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ely Maybe / Oasis



아무래도 지금은 오아시스의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를 돌아보기에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 2009년 8월 해체를 선언한 다음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는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로, 리암 갤러거(Noel Gallagher)도 솔로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지만, 2024년 8월 오랜 불화 관계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은 마침내 오아시스 재결합으로 뜻을 모아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재결합 발표를 즈음해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가 30주년을 맞았다. 이 앨범은 1994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 즉각적인 인기를 얻었다. 대중적인 지지뿐만 아니라 비평적 찬사도 이어졌다. 오아시스가 보여준 세계는 당시 미국에서 부상하던 그런지 음악과 차별화되는 낙관적 발상과 동적 에너지를 담고, 80년대 영국 록 음악의 유산을 수용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음울하던 분위기에서 탈피하는, 말 그대로 오아시스만의 개성과 실감 나는 사운드로 록과 대중문화에 활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특히 호평을 얻어 왔다. <Definitely Maybe>는 흔히 ‘브릿팝'이라 일컬어지는 영국 록 음악의 토대를 마련한 기념비적 앨범 중 하나다. 지금은 그저 한 시대를 풍미한 사조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1990년대 당시 만들어진 브릿팝 음악들은 그야말로 비범한 업적으로 남아 있다. 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로 대두되는 브릿팝 그룹들은 지금도 팬들의 사랑과 충성심을 쉽게 거머쥘 만한 위력을 가졌다. 오아시스 재결합에 대해 보인 열띤 반응은 브릿팝의 잠재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Definitely Maybe>에서 가사는 지극히 현실에 기반해 단순하고 간결하게 쓰였다. 상상력을 비약시키거나 의미를 비틀어 시적 효과로 확장하는 등 수사적 형태를 고심해 구축하지는 않았다. 상상력은 현실의 압박에 의해 위축되었거나 화자는 종종 헤도니즘적 열망에 주목한다. 한편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들과 리드 보컬 리암의 근성 있는 목소리는 과연 록 음악만이 전해줄 수 있는 정서적 호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싱글 발표 곡이던 Shakermaker는 느릿한 전개로 다소 퇴폐적 분위기를 그리는 데 열중한다. 오아시스가 좋아했던 스톤 로지스의 음악이 연상되기도 했다. Live Forever는 오아시스의 대표곡이라 할 만한 인간미 있고 친숙한 그런 정서가 녹아 있다. 누군가의 일기장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러나 거기엔 우리 각자가 투영되어 있기에 우리는 노래를 듣고 즉각 반응하고 동일시의 경험을 통해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Columbia는 상대적으로 꾸밈이 있는 곡처럼 느껴져 이색적이었다. Live Forever가 도입부에 드럼을 배치했다면, 여기에서는 기타의 노이즈가 도입에 놓여 청자를 혼돈의 중심부로 인도한다. 이러한 도입부의 두드러진 성격은 애초에 ‘노래는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창작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암묵적 사인에 가깝게 느껴진다. 오아시스와 글램 록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곡은 글램 록을 연상케하는 도취와 함께 저항성이 묻어난다. 이 곡의 창작 배경과 오아시스의 3집 <Be Here Now>에 약물의 남용 문제가 언급되어 있는데, 약물 문제는 재즈 시대부터 수많은 록 그룹들이 통과해야 했던 공공연한 사안이었고 데뷔 이후 브릿팝의 선두주자가 된 오아시스에게도 결코 비켜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환각성 약물로 인한 순간적 도취를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아선 안되겠지만 불안한 심리나 상황에 놓인 채 약물에 손을 대거나 거기에 의존해 버티는 창작자들의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함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라는, 어찌 보면 굉장히 취약한 조건을 가진 존재가 감내하지 못하던 약물의 과용은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특유의 낙천적이고 제멋대로 구는 태도 때문일까? 고뇌가 머물지 못할 것 같은 치열한 현실감과 저돌성, 그리고 삐딱함 때문일까? 비록 약물을 사용하긴 했어도 오아시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다투고 쉽게 화를 쏟아내고 경솔하게 돌아서버렸지만, 후회도 했고 결국 시간이 흘러 형제는 재회를 약속했다. 아직 살아 있어서, 그들은 지나간 역사에 마침표를 찍지 않고 자발적으로 역사를 수정해 이어나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마지막 트랙 Married with Children은 스튜디오 녹음 같지 않은 느낌으로 아마추어적 감성에 힘을 실었다. 실질적으로 이 앨범이 1993년부터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녹음이 시작되어 기적적인 마무리로 완성에 도달했다는 복잡한 과정을 상기하면, 이 곡은 그간 쏟아진 여러 크루들의 노고를 한 방울의 땀으로 변환시키는 소탈한 마침표라 할 수 있다. 훗날 브릿팝의 선구자가 되었지만, 방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며 투덜거리던 지루하고 평범한 나날들을 잊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자기 자신이 되고',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면, 흔들리지 않으려면, 아주 초라하고 소박한 장면을 가슴 깊이 간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아시스는 한국의 많은 록 음악 팬들이 좋아하는, 쉽게 말해 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록 그룹 중 하나로 여겨진다. 오아시스의 직관적 성향은 비슷한 시기에 주목받았던 블러나 라디오헤드 등에 비하면 예술성 면의 점수를 깎아내릴만하지만, 록 음악이 왜 예술적이어야 하는지 물어보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답을 내리며 새삼 놀라게 된다. 오아시스의 <Definitely Maybe>는 브릿팝의 시대적 향연 속에서 록 음악의 정수를 향한 자유와 패기 있는 열망을 그들만의 와일드함, 그러나 몹시도 인간적이게 느껴지는 본성으로 채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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