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 / Damien Jurado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 / Damien Jurado

자기만의 신 이야기


다미엔 주라도는 역시 조금 생소한 뮤지션이 아닐까. 우리나라에 유난히 덜 알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물론 그의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음악에 노출되는 것을 충분히 허용하던 시절 내 귀에 그의 음악이 들려왔던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나는 ‘주라도(Jurado)’라는 그의 독특한 성을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Ghost of David>의 수록곡 Tonight I Will Retire를 몇 번 반복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피아노와 미니멀한 리듬 악기 구성으로 된 우울하고 절망적인 톤의 인디 포크 송. 하지만 내 관심은 뮤지션에 관한 더 깊은 탐구에 이르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런 그의 음악을 다시 찾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가 바로 그 매개였다. <바튼 아카데미>는 내가 정말 모처럼 극장에 가서 본 영화였는데, 2시간을 웃도는 상영 시간 동안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선 신기하게 느껴지던 영화였다.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의 영화를 ‘최고'라 손꼽는 시네필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디센던트>, <네브라스카>, <다운사이징> 등을 무척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그의 영화들은 조금 독특한 지점에서 유머를 이끌어내고 있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다소 냉소적인 시선이 배어든 유머라고 할까. <바튼 아카데미>는 눈에 띄는 전개도 없고, 배경도 1970년대이며 장소는 사립 기숙학교다. 보다 디테일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 전후로, 기숙사 생활을 하던 학생들이 홀리데이 시즌을 맞아 저마다 가족을 찾아 흩어진 다음이다. 영화는 전형적인 홀리데이 풍경 밖을 맴돌아야 하는 인물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늘 학생들로 북적이던 학교가 텅 비고 거기에 덩그러니 남겨진 세 사람, 문제아처럼 보이는 학생(앵거스)과 보수적인 교사(폴) 그리고 기숙사의 조리사(메리)가 어쩔 수 없이 별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교정에 소복이 쌓인 흰 눈처럼 지루할 것 같은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소하게 빚어지는 갈등과 얽힘, 나아가 서로의 슬픔을 알아봄, 동병상련의 대상 간에 싹트는 우애 등이 친밀한 빛을 발하는 그런 잔잔한 인상을 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다미엔 주라도의 포크 넘버 Silver Joy가 바로 이 영화에서 흘러나왔다. 극장이니 아무래도 사운드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그 노래는 영화의 장면과 함께 너무도 깊이 뇌리에 새겨졌다.‘아침잠 속에 날 그냥 더 자게 내버려둬'라는 다소 절망적인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 첫 소절. 한적함에 잘 어울리는 기타 연주와 차분하고 드라이한 목소리 톤은 어렴풋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했다. 나중에 크레딧을 보니 그건 바로 다미엔 주라도의 음악이었다.

 

  Silver Joy는 다미엔 주라도의 앨범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에 수록된 곡으로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너무 잘 어울린 나머지 영화와 매우 호혜적인 효과를 거두며 재조명 받기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 같다.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은 뮤지션의 열한 번째 정규 앨범으로 2014년 처음 발매가 이루어졌다.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은 Silver Joy 같은 은은한 포크 발라드 곡들만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면 그 기대에서 꽤 벗어나는 앨범이 될 것이며, Silver Joy 하나만으로 이 앨범을 해석한다면 상당한 오독이 될 만한 그런 그런 앨범이라 말할 수 있다. 앨범이 완성에 이르기 위해 하나씩 벽돌을 쌓아 올리는 과정 뒤편에 제법 두터운 창작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은 다미엔 주라도의 두 개의 전작들인 <Saint Bartlett(2010)>과 <Maraqopa(2012)>에 이어 프로듀서 리처드 스위프트(Richard Swift)와 함께 작업한 3부작을 이루는 마지막 조각이며, 뮤지션은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를 <Maraqopa>의 속편으로 여긴다. 이 픽션의 중심에 있는 것은 ‘Maraqopa’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허구적으로 구성된 지명으로 뮤지션이 꾼 꿈에서 영감을 얻어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꿈에 나타난 한 외딴 마을에 등장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Maraqopa에 나타난 남자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는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원한 아들의 형제 자매들'을 만난다. 바로 이 앨범에 그려진 Silver 형제들–Silver Timothy, Silver Donna, Silver Malcolm, Silver Katherine 그리고 Silver Joy–이다. 결국 그의 노래들은 ‘외딴 마을에 나타난 한 남자'에 대한 꿈 이야기에 하나씩 살을 입혀가며 상상력을 확장시켜 나간 개별적 트랙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그의 스토리텔링에 뼈대가 된 것은 기독교 레퍼런스들이다. 기독교 신자로 자라온 뮤지션은 성경에서 개념이나 이미지를 가져오고 자신의 노래 속에서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다만 그의 태도는 ‘종교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픽션 속에서 재창조하는 예술적 모방의 논리를 따른다.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은 그러한, 뮤지션의 꿈과 상상력, 신념과 종교 등의 아이디어들을 더욱 명료하게 담아낸 앨범이며 음악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록, 포크부터 미래적인 음악, 영성적이며 원시적인 음악, 퓨전 등 더욱 다양한 폭을 소화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데뷔 때부터 그의 작업에서 주요한 특징으로 여겨지던‘Found Sound’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소리들을 결합한 테크닉에서 다미엔 주라도만의 독창적인 사운드 미학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 앨범에서는 Silver Donna, Sons in our Minds에서 그러한 샘플 사운드가 사용되고 있는데,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면 소리들이 무척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사운드의 전경이 한 단계 더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은 예상외로 헤비한 컨셉과 과감한 실험성을 선보이는 뮤지션의 야심작이라 할 만하다. <바튼 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것은 독자적으로 재조명되기에 합당한 스토리텔링과 뮤지션의 획기적인 변화 모두를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참조

https://artsfuse.org/99118/fuse-interview-the-creative-faith-of-damien-jurado/

https://www.pastemagazine.com/movies/damien-jurado/catching-up-with-damien-jurado-1

https://www.seattlemet.com/arts-and-culture/2012/02/fiendish-conversation-with-seattle-folk-rocker-damien-jurado-february-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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