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 1962-1966 / The Beatles
지금은 ‘보관’되어 있는 비공개 포스팅이지만, 사실 인스타그램 sj_musicnote에서 처음으로 포스팅한 앨범은 비틀즈의 컴필레이션 <1>의 시디였다. 팝아트 느낌으로 디자인된 빨간 표지의 비틀즈 베스트앨범. <1>을 처음으로 블로그에 올렸을 때, 그때 우리 아이는 채 돌이 되지도 않았는데, 태교용 클래식을 시디로 들으려고 마트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카세트 플레이어가 구석에 놓여 있었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문득 나는 비틀즈의 시디를 꺼내 틀었다. 아이와 함께 비틀즈의 흥겨운 노래를 들었고, 그저 심심풀이 정도의 생각에서 비틀즈의 앨범에 대한 가벼운 기록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이 볼품없는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
미국과 영국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싱글 모음인 <1>은 비틀즈의 히트곡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컴팩트하고 포괄적인 입장권이었고, 2000년은 비틀즈의 해체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리고 2023년, 어느덧 비틀즈의 해체는 50주기를 넘어섰다. 비틀즈의 신작을 아무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적어도 폴 매카트니가 ‘레논-매카트니’표 비틀즈 신곡이 나올 것임을 선언한 2006년과 2007년 이전에는—놀랍게도, 또 감동적이게도 비틀즈의 마지막 신곡 Now and Then이 마침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Now and Then은 존 레논이 사망한 뒤 미망인이 된 오노 요코가 폴 매카트니에게 건넨 카세트테이프에 수록됐던 곡 가운데 하나였다. 존 레논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모여 Now and Then의 녹음 작업을 시도했지만(1995) 원본이 가진 퀄리티의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따랐기 때문에 결국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이 계획은 보류되었다. 이 곡의 조악한 녹음 퀄리티와 전반적인 곡 분위기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했던 조지 해리슨도 2001년 남아 있던 비틀즈 멤버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2021년에 이르러 다큐멘터리 <겟 백(The Beatles: Get Back)>의 촬영팀인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의 윙넛 필름(WingNut Films)에서 음향을 면밀히 분리하는 작업을 완수하게 되었다. 윙넛 팀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보컬과 피아노 소리를 각각 따로 떼어내 존 레논의 보컬을 하나의 완전한 소스로 생성시킬 수 있었다. 이 작업으로 인해 1995년 녹음 때 차질을 빚었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녹음이 한결 수월해졌다. 폴 매카트니는 베이스 기타와 조지 해리슨 스타일의 기타 연주, 그리고 데모에서 들려왔던 존 레논의 피아노를 모방해 작고한 멤버들을 대신해 연주했다. 링고 스타가 녹음해 온 드럼 트랙을 더했고, 과거에 녹음을 시도했던 1995년 세션에서 발굴한 조지 해리슨의 기타 트랙 일부도 추가시켰다. 이미 세상을 떠난 멤버들이 고스란히 활약하는, 오랜 세월 묵혀 두었던 비틀즈의 마지막 곡 Now and Then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Now and Then> 싱글은 7인치와 12인치 두 가지 옵션에서 선택할 수 있고, 더블 A-Side로 한 면 당 한 곡씩 수록하고 있다. 비틀즈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 Now and Then과 공식적인 첫 싱글 Love Me Do가 각각 앞면과 뒷면에 나란히 실려 ‘북엔드’ 형태를 취한 개념적 디렉션을 엿볼 수 있다. Love Me Do는 링고 스타가 드러머의 자리를 세션 연주자 앤디 화이트(Andy White)에게 내주고 자신은 탬버린을 치는 버전 대신, 이번에는 특히 오리지널 멤버들의 불가능한 재회를 강조한 만큼 탬버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링고 스타의 드럼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비틀즈의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에도 링고 스타가 탬버린을 담당하는 버전이 담겨 있고, 내가 즐겨 들었던 <1>도 동일한 버전이라 내겐 이 ‘탬버린’ 버전이 Love Me Do의 원형으로 오래 자리하고 있어서, 이번 컴필레이션에 실린 버전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알던 것과 엄청나게 다른 곡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틀즈의 마지막 싱글 <Now and Then>이 독립적인 레코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비틀즈 컴필레이션의 2023년식 리믹스 에디션을 동반했다. 일명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으로 불리는 쌍둥이 같은 <The Beatles / 1962-1966>와 <The Beatles / 1967-1970>이 과묵한 <Now and Then>의 든든한 양날개다. 