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 1967-1970 / The Beatles

<The Beatles / 1967-1970>, 일명 ‘블루 앨범’은 67년부터 해체 전까지 비틀즈의 히트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으로, 그룹의 활동 후반기 주요 포인트가 되는 곡들을 밀도 있게 배열하고 있다. 이번 레코드 역시 ‘레드 앨범’의 2023년 믹스 포맷과 동일하게 세 번째 LP를 추가해 아홉 개의 새로운 트랙을 포함시켰다. 그중 Now and Then은, 지난주 ‘레드 앨범’에 대해 다룰 때 그 제작 배경에 관해 서술한 대로, 1977년 존 레논에 의해 처음 데모 녹음이 되고, 남은 멤버들이 녹음을 시도했지만 기술적 한계에 부딪치며 완성이 보류되었던 레논이 남긴 데모 중 마지막 곡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3년이 되어서야 완성된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의 새로운 노래 Now and Then이 마침내 우리 앞에 나타났다. Now and Then은 시간의 관용이 스며든 불가능한 재회의 트랙이며, 만져지는 듯 선명한 화합의 마침표다. 단순함 속에서 진실을 끌어올려 본다면, 레드와 블루 두 앨범에 대해 이렇게 표현해도 좋으리라. ‘레드’가 상징하는 열정적 이미지처럼 레드 앨범이 업비트 무드에 주력한다면, ‘블루’는 조금 더 무게감을 가지는, 그러면서도 덜어내며 가벼워지는 느낌이라고. 무엇보다 ‘블루 앨범’에서는 ‘조용한 비틀(The quiet Beatle)’ 멤버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곡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첫 번째 LP의 처음 두 곡에서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샘솟는다.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Penny Lane은 비틀즈의 주요 송라이터인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각자 유년기 추억의 장소들을 소재로 삼아 완성한 노래들이다. 여느 비틀즈의 히트곡들과 다르지 않은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의 공동 창작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가사를 쓰는 단계에서 주요 영감의 씨앗이 발아한 것은 두 사람 각자의 심상 속에서였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성향과 스타일을 반영이라도 하듯 두 곡의 가사가 초점을 두는 대상이 극명히 나뉜다. Strawberry Fields Forever가 화자의 내부에 초점을 맞춘다면 Penny Lane은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두 송라이터의 성향이 변증법 같은 교류의 과정을 거치며 비틀즈 음악의 테마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나간 것은 아닐까.

위키백과에서 그 당시 비평가들이 위의 두 곡에 관해 내놓은 코멘트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방송인 조 쿠슐리(Joe Cushley)는 Penny Lane을 두고 ‘리버풀로 간 루이스 캐럴(Lewis-Carroll-goes-to-Liverpool)’이라고 표현했고, 대중음악 전기를 주로 쓴 작가 클린턴 헤일린(Clinton Heylin)은 Penny Lane을 두고 ‘Strawberry Fields Forever의 대중적 포용력 부족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멀어질까 두려워 한 매카트니’라고 명명했다. 저널리스트 피터 도겟(Peter Doggett)는 ‘Strawberry Fields Forever는 아트 팝–의식적으로 대중을 배제한(self-consciously excluding the mass audience), Penny Lane은 팝 아트–일상으로부터 건져낸 다각적 본질(multifaceted substance out of the everyday)’이라고 표현했다. 이 두 곡에 관한 비교만으로도 굵직한 비틀즈 스토리의 일부를 읽게 되는 셈이다.

Hello, Goodbye도 가사가 참 재미있다. ‘당신은 ‘굿바이’라 말하고, 나는 ‘안녕’이라고 말해요 / 나는 왜 당신이 ‘굿바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안녕’이라고 말해요(You say, “Goodbye” and I say, “Hello, hello, hello” / I don’t know why you say, ‘Goodbye”, I say, “Hello, hello, hello”)’. 가사는 단순히 ‘응’과 ‘아니’, ‘안녕’과 ‘굿바이’, ‘좋아’와 ‘싫어’ 등의 대립 장면을 보여주며 관계가 모호하게 설정된 두 사람의 불화를 그려낸다. 너무도 단순하지만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들이 주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여야 하는 모순의 발견에 이르도록 한다. 폴 매카트니는 당시 인터뷰에서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단순하다. Hello, Goodbye는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노래다. 당신이 암울해졌다면 당신은 밝아져야만 한다. 그게 삶에서 일어나는 놀라움이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The answer to everything is simple. It's a song about everything and nothing... If you have black you have to have white. That's the amazing thing about life.).

