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or Las Vegas / Cocteau Twins
Heaven or Las Vegas / Cocteau Twins
드림 팝의 기사들
<Heaven or Las Vegas>는 콕토 트윈스가 낸 정규 앨범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보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의 창법은 노랫말에 사용된 단어들을 부정확하게 들리도록 하고, 청취자의 일반적 기대에서 충분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외국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보컬의 노래도 사운드의 일부로 전달되기를 추구했는데, 그러한 그룹의 특색을 떠올려 보면, 이 앨범은 비교적 명확한 노랫말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버스데이 파티(The Birthday Party), 바우하우스(Bauhaus),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 같은 펑크나 고딕 록 그룹들에 영향받으며 자신들만의 음악에 대한 꿈을 다듬어 간 멤버들은 16여 년간 이어진 그룹 활동을 통해 포스트 펑크 계열 음악을 구축하고 슈게이징과 드림 팝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들만의 독특한 색채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보다 팝적인 멜로디와 감성을 선보인 6집 <Heaven or Las Vegas>는 만져질 듯 선명한 빛깔로 멜랑콜리와 순수를 한 폭의 시야에 펼쳐 놓은 명작이라 할 만하다.
첫 곡 Cherry-Coloured Funk를 처음 들은 게 언제일까? 내가 록 음악에 눈을 뜨던 때 콕토 트윈스가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여러 번 여러 뮤지션들과 음악 매거진들을 통해 꾸준히 언급되고 있었다. 콕토 트윈스는 1997년 해체 후 그룹의 모습으로 더 활동하지 않았지만 다음 세대가 된 뮤지션들과 록 음악사에 미친 영향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수십 번의 겹침이 결국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던 이 그룹과 나를 연결시키고 말았는데, 역시 내게 가장 많이 노출된 앨범이기에 가장 먼저 손을 뻗게 된 <Heaven or Las Vegas>의 첫 곡 Cherry-Coloured Funk를 듣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던 것 같다. 우선, 바로 이런 사운드가 콕토 트윈스의 것이구나, 하는 거의 직관적인 인식이 뇌리에 새겨졌고, 그 당시에 내가 즐겨 듣던 ‘요즘' 음악 중에서 이런 종류의 것이 없다는 기분이 뒤따랐다. 패턴을 그려내는 것에 가까운 기타 연주와 몽환성과 공명으로 채운 공간적 분위기, 저음과 고음 사이를 오가는 보컬이 덩어리째로 던져지는 듯했다. 노래 속에 불안과 우울이 스며 있지만 지상계를 벗어나는 듯한 보컬의 창법은 발생한 우울의 흔적을 지워내는 것만 같았다. 노랫말은 모호하지만 Cherry-Coloured라는 색상이 부여되었고, 이 컬러는 가사의 어떤 구절보다 더 창작자의 표현 의도에 적합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단지 내가 혼란 속을 헤매는 듯한 노랫말 속에서 간신히 쟁취한 Cherry-coloured라는 명백함에 해석의 실마리를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노래는 분명 통째로 그런 색의 언어로 전달되어 왔다. 체리의 끈적임과 붉은 탁함이라는 우울에 취해 밤의 열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Iceblink Luck는 선명한 멜로디로 포스트 펑크 록 음악의 구체적 템플릿을 구성한다. 고음부를 오가는 노래는 여기에서 천상의 느낌보다 네오 사이키델릭 정서에 더 맞닿아 있는 듯 느껴진다. Iceblink는 빙원에서 반사되어 나타난 구름 아래의 희붐한 백색 혹은 노란빛을 띄는 광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것의 의미를 찾아 가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지적 과정과 시도는 콕토 트윈스의 음악을 들을 때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사항들이다. 그보다는 음악의 흐름에 의식과 통제권을 맡기고 소리를 추적하는 감각의 활용이 이들의 음악을 더 잘 감상하는 포인트가 된다. 빛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뮤직비디오도 드림 팝 스타일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타이틀곡 Heaven or Las Vegas는 절망이나 절규를 침착하게 담아낸다.‘내가 천국에 있는 걸까 아니면 라스베가스일까 / 햇빛을 받을 때보다 더 환하니까(Am I just in heaven or Las Vegas / That's why it is more brighter than the sun is to me)', 화자는 ‘라스베가스'의 눈부신 빛을 뽐내는 도시 이미지를 가져와 시적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이 문장에 사용된 병치가 재미있어서 이 노래를 들을 때, ‘Las Vegas’를 다른 지역이나 다른 의미의 단어로 바꿔 보면 재미있는 재창작 행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Road, River and Rail에서 반복되는 패치워크를 엮어 가는 기타부와 밸런스가 맞지 않는 듯한 노래는 미드 레인지의 음역에 머문다. 도취감보다 비교적 드라이함을 유지하는 이 노래의 배경은 프랑스로 화자는 파리를 산책했다고 이야기한다. 화자의 눈에는 길과 강과 철도가 흠결 없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앨범은 Frou-frou Foxes in Midsummer Fires로 마무리된다. ‘한여름 화재 속 프루프루 여우들'이란 제목처럼 노래는 어떤 우화를 그려낼 것만 같다. 상대적으로 곡의 길이가 긴데 그러한 형식에 걸맞은 장엄함을 연출하며 미학적 완성에 도달해간다. 음악은 메아리쳐 들려오며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나를 향해 오며 어느 순간 나를 스쳐간다. <Heaven or Las Vegas>는 말로 옮겨지지 않는 모호함을, 몽환의 순결성이 포착된 어떤 지대에 관해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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