세 개의 앨범을 동시에 구비하는 것이 제작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라 생각되지만, 보다 합리적으로 따져본다면 2023년 출시된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을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Now and Then> 싱글에 수록된 두 개의 곡이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에 각각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념하고 싶다면, <Now and Then> 싱글을 선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기왕이면 7인치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Now and Then은, 오노 요코가 건넨 데모 테이프에 수록됐던 나머지 곡들, Free as a Bird나 Real Love와는 시간적으로 긴 공백을 두고 완성된 별개의 프로젝트이므로 어딘가에 묶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까. 나는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을 각각 구매했다. 이 레코드들은 과거에 내가 즐겨 들었던 <1>과는 또 다른, 보다 디테일하고 심화된 시각으로 비틀즈의 전성기 시절 음악을 회고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첫 번째 LP는 러브송의 발랄한 도취로 가득하다. 빠른 템포와 고조된 텐션으로 혼을 쏙 빼놓는, 그 시절 ‘비틀매니아’들을 열광시킨 트랙들. 로큰롤과 사이키델릭 록이 적절히 믹스된 것 같은 A Hard Day’s Night은 단순하고 현실적이면서 유머러스한 풍경을 무심한 터치로 그려놓는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개(dog)’처럼 일한 화자는 너무 피곤해서 ‘통나무(log)’처럼 자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사랑하는 연인으로 인해, 그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한 그에게 사랑은 독이자 꿀이라는 인식이 깃들어 있어 균형감 있게 시니컬한 면모를 내비치기도 한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 모든 것이 옳은 것 같아요 / 내가 집에 돌아오면 / 당신이 나를 꼭 껴안아주는 것 같아요(When I’m home / everything seems to be right / when I’m home / feeling you holding me tight, tight, year)’. 피로에 젖은 상황이지만 스스로를 격려하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이 노래가 나아가는 방향을 간절히 지지하고 싶어진다. 그 시절 비틀매니아들의 열광도 아마 이런 포인트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었을까.
첫 번째 LP가 러브송의 흥겨운 분위기로 단번에 청자의 주의를 집중시킨다면 두 번째 LP는 조금 릴랙스하며 듣게 되는 분위기다. 데뷔와 동시에 영국, 그리고 미국을 들썩이게 만든 젊은 록 그룹에서 보다 성숙하려 하는 태도와 음악에 대한 발전적 고민이 묻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숨 가쁜 순회공연과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 된 유명세와 치솟는 인기의 광풍 속에서 그들만의 음악을 찾으려 했던 뮤지션으로서의 발걸음들. ‘레드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혹은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두 번째 LP의 B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965년작 <Rubber Soul>의 수록곡들, Nowhere Man, Michelle, In My Life, Girl이 집중된 부분이다. 너무 유명한 노래라 새삼스럽지만 시타르의 이국적인 선율로 시작되는 Norwegian Wood는 꿈같은 한 장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곡에 영감을 얻어 자신의 소설을 썼을 만큼 짧은 이야기지만 그 속엔 이루지 못하는 로맨스의 씨앗이 담겨 있다.
2023년 리믹스 버전에서 새롭게 추가된 이 세 번째 LP에 수록된 곡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합으로 여기에 진중한 무게감을 부여한다. 비틀즈의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에 수록된 로큰롤 분위기의 곡부터 ‘레드 앨범’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사이키델릭 록과 애시드 록, 챔버 뮤직 등을 다루며 장르적으로 더욱 확장되고 심층적이 되어 가는 <Revolver>시절 비틀즈의 중요한 성취를 새 시각으로 배치하며 말이다. Roll over Beethoven은 척 베리의 원곡을, You Really Got a Hold on Me는 스모키 로빈슨의 곡을 커버한 것이다. 지금은 비틀즈가 그 뮤지션들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지만, 데뷔 전 존 레논에게 우상과도 같았던 뮤지션들의 곡을 따라 부르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를 음악이라는 영롱한 은하수 속으로 흘러들도록 도울 것이다. 레논-매카트니 콤퍼지션의 눈부신 성취로 인해 상대적으로 묻힌 기분이지만 이 곡들에 대한 재발견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존 레논의 목소리는 알앤비나 로큰롤 하면 연상되는 부드러움 혹은 스무드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자기만의 개성으로 커버 곡들을 소화하는 것이 오히려 세련돼 보인다. 레코드에 삽입된 인서트에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존 해리스(John Harris)의 라이너 노트가 실려 있는데, 비틀즈의 활동사진도 몇 컷 담겨 있다. 보이 밴드처럼 잘생긴 외모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댄디한 슈트 차림을 한 그들의 사진을 보다가 거기에서 가장 그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안경을 쓰지 않은 존 레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60년대를 훨씬 지나 태어난 세대의 청자들이라면 아마 더 그렇게 느낄지 모른다. 존 레논은 컬이 진 단발머리에 알이 작은 안경을 쓴 바로 그 사람으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으니.
