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Blue Sun / André 3000

 New Blue Sun / André 3000

나로 다시 태어나기



우선, André 3000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90년대 중반 남부 힙합 사운드를 미국 전역에 퍼뜨린 OutKast임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만일 <New Blue Sun>이 André 3000가 아니라 다른 뮤지션의 작업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반향을 불러올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사람들의 반응들–궁금증, 기대감, 실망 혹은 배신감, 어쩌면 분노, 또는 안도감 등의 복합적인 감정들–은 제법 축소되어 나타났을 것이다. 위의 질문들은 André 3000의 전적이나 아이덴티티에서 유래하며, 필연적으로 거기에 기대어 있는 것 같다. <New Blue Sun>에 앞서는 것은 여전히 André 3000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한 번 끓어오른 물이 서서히 식어가듯 음악 그 자체를 향해 이동하고야 말 것이다.

  <New Blue Sun>의 음악적 특징이나 음악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뮤지션의 ‘심중'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앨범은 예상치 못했거나 예상한 것의 정반대이고 말 없는 것이며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아진 이색적인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전직’ 래퍼 André 3000의 여러 나라 플루트-인스트루멘탈 컨셉 앨범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전반에 사용된 주요 악기인 여러 종류의 플루트와 아날로그 및 디지털 악기들은 음악에 풍미를 더하는 일종의 ‘테마'적 도구로 여겨질 수 없다. 플루트는 래퍼였던 이 뮤지션의 입이며 목관악기의 포용적이며 온화하고 심플한 선율들은 호흡을 통해 빚어진 그의 쏟아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자각이며 그의 삶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새로운'이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타이틀에 ‘New’가 포함되어 있는 점도 그 이유이지만, 그는 자기가 알지 못하고 여태껏 다뤄보지 못한 악기에 처음 손을 대는 일을 ‘아기'의 행위에 비유한다. ‘아기' 같은 호기심과 ‘아기’ 같은 미숙함으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새로운 좌표 위에 성립시켰다.


GQ의 인터뷰 내용을 참조하면 대체로 그는 ‘유명세'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유명세'로 얻은 이점만큼이나 일상을 잃었다고 느끼며, 부모의 죽음을 겪는 등 현실에서 여러 절망적 상황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실력을 인정받는 출중한 래퍼이기 이전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혈통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인간으로서 내면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해야 했다. ‘ 사회공포증(Social Anxiety Disorder)'이라 일컬어지는 불안감과도 사투를 벌여야 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그는 늘 플루트를 지니고 다니며 거리나 카페, 공항 등 공공장소에서 툭하면 연주를 했다. 뉴욕에 거주할 때는 택시 안에서도 플루트를 불었다. 그러면 대부분의 기사들이 그를 향해 돌아 보았고, 그들은 저마다 조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 그들만의 고유한 악기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말을 대신한 소리의 언어를 통해 사람들의 귀와 그들의 기억과 보다 부드럽고 강렬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

  셀프 세탁소에서 그와 대화를 마치고 자크 바론(Zach Baron)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이것은 André 3000가 OutKast의 거대하고 추상적인 유산과 더욱 겸손한 일상 속 그의 모습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그것을 연결하려 한 시도다. 하지만 이는 확실히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it’s an attempt to connect, to narrow the distance between the massive, abstract legacy of OutKast and the more humble, daily reality of André 3000. But it’s certainly not what people are anticipating.)’. 첫 트랙, ‘I Swear, I really wanted to make a ‘rap’ album but this is literally the way the wind blew me this time’이 충분히 설명하듯, 처음에 그는 랩 앨범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다. 그 만한 네임 밸류의 래퍼라면 쉽게 자신의 본업을 저버리기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몸이라는 실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도저히 거역할 길 없는 각종 노화의 사인들과 젊은 시절 그의 시대정신이자 역사적 발자취로 남은 래퍼로서의 삶을 연결시킬 이상적인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나이 들어 감을 알고,  각종‘내시경' 검사라던가 ‘노안’ 같은 이슈들을 랩의 소재로 쓰기 곤란하다고 느꼈다는 식으로 반쯤 농담처럼 고백한다. 왜 그런 소재들을 랩이나 노래에 쓸 수 없겠는가? 그의 고민은 단순히 그럴 수 ‘있다 / 없다' 하는 차원의 논의에 머무르지 않거나 혹은 어떤 식이든 결론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그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이야기나 메시지들을 추상적인 소리로 희석해 전달하는 편이 보다 성숙하고 숭고한 차원의 예술적 표현 행위라 여겼던 게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사유를 그의 랩에서 의도적으로 배제시킨다면 그는 피상적으로 다시 20대 시절로 돌아가는 셈이고, 그것은 OutKast 이후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부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예술관에 위배되는 일이 될 것이다. 마치 현자와도 같은, 집착이 없는 상태에서 일종의 ‘오는 대로, 가는 대로, 멀어진 대로’를 고스란히 수용하는 듯한 마음가짐이 <New Blue Sun>에 잔뜩 드리워졌고 그는 그 위에 구불구불하게 붓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을 보다 투명하게 바라보고 투명하게 반응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 다시 말해 영적 계시 같은 것을 일상 뒤에 숨은 마법을 보듯 대한 것도 이 뮤지션이 가진 특출난 재능으로 여겨진다. 재즈계의 거물급 제작자 카를로스 니뇨(Carlos Niño)를 LA의 한 유기농 식료품점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그런 종류의, 인생에서의 마법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이 기악 앨범을 녹음하게 된 프로세스의 첫 단추였다. 안드레는 카를로스 니뇨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된 재즈 연주자들과 녹음을 진행하게 되었다. 애초에 앨범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이 시기의 발전적 교류는 그의 신작 <New Blue Sun>에 담기게 되었다. 안드레는 카를로스 니뇨의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잼 세션을 OutKast의 초창기 패밀리인 ‘던전(Dungeon)'에 비유했다. 그는 마지막 곡 ‘Dreams Once Buried Beneath The Dungeon Floor Slowly Sprout Into Undying Gardens’에서 던전을 추억한다. 하모니를 이루거나 단순하고 미묘한, 비유하자면 스피리추얼 재즈의 계보를 잇는 듯한 사운드스케이프는 공개되지 않은 그의 정원을 묘사하는 듯하다. 안드레가 전직 래퍼였기 때문에, 말을 대신해 그가 악기를 향해 불어넣은 것이 호흡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기에 더욱 겸허한 태도를 취하도록 만든다.


확실히 가사가 없는 이 앨범에 길고 모호하며 아리송한 제목들을 붙인 것은 여러모로 타당한 선택으로 비춰진다. 원주민들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플루트는 과거로의 회귀와 같은 기분을 선사하지만 긴 문장형의 제목들은 청자를 순식간에 현재에 정박시킨다. 그리고 타이틀 ‘New Blue Sun’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우리가 알던 태양은 자신의 운명을 다해 소멸하고 더 크고 시원하고 푸르게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이 앨범은 아주 광범위한 시간을 다루고 있는 듯 느껴진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간 것인지 낯선 미래로 떠나온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지지만, 그래도 유쾌함이 감도는 현재에 발 디디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면서 그는 청자와의 내밀한 커넥션을 유도한다.

   André 3000는 마치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그런 그의 이야기를, 그의 음악을 오래 기다려온 팬들과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신비롭고 자연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제 그의 사연을 유념하며 다시 음악을 들어 보면, 그것은 놀랍게 경이롭고 차분하고 가슴 시리도록 따스할 것이다.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lDGmSCXoSRs&list=WL&t=400

https://www.npr.org/2023/11/14/1212661071/andre-3000-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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