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Kind of Peace / Ólafur Arnalds

 

아이슬란드 태생의 뮤지션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은 새롭거나 듣기 좋을까? 그리고 클래시컬한가? 그렇게 묻는다면, 모두 다 맞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대단히 틀을 깨는 발상으로 이끌어가진 않지만 자유롭고 경계가 흐린 음악을 들려준다. 때때로 둔중한 애통함으로 가슴 깊은 곳을 타격하고 악기가 가진 본연의 빛깔을 특유의 생동감으로 연출해내며 청자를 침착한 몰입으로 인도한다. 말하자면 그의 음악은 청자에게 대담하게 사색적일 것을 요구하거나 혹은 그렇게 되도록 이끈다.

클래식 크로스오버, 인디-클래시컬, 포스트-클래시컬 등의 장르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그의 음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의 이력에 관해 알아보던 중 굉장히 흥미로운 과거 행보를 접하게 되었다. 우선 그는 할머니의 권유로 어린 시절부터 쇼팽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이는 결국 그가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주었지만, 헤비메탈을 좋아하던 십 대 소년에게 쇼팽은 분명 듣기 싫던 음악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차츰 쇼팽의 음악을 향해 열리고 나아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도 기르게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쌓은 특별한 추억 덕분에 쇼팽은 그에게 유독 친밀하고 중요한 작곡가로 남게 되었고, 나중에 피아니스트 앨리스 사라 오트(Alice Sara Ott)와 함께 새로 작곡한 트랙들과 쇼팽을 곡들을 재해석한 <The Chopin Project>를 작업하게 된다.

두 번째로 독특한 그의 이력은 헤비메탈 밴드에 가담했던 사실이다. 독일 밴드 Heaven Shall Burn의 아이슬란드 투어에서 드러머로 활약하며 밴드에게 자신이 손수 만든 데모 테이프를 건넸는데, 반응이 좋았고 그룹은 그에게 새 앨범 작업의 인트로 곡을 피아노와 현악기를 사용해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음악이 앨범에 수록되고, 레이블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되면서 ‘이런 풍의 음악으로 앨범을 만들어볼 생각이 있’느냐는 반가운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뮤지션 올라프 아르날즈가 이와 같은 흥미로운 배경을 거쳐 왔다고 하면 그와 그의 음악이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다.



올라퍼 아르날즈는 한국에서 두 번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한국에서 알려질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에게 그의 음악은 계속해서 주시하게 되던 대상이었다. 아마도 musicnote를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줄곧 느껴왔는데, 되짚어 보니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난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의 레코드 <Orphée>에 대해 쓸 때에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요한 요한슨과 올라퍼 아르날즈는 같은 아이슬란드 태생이지만, 요한 요한슨의 음악이 가진 컨셉추얼하고 비극적인 면모에 비해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은 보다 따스한 감성이 깃들어 있고, 고전적이면서도 진취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최근작 <Some Kind of Peace>는 더 다정하고 생기 있는, 절망으로 뒤덮인 현실 위에서 희망을 혹은 그 너머를 바라본 레코드가 아닐까 한다.

뮤지션 스스로 말하듯, <Some Kind of Peace(2020)>는 전작 <Re:member(2018)>에 비해 다소 힘을 빼고 내면과 일상에 더 주목한 앨범이다. 원만한 컬래버레이션을 위한 일종의 음악 허브인 Opia를 창립하는 등 그가 꿈꿔 오던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팬데믹이 가져온 타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팬데믹 봉쇄기를 겪으며 그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일상적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앨범은 뮤지션의 그러한 자각을 원동력으로 삼아 풀어나간 앨범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Re:member>가 알고리듬 기반의 프로그램 스트라투스(Stratus)를 선보이며 전자 음악과 클래시컬 악기의 앙상블로 구축된 특유의 모던하고 유기적이며 탐구적인 사운드를 유지하면서 테크닉적으로는 전위적인 도약을 이뤄 내는 성취를 보여주었다면, <Some Kind of Peace>는 조금 더 비워내고 피아노와 사람의 음성을 나란히 걷게 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 악기와 악기 사이에서 일어나는 온기와 영향으로서 사운드스케이프를 채우고 있는 느낌이다. 피처링에 참여한 아티스트들도 여럿이다. 오프닝 트랙 Loom에 디제이 보노보(Bonobo)가 참여해 누 재즈 풍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드리우며 미지의 이야기의 서막을 열고, 아이슬란드 싱어송라이터 JFDR이 Back to the Sky에서 노래를 들려준다. The Bottom Line에 참여한 요진(Josin)의 목소리는 풍성함과 단정함, 성숙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아마존 부족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Woven Song은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처럼 생생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치유의 힘을 전해 주는 것만 같다. Still / Sound는 듣자마자 즉각 매료됐던 짙은 울림의 일렉트로닉 튠이었다. 안개 끼고 미니멀한 건반 멜로디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다 그것이 어디론가 사라지면 주변부에 있던 나머지 소리들이 배경을 가득 채우는. Back to the Sky의 JFDR의 노래에는 상실과 엇갈림이 배어 있어 슬프고 어두운 분위기를 준다. Josin이 참여한 The Bottom Line은 한층 더 복잡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두 보컬 곡 모두 같은 종류의 자연적 대상인 ‘하늘'과 ‘대양'을 존재가 회귀하는 근원으로서 그리고 있다. The Bottom Line에서는 ‘물이 되거나(Be the water)’, ‘모든 것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Be all or nothing)’라며, 그래서 물과 같은 형상에서 당신이 어느 다른 것으로 이형 되거나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지워지더라도 존재는, 당신 자신은 소중하다는 뉘앙스가 이면에 서려 있는 것 같다.

작곡가의 해설에 따르면 We Contain Multitudes는 제2의 집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정글 속에서 오래된 피아노를 치며 소일하다 쓰게 된 곡이라 한다. 월트 휘트먼(Walter Whitman)의 시구절에서 따온 위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우리 개인은 실은 다양함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도록 만든다. 마지막 트랙 Undone은 탄생과 죽음이 서로 상반되지 않고 나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보도록 하는 의도를 가진 가사-내레이션-를 들려준다.

<Some Kind of Peace>는 고전적 자취의 답습이 아니라 전자 음악의 매끄러운 반영과 조화로 클래시컬함을 능동적으로 쇄신하고 동시대적 교류의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주면서도 인류의 오랜 습관 같은 잠언적 명상을 길잡이로 삼은, 결국 존재와 인간의 비애 모두를 폭넓게 바라보고 포용하고자 한 음악적 시도로 읽힌다. 올라퍼 아르날즈의 <Some Kind of Peace>는 말 그대로 어떤 종류의 평화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자기만의 사적이고 고유한 내러티브로 엮인 이 이야기는 차분하고 구체적이며 조금도 공허하지 않다.





-참조

https://www.alternativeclassical.co.uk/interviews/olafur-arna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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