미국과 영국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싱글 모음인 <1>은 비틀즈의 히트곡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컴팩트하고 포괄적인 입장권이었고, 2000년은 비틀즈의 해체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리고 2023년, 어느덧 비틀즈의 해체는 50주기를 넘어섰다. 비틀즈의 신작을 아무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적어도 폴 매카트니가 ‘레논-매카트니’표 비틀즈 신곡이 나올 것임을 선언한 2006년과 2007년 이전에는—놀랍게도, 또 감동적이게도 비틀즈의 마지막 신곡 Now and Then이 마침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Now and Then은 존 레논이 사망한 뒤 미망인이 된 오노 요코가 폴 매카트니에게 건넨 카세트테이프에 수록됐던 곡 가운데 하나였다. 존 레논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모여 Now and Then의 녹음 작업을 시도했지만(1995) 원본이 가진 퀄리티의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따랐기 때문에 결국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이 계획은 보류되었다. 이 곡의 조악한 녹음 퀄리티와 전반적인 곡 분위기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했던 조지 해리슨도 2001년 남아 있던 비틀즈 멤버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2021년에 이르러 다큐멘터리 <겟 백(The Beatles: Get Back)>의 촬영팀인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의 윙넛 필름(WingNut Films)에서 음향을 면밀히 분리하는 작업을 완수하게 되었다. 윙넛 팀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보컬과 피아노 소리를 각각 따로 떼어내 존 레논의 보컬을 하나의 완전한 소스로 생성시킬 수 있었다. 이 작업으로 인해 1995년 녹음 때 차질을 빚었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녹음이 한결 수월해졌다. 폴 매카트니는 베이스 기타와 조지 해리슨 스타일의 기타 연주, 그리고 데모에서 들려왔던 존 레논의 피아노를 모방해 작고한 멤버들을 대신해 연주했다. 링고 스타가 녹음해 온 드럼 트랙을 더했고, 과거에 녹음을 시도했던 1995년 세션에서 발굴한 조지 해리슨의 기타 트랙 일부도 추가시켰다. 이미 세상을 떠난 멤버들이 고스란히 활약하는, 오랜 세월 묵혀 두었던 비틀즈의 마지막 곡 Now and Then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Now and Then> 싱글은 7인치와 12인치 두 가지 옵션에서 선택할 수 있고, 더블 A-Side로 한 면 당 한 곡씩 수록하고 있다. 비틀즈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 Now and Then과 공식적인 첫 싱글 Love Me Do가 각각 앞면과 뒷면에 나란히 실려 ‘북엔드’ 형태를 취한 개념적 디렉션을 엿볼 수 있다. Love Me Do는 링고 스타가 드러머의 자리를 세션 연주자 앤디 화이트(Andy White)에게 내주고 자신은 탬버린을 치는 버전 대신, 이번에는 특히 오리지널 멤버들의 불가능한 재회를 강조한 만큼 탬버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링고 스타의 드럼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비틀즈의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에도 링고 스타가 탬버린을 담당하는 버전이 담겨 있고, 내가 즐겨 들었던 <1>도 동일한 버전이라 내겐 이 ‘탬버린’ 버전이 Love Me Do의 원형으로 오래 자리하고 있어서, 이번 컴필레이션에 실린 버전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알던 것과 엄청나게 다른 곡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틀즈의 마지막 싱글 <Now and Then>이 독립적인 레코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비틀즈 컴필레이션의 2023년식 리믹스 에디션을 동반했다. 일명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으로 불리는 쌍둥이 같은 <The Beatles / 1962-1966>와 <The Beatles / 1967-1970>이 과묵한 <Now and Then>의 든든한 양날개다. 세 개의 앨범을 동시에 구비하는 것이 제작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라 생각되지만, 보다 합리적으로 따져본다면 2023년 출시된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을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Now and Then> 싱글에 수록된 두 개의 곡이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에 각각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념하고 싶다면, <Now and Then> 싱글을 선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기왕이면 7인치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Now and Then은, 오노 요코가 건넨 데모 테이프에 수록됐던 나머지 곡들, Free as a Bird나 Real Love와는 시간적으로 긴 공백을 두고 완성된 별개의 프로젝트이므로 어딘가에 묶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까. 