 무대로 설정해 트립합 사운드와 감성적인 가사를 녹여 내 많은 호응을 끌어냈다. 이처럼 두드러진 특색이 있고 매혹적이며 반항적 기질이 묻어나는 그녀의 음악을 접할 때는 누구든 ‘지금 현재’의 감각에 대해 무뎌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라나 델 레이는 직접 자신의 음악을 ‘할리우드 새드코어’라 정의한 적이 있다. ‘새드코어’는 ‘슬로우 코어(slow core)’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인디 록과 얼터너티브 장르에서 생겨난 느린 템포와 미니멀한 구성, 감성적인 가사 등으로 이루어진 곡들을 말한다. ‘sad’가 말해주듯 새드 코어는 슬로우 코어보다 한 단계 더 우울한 경향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라나 델 레이의 ‘할리우드 새드코어’ 음악은 어떤 것일까? 느낌부터 늘어놓자면 그녀의 음악은 삐딱하고, 비주류적이고, 몽상적이고, 글래머러스하고, 기본적으로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비유하자면 그녀의 음악을 듣는 일은 앨리스가 토끼굴속으로, 잘 가늠 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과 같고, 그녀의 노래는 떨어지는 것에 가속도를 붙이는 주술과도 같다. 첫 트랙 Born to Die를 들어 보자. 그녀는 그녀가 동승한 비관주의 논리로 당신을 부추기는 마녀 역할을 맡는다. ‘마지막 말을 골라봐 / 왜냐하면 우린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까(Choose your last words, this is the last time / ‘Cause you and I, we were born to die).’ 그녀는 빈정대는 투로 당신을 자극한다. ‘이리 와 위험을 감수해 봐 / 퍼붓는 빗속에서 네게 키스하도록 해줘 / 넌 네 연인이 제정신이 아닌 걸 좋아하잖아(Come and take a walk on the wild side / Let me kiss you hard in the pouring rain / You like your girls insane, so)’ 일종의 러브 신인 이 장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금기와 타락, 일그러진 욕망 따위다.


주제를 관념적으로 다룬 Born to Die는 음악적으로도 웅장한 스케일을 취해 ‘할리우드 새드코어’ 타이틀에 걸맞은 드라마틱한 연출을 했지만, Diet Mountain Dew와 National Anthem 같은 곡은 비트와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스트릿 분위기를 풍기는 힙합 스타일을 선보이며 눈에 띄는 변화를 추구했다. ‘소다’가 가진 정크푸드 이미지처럼 주제 자체도 가볍고 소모적인 Diet Mountain Dew. ‘넌 나에게 해로워(You’re no good for me)’를 반복하면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쁜 남자’와의 일회적 데이트를 다루며, 달고 자극적인 것을 본능적으로 쫓는 어리석음을 그려낸다. 

National Anthem은 라나 델 레이의 필터가 드리워진 B급 세계 양식으로 60년대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풍자한다. 중심이 되는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1963). 라나 델 레이는 마릴린 먼로와 재클린 케네디 1인 2역을 소화하고 래퍼 ASAP Rocky가 케네디 대통령 역을 맡아 이 뮤직비디오는 진정성보다 블랙코미디적 연출에 기대고 있다. 이 비극적 사건과 삼각관계는 할리우드 빈티지를 메인 컨셉으로 취한 라나 델 레이에겐 지나칠 수 없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Radio에서 그녀는 노래한다. LA로 온 그녀의 삶은 이제 계피처럼 달콤하다고, ‘내가 살아가는 이 망할 꿈처럼’. 그녀는 이제 그런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한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계피는 마냥 달지만은 않고 쓰고 매운맛을 동반한다. 그리고 노래 속에서 계피는 ‘sugar venom(설탕 든 독액)’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어휘들은 궁극적으로 화자가 love-sweet의 단순한 등식을 수용하지 못하는, 건강한 애정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결핍이나 과잉으로 로맨스를 갈구하는 방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일상에서 잘 상기하지 않는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과감한 타이틀. 커버 이미지는 로우 앵글로 주제와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음악 앨범의 커버로서는 부자연스러운 편인데도 이쪽을 고수한 것은 영화적 컨셉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다투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런 것이 자본주의의 결정적 허상이라도 되는 듯 다수의 경향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의도적인 뒷걸음질로 시대를 초월하는 것은 결국 체제에 저항하고자 하는 심중을 드러내는 일에 가깝다. 


병든 사랑의 이미지를 담아낸 <Born to Die>. 이 앨범은 쓴맛이 나는 열매를 먹고 지내며 그것이 삶의 전부라 여기는 청춘 시절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의도적인 고립 속에서 자신의 허무감에 빛을 부여하는 일에 전력을 쏟는 어떤 나날에 대해서. <Born to Die>를 라나 델 레이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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