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amese Dream / The Smashing Pumpkins

<Siamese Dream>은 스매싱 펌킨스가 두 번째로 발표한 앨범이다. 내가 구매한 것은 2011년 리이슈반이지만 그룹이 이 앨범을 처음 선보인 것은 1993년이었다. 인디펜던트 레이블 서브팝을 중심으로 너바나, 펄 잼 등을 필두로 한 그런지 음악이 급부상하던 무렵이다. 1991년 데뷔 앨범 <Gish>를 발표한 스매싱 펌킨스도 그런지라 불리는 커다란 조류에 무리 없이 섞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앨범 작업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1집 투어를 마치고 기타리스트 제임스와 베이시스트 다아시가 연인 관계를 청산했고, 드러머 지미 챔벌린은 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빌리 코건은 불안과 우울에 시름하며 차고에서 생활하면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곡 작업에 매달렸다. 천사처럼 맑은 소녀들의 미소를 담은 커버 이미지와는 달리 앨범 작업은 난항을 겪으며 예정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주 민감히 더듬어지는 온갖 갈등의 상황들이나 현실은 비록 절망적이었지만 음악의 언어로 빚어진 그들의 이야기는 이 앨범에서 눈물겹도록 빛이 난다. 그룹의 히트곡 중 하나인 Today를 들어 보자. ‘오늘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최고의 날이야(Today is the greatest / Day I've ever known)’, 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이 가사가 완전히 그 반대편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정말 최고라고 말할 수 없는 날, 정말 완전히 최악의 여러 날들을 지나고 마침내 아무런 동요도 갈등도 없이 그저 잠잠한 날, 그런 날 말이다. 심리적으로 매우 괴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빌리 코건은 이 곡을 쓰던 당시 자살을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결국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이 곡은 그러한 생각과 그 반동 사이의 긴장을 포착하며 두 극점이 서로 필연적으로 교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Today가 스매싱 펌킨스만의 멜랑콜리하며 서정적인 멜로디와 디스토션 사운드의 깔끔한 조화로 찬란하게 우울을 그려냈다면, Disarm은 주제에서부터 한층 무거운 느낌을 실었고 형식 또한 마찬가지다. 거친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와 절망감이 깃든 보컬, 여기에 더해진 현악기들은 다양한 분위기, 즉 불안감과 온화함, 슬픔 등의 복합적 감정들을 이끌어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잦은 부재와 의붓어머니로부터의 학대 등을 경험한 빌리 코건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분노를 이 곡을 통해 드러내며 철저한 창작의 무대 위에서 소각시키고자 한다. 그는 자기 내부의 ‘킬러' 또한 그런 방식으로 축출하지 않았을까.
  Geek U.S.A.는 헤비메탈 느낌을 살린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드러밍, 멜로우한 보컬의 조화를 듣는 것이 큰 즐거움을 주는 트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에는 이런 서정적인 가사가 숨어 있다. ‘꿈속에서 / 우린 연결되어 있어요 / 샴 쌍둥이처럼 / 손목 쪽이 붙은 / 그러고 나는 우리가 버림받았다는 걸 알았어요 / 낙원에서 추방된 거죠(In a dream / We are connected / Siamese twins / At the wrist / And then I knew we'd been forsaken / Expelled from paradise)’.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 Mayonaise. 올바른 표기는 Mayonnaise이므로 여기에선 의도적으로 철자를 틀리게 쓴 것인데, 스매싱 펌킨스의 곡들에선 이런 오탈자가 자주 등장한다. 다음 앨범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에서 Mellon Collie는 Melancholy를, Galapogos라는 곡은 Galapagos를 오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도적인 오기는 언어유희적인 기능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같은 단어의 수많은 다른 목록들이 아니라 그것만 확인된다는 이점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 Galapagos를 검색하면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관한 수많은 정보들이 화면에 나타나지만, Galapogos를 검색하면 스매싱 펌킨스의 곡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식이다. 마요네즈를 Mayonaise라고 검색할 때도 마찬가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검색해 보니 빌리 코건이 과거 인터뷰에서 my own eyes라는 말을 Mayonaise를 통해 언어유희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구체적인 설명이 주어지면 제목에 대한 비밀이 쉽게 풀려버려 감상자의 상상할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가사에서 읽을 수 있는 화자의 심리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를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을 때, 그럴 것'이라는 의지를 내보이며 궁극에는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다'고 외친다.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는 외부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데, 결국 무기가 되는 것은 ‘나 자신만의 시선'일 것이다. 싸구려 기타가 제멋대로 윙윙대는 것을 노래 속에 집어넣은 부서진 시간의 자화상 같은 곡. 그러나 희망이 병존하는 노래. 바닥 없이 추락하는 듯한 깊은 우울 속에서 뜬금없는 마요네즈를 상기시키며 깊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적극적으로 우회하고자 하는 창작자의 의도도 읽을 수 있었다.
  Spaceboy는 빌리 코건이 남동생 Jesse에게서 영감을 얻어 쓰인 곡이라고 한다. 제시는 뚜렛 증후군과 염색체 이상 등이 야기한 증상들로 행동이 일반 사람들과 달랐고, 사람들로부터 매우 다른 존재처럼 인식되곤 했는데 빌리 코건은 그런 그와 자신의 비일반성에서 동질감을 느꼈고 그런 감정을 이 곡에서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집에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다. 자신이 ‘죽기 전에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거라는 위기감을 내보이며 ‘네가 나를 선택하면 / 그건 틀리지 않을 것’이고, ‘우린 (이곳에) 속하지 않을 것(It won’t be wrong은 We won’t belong이 된다)’이라며 대상과 자신을 결속하면서 철저히 아웃사이더 정서에서 호소하고 있다.
  <Siamese Dream>에는 나와 꼭 닮은 사람을 안 듯한 기쁨, 혹은 도취가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깨달음은 기쁜 한편 서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어쩌면 날 때부터 인간으로서 ‘나'는 혼자가 아니기를 바라고 줄곧 ‘함께'이고 싶었을 테니까. 내가 그걸 바란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이길 갈구했다면, 마침내‘함께'이고 싶은 대상을 발견했을 때 눈물부터 날지 모른다. 꼭 함께이고 싶은, 정말 나와 꼭 닮은 것만 같은, 우리의 꿈이 일치하는 것만 같은 그런 대상을 발견했을 때의 기록. 그들은 같은 꿈을 꿀 것이다, 같을 수밖에 없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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