나는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을 각각 구매했다. 이 레코드들은 과거에 내가 즐겨 들었던 <1>과는 또 다른, 보다 디테일하고 심화된 시각으로 비틀즈의 전성기 시절 음악을 회고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첫 번째 LP는 러브송의 발랄한 도취로 가득하다. 빠른 템포와 고조된 텐션으로 혼을 쏙 빼놓는, 그 시절 ‘비틀매니아’들을 열광시킨 트랙들. 로큰롤과 사이키델릭 록이 적절히 믹스된 것 같은 A Hard Day’s Night은 단순하고 현실적이면서 유머러스한 풍경을 무심한 터치로 그려놓는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개(dog)’처럼 일한 화자는 너무 피곤해서 ‘통나무(log)’처럼 자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사랑하는 연인으로 인해, 그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한 그에게 사랑은 독이자 꿀이라는 인식이 깃들어 있어 균형감 있게 시니컬한 면모를 내비치기도 한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 모든 것이 옳은 것 같아요 / 내가 집에 돌아오면 / 당신이 나를 꼭 껴안아주는 것 같아요(When I’m home / everything seems to be right / when I’m home / feeling you holding me tight, tight, year)’. 피로에 젖은 상황이지만 스스로를 격려하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이 노래가 나아가는 방향을 간절히 지지하고 싶어진다. 그 시절 비틀매니아들의 열광도 아마 이런 포인트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었을까.
첫 번째 LP가 러브송의 흥겨운 분위기로 단번에 청자의 주의를 집중시킨다면 두 번째 LP는 조금 릴랙스하며 듣게 되는 분위기다. 데뷔와 동시에 영국, 그리고 미국을 들썩이게 만든 젊은 록 그룹에서 보다 성숙하려 하는 태도와 음악에 대한 발전적 고민이 묻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숨 가쁜 순회공연과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 된 유명세와 치솟는 인기의 광풍 속에서 그들만의 음악을 찾으려 했던 뮤지션으로서의 발걸음들. ‘레드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혹은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두 번째 LP의 B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965년작 <Rubber Soul>의 수록곡들, Nowhere Man, Michelle, In My Life, Girl이 집중된 부분이다. 너무 유명한 노래라 새삼스럽지만 시타르의 이국적인 선율로 시작되는 Norwegian Wood는 꿈같은 한 장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곡에 영감을 얻어 자신의 소설을 썼을 만큼 짧은 이야기지만 그 속엔 이루지 못하는 로맨스의 씨앗이 담겨 있다.
2023년 리믹스 버전에서 새롭게 추가된 이 세 번째 LP에 수록된 곡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합으로 여기에 진중한 무게감을 부여한다. 비틀즈의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에 수록된 로큰롤 분위기의 곡부터 ‘레드 앨범’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사이키델릭 록과 애시드 록, 챔버 뮤직 등을 다루며 장르적으로 더욱 확장되고 심층적이 되어 가는 <Revolver>시절 비틀즈의 중요한 성취를 새 시각으로 배치하며 말이다. Roll over Beethoven은 척 베리의 원곡을, You Really Got a Hold on Me는 스모키 로빈슨의 곡을 커버한 것이다. 지금은 비틀즈가 그 뮤지션들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지만, 데뷔 전 존 레논에게 우상과도 같았던 뮤지션들의 곡을 따라 부르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를 음악이라는 영롱한 은하수 속으로 흘러들도록 도울 것이다. 레논-매카트니 콤퍼지션의 눈부신 성취로 인해 상대적으로 묻힌 기분이지만 이 곡들에 대한 재발견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존 레논의 목소리는 알앤비나 로큰롤 하면 연상되는 부드러움 혹은 스무드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자기만의 개성으로 커버 곡들을 소화하는 것이 오히려 세련돼 보인다. 레코드에 삽입된 인서트에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존 해리스(John Harris)의 라이너 노트가 실려 있는데, 비틀즈의 활동사진도 몇 컷 담겨 있다. 보이 밴드처럼 잘생긴 외모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댄디한 슈트 차림을 한 그들의 사진을 보다가 거기에서 가장 그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안경을 쓰지 않은 존 레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60년대를 훨씬 지나 태어난 세대의 청자들이라면 아마 더 그렇게 느낄지 모른다. 존 레논은 컬이 진 단발머리에 알이 작은 안경을 쓴 바로 그 사람으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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