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 to the East, look to the West / Camera Obscura
카메라 옵스큐라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한 인디 팝 그룹이다. 199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2024년인 지금까지 모두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앨범 작업은 2000년대 초반에 몰려 있고, 2013년 발표한 <Desire Lines> 이후 3년 정도 휴지기를 가졌다. <Desire Lines> 녹음 기간 중 키보디스트 캐리 랜더(Carey Lander)가 암을 진단받았고, 결국 그녀는 투병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트래시앤 캠벨은 가디언을 통해 캐리는 멤버들 가운데 유일하게 음악을 전공한 멤버였고, 자신과 절친과도 같은 사이로 지내며 많은 격려와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캐리의 죽음 이후 3년이 흐른 2018년이 되어서야 카메라 옵스큐라 멤버들은 다시 모여 음악 이야기를 이어가 볼 수 있었다. 올해 5월에 나온 <Look to the East, look to the West>는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의 최근작이다. 한층 성숙한 시선으로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소박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변함없이 가지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커버 사진 속 다소곳이 앉은 모델의 모습과 잔잔한 강변 풍경이 전해주는 평화로움처럼 음악도 듣기 좋고 깊이 생각할 것 없는 감미로움으로 청자를 인도하고 있었다.
Liberty Print는 로파이 비트 분위기로 시작되면서 10년의 공백이 무색한 젊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뒤를 잇는 We’re Going to Make it in a Man’s World에서는 새로 영입된 키보드 연주자 도나 마시오샤(Donna Maciocia)와 트래시앤 캠벨, 두 여성 멤버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아무래도 이 곡이 선명히 내보이는 페미니즘적 제스처를 강조하는 데 목적을 둔 방식으로 이해가 된다. 이 곡은 영화 제작자이자 예술가인 마가렛 살몬(Margaret Salmon)의 영화 "Icarus (after Amelia)"--글래스고 여성들이 다양한 노동에 임하는 모습들을 편집해 보여주는 내용--의 음악 작업으로서 시작되었는데, 역시나 이는 뮤지션에게 영감의 요소로 작용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트래시앤과 도나는 누가 그들을 주목이나 할지, 음악계에서 과연 그들의 위상은 어디쯤인지에 대한 고민을 노래를 싹 틔울 씨앗으로 삼았다. 코러스부의 반복되는 라인 We’re gonna make it in a man’s world를 주문처럼 따라 부르다 보면 당신(여성)도 문득 용기가 샘솟을 것이다! 컨트리 풍 기타 멜로디가 흥미진진한 Big Love도 이 컴백 앨범을 빛내는 에센셜 트랙이라 할 수 있다. ‘오, 허니, 다신 거기로 돌아가지 마 / 거기에 당신을 위한 자리가 없단 걸 알잖아(Oh, honey, don't go back there / You know there's no room for you there)’, 라며 힘들고 어긋난 사랑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연인의 에피소드를 그린 이 곡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더 큰 믿음을 가지도록 격려하는 의도로서 쓰였다고 한다.
Only a Dream, Sleepwalking, Sugar Almond 같은 발라드 곡들을 수록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의 포인트로 여겨졌다. 과거 앨범에 비해 사운드를 많이 비워낸 스타일이 특징적이었다. 특히 노래와 어쿠스틱 피아노 반주로만 진행되는 Sleepwalking이 구조적으로 복합적인 심리를 담고 있어 주목했는데, 이 에피소드는 ‘우리는 사랑 속을 헤매는 몽유병자들이었어 (Oh we were sleepwalking through love)’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끝이 난다. 사랑은 ‘Big Love’의 해프닝처럼 지나가버리기도 하고, Sleepwalking에서처럼, 기이한 인체 반응을 야기하는 몽유병처럼 망상스럽기도 하다. 또한 사랑은 We’re gonna make it in a man’s world에서 연대하는 여성의 힘으로서 나타나기도 하고, Sugar Almond에 그려지듯 순수한 애도 그 자체로 맺혀 있기도 하다. Sugar Almond에서 트래시앤은 떠난 캐리를 추모하고 있다. 그녀의 슬픔과 허전함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투명하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Look to the East, Look to the West에 이르면, 다시 커버 사진 속 그 잔잔한 물결 이미지가 떠오른다.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무너질 것만 같은 순간을 겪지만 그러한 위기를 잘 지나가는 것이 숙제로 주어지는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한 이행은 어느샌가 과도하게 치우쳐버린, 웃자란 집착과 감정의 반대 방향을 향해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우리 앞에는 그저 기상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가 놓여 있을 뿐, 그것은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매섭게 철썩일 뿐, 실은 그 이면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트래시앤은 NME와의 인터뷰에서 캐리의 죽음 이후의 고통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이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서 이해했고, 캐리의 빈자리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 내부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저 동쪽과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 서로 비슷한 풍경을 바라보고 차이들을 비교하고 인정해 보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선 나를 문득 느껴보는 것. 이것이 이 앨범이 던지는 메시지는 아닐까? 거의 10년 만에 꺼내 놓은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개성적이고 인간적이다.

-참조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15/dec/27/carey-lander-remembered-by-tracyanne-campbell-camera-obscura
https://www.nme.com/news/music/camera-obscura-new-single-make-it-mans-world-interview-tracyanne-campbell-look-east-west-3595572
https://www.clashmusic.com/news/camera-obscura-announce-new-album-look-to-the-east-look-to-the-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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