공식적인 투어 중단을 선언한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1969년 ‘루프탑 콘서트’의 배경엔 Get Back이 있다. Get Back은 비틀즈 이야기를 재가동할 만한 위력을 지닌 곡이다. 비틀즈의 마지막 곡 Now and Then을 기술적으로 완성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팀이, 현시점에서(2024년 2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볼 수 있는 <겟 백(The Beatles: Get Back)> 다큐멘터리의 복원을 맡았다. 피터 잭슨의 <겟 백>은 마이클 린제이 호그(Michael Lindsay-Hogg) 감독이 영화 <렛 잇 비>를 만들 때 촬영해둔 150시간 이상의 필름들을 재편집해, 그들의 고민과 불화, 자유로운 상상력이 콘서트가 있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읽히도록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피터 잭슨의 다큐는 3부작의 긴 호흡으로 당시의 ‘겟 백 프로젝트’ 세션의 일상적 녹음 풍경을 담아 더 투명하게 거기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존 레논의 리드 기타가 돋보이는 Get Back은 폴 매카트니의 패기 있는 노래로 시작된다. 키보디스트 빌리 프레스턴(Billy Preston)을 초청하며 음악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자유분방한 로큰롤 분위기로 즉흥 잼 세션 느낌을 살린 이 곡의 가사는 표면적으로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과 영국 정부의 태도를 풍자하고 있다. 

두 번째 LP에 수록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레드’와 ‘블루’ 컴필레이션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이 아니라 조지 해리슨의 크레딧이 붙은 곡이다. 레논의 거칠지만 섬세한 보컬과 예술적 성향, 매카트니의 당당함과 팝 친화적인 멜로디, 조지 해리슨은 거기에 동양적 세계관과 음악적 탐구의 흔적이 배어나는 노래들로 비틀즈 음악을 더욱 넓은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뒷면에 실린 Something도 잊을 수 없는 비틀즈의 히트곡 중 하나이다. 인터루드의 블루스 기타 솔로가 사색적이고 심미적인 성취를 높이는 듯하다. 가사에서 화자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들은 굉장히 소박한 것들이다. ‘그녀의 움직임에 뭔가가 있어요(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 그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끌림,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관찰한다. 같은 맥락에서 Here Comes the Sun도 음미해 볼 수 있다. 소박함과 순수함으로 어두운 마음을 비춰주는 것 같은 포크 성향의 곡. 많은 사람들이 비틀즈 음악의 매력을 이런 에너지에서 발견할 거라고 확신하게 되는 트랙이다.

조지 해리슨의 곡들도 살펴보았으니, 링고 스타의 곡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레논과 매카트니가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Penny Lane를 통해 각자 자신들의 유년기 향수에 젖어든 것처럼, Yellow Submarine과 Octopus’s Garden에서 링고 스타의 동심을 읽을 수 있다. Yellow Submarine은 잊을 수 없는 비틀즈 클래식 중 하나가 아니던가. 레논과 매카트니, 그리고 조지 해리슨과는 또 다른 뉘앙스를 지닌 링고 스타의 보컬 트랙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는 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력을 지녔다. 아이든 성인이든 계획도 목적도 없이 그저 즐겁게 놀 수 있는 마당과 시간,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인생에서의 성공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 아닐까.

세 번째 LP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노래는 단연 Now and Then이다. 하지만 이 곡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했으니 다른 이야기로 이번 비틀즈 여정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처음에 수록된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Penny Lane이 레논과 매카트니의 유년기 추억의 음악적 형상화로 팽팽한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다고 본다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Oh! Darling과 I Want You(She’s so Heavy)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구애를 주제로 한 두 사람의 또 다른 대비를 만들어낸다. 그와 동시에 이 곡들은 비틀즈가 초기에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이유 중 하나였던, 대중적이고 친근한 러브송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화해 갔는지를 파악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Oh! Darling이 다분히 매카트니스러운 열정적 태도를 담으며 매카트니식 러브송의 위력을 함축한다면, I Want You는 존 레논의 예술적 취향을 적극 반영한 러브 테마로 마이너 코드의 불길한 무드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장르적으로 Oh! Darling은 5-60년대의 스왐프 블루스(Swamp Blues) 특성을 채택한 리듬앤 블루스 트랙, I Want You는 하드 록과 블루스, 실험적 트랙으로 7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반복과 변주를 쌓아가고, 마지막에는 백색소음을 개입시키며 장엄한 피날레를 선사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들은 2023년 에디션의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을 관전하는 포인트에 관한 것이었다. 주관적인 감상에 미흡한 점이 많을 수 있지만, 아무튼 이 앨범들을 통해 비틀즈의 활동 초기부터 끝까지, 1962년부터 1970년, 그리고 2023년 바로 오늘날까지, 그들의 음악이 여전히 살아 있고, 박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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