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Rev / Alvvays
Blue Rev / Alvvays
앨범의 타이틀인 ‘Blue Rev’는 보컬 몰리 랭킨(Molly Rankin)과 키보디스트 케리 매클레난(Kerri MacLellan)이 십 대 시절 즐겨 마시던 음료의 이름이라고 한다. 강변에서 석양이 지는 풍경을 마주하며 푸른빛이 감도는 음료를 마시는 두 사람의 낭만적인 장면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 앨범의 작업 과정에 그러한 낭만적 풍경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2집 <Antisocialities> 이후 멤버들은 의욕을 가지고 <Blue Rev> 작업에 임했지만 현실에선 여러 가지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데모 테잎이 도난당하고, 연습실로 사용하던 베이스먼트 공간엔 빗물이 들어찼다. COVID-19 팬데믹 또한 작업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전작과 5년이라는 예정보다 긴 텀을 두고 발표된 <Blue Rev>는 결국 그룹이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완성도 있게 새 앨범을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앨범은 2집 <Antisocialities>에 이어 슈게이징 사운드를 더욱 심화해간 앨범으로 평가받으며 주요 음악 매거진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첫 곡 Phamacist는 노이즈를 잔뜩 풀어놓은 슈게이징 트랙이지만 개별적 소리들이 서로 뭉개지지 않고 비교적 선명히 들려온다. Easy on Your Own?에서는 더욱 묵직한 분위기의 보컬을 내세우지만 특유의 씁쓸하며 로맨틱한 멜로디로 청자의 의식을 유영하도록 이끈다. 가사는 흔들리는 청춘의 고뇌를 담았다. ‘난 학교를 그만뒀어 / 대학 교육은 따분한 칼날일 뿐(I dropped out / College education’s a dull knife)’이라는 노랫말을 시작으로 화자는 내외부적으로 겪는 절망적 상황들을 반항적 시각과 함께 돌파해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끝났다고 말해요(If you don’t like it, well / Say it’s over, well)’. 위와 같은 도전적 뉘앙스의 가사와 어우러진 고음이 청자의 감각과 정서적 호응 모두를 얻기에 무척 효과적인 것 같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무엇도 쉽게 놓을 수가 없고, 따라서 이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지만,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분명 소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After the Earthquake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After the Quake>에서 영감을 얻어 쓰인 노래라고 한다. 단편 소설들을 모은 이 소설집–우리나라에서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 있다–은 ‘고베 대지진' 재난 사건을 각각의 단편들을 엮는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 몰리는 지진을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예상치 못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보다 근본적인 결정을 하도록 만들거나 생이 유한하다는 식의 깨달음을 주는 장치로 해석했고, 그러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곡에서 갈등을 겪는 연인의 이야기로 치환해 나타냈다.
Very Online Guy는 일명 ‘리플라이 가이(reply guy)'라 불리는, 악플을 달아 인터넷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팬데믹을 통과하던 시기 대면 만남이나 집단적 모임이 금지되거나 여행이나 이동에도 제약이 따를 때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나마 심리적 연결을 추구하길 원했다. 종종 ‘악플러'들을 만나면 좋은 뜻에서 온라인 문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쉽게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대학에 대한 의식도 그렇지만 이 그룹이 가진 예리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픽셀을 강조해 온라인 세상을 풍자적으로 풀어낸 뮤직비디오도 흥미를 더한다. 빈티지 무드를 살린 사운드는 그룹의 개성을 참신하게 드러낸다.
Tile by Tile에서 사랑하는 대상과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그려낸 가사가 절묘하게 느껴졌다. ‘밤에 난 바닥을 서성여 / 타일을 하나씩 세며, 벽에 이를 때까지 / 참 허망하게도, 난 온 정성을 쏟았는데도 / 난 그저 너의 집 앞 잔디에 이를뿐(At night I pace the floors / Tile by tile, step by step, ‘til I reach a wall / No use in forging on, I try wholeheartedly / But still end up on your lawn)'. 타일을 하나씩 세며 접근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그에게 닿지 못하고 문턱만 서성인다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산다고 해도 그와 화자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만 놓여 있을 뿐이다.
Belinda Says는 데뷔의 성공을 이끌었던 Archie, Marry Me를 연상케 하는, 올웨이즈만의 젊고 패기 있는 감성이 잘 묻어나는 에센셜 트랙이라 생각된다. 그룹의 노래에서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많이 언급되는데, 이 앨범에서만 해도 배우이자 추리 소설 작가인 제시카 프리처(Jessica Fletcher), 그룹 텔레비전(Television)의 보컬 톰 버레인(Tom Verlaine)에 이어 미국 뉴웨이브 가수 벨린다 칼라일(Belinda Carlisle)이 등장한다. Belinda Says에서는 그녀의 곡 Heaven is a place on earth의 메시지를 언급하는데, 몰리는 천국이 지상에 있는 곳이라면 지옥 또한 같은 곳에 있다며 원곡의 개념을 다소 냉소적인 시각으로 비틀어 표현한다.
처음에 올웨이즈의 음악에 대해 글을 쓰려고 생각했을 때, 이들의 음악은 보편적인 다양성을 갖추었다는 인상을 가졌는데 앨범을 모두 들은 뒤에도 그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슈게이징, 노이즈 팝, 쟁글 팝, 드립 팝, 컬리지 록 등 여러 록 장르의 특색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사운드, 그리고 보컬은 캐치한 멜로디를 부드럽게 오르내리며 적당히 드라이하고 시니컬해 때론 비판 의식이 살아 있는 가사의 제스처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반체제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태도가 딱딱하거나 강경하기보다는 온화한 노이즈로 휘감으면서 어디까지나 내면에 머무는 청자들의 잠재적 저항성을 포용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이해해 보는 시간 동안 확실히 점점 굳어 가는 듯한 사고에 청량감을 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블루 레브'의 찰랑거리는 물결이었을 것이다.
-참조
https://diffuser.fm/alvvays-band-interview/
https://www.stereogum.com/2201143/alvvays-blue-rev-interview/interviews/under-the-infl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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