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Born Screaming / St. Vincent

 

세인트 빈센트는 자신의 일곱 번째 앨범 <All Born Screaming>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장 재미없는 앨범이에요'라고 말했다(https://ilovestvincent.com/pages/about-all-born-screaming). 이전 작,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영화에 나올 법한, 다소 우스꽝스럽고 천박해 보이는 B급 컨셉을 표방한 <Daddy’s Home(2021)>이나 모큐멘터리 <The Nowhere Inn>의 주요 영상 등을 보면 그녀가 뮤지션이자 배우로서 내보이는 개성과 비틀린 유머 감각이 얼마나 젊고 발칙한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반체적이며 팜므파탈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버클리 음대를 중퇴하고 음악 산업의 현장 속으로 뛰어든 아웃사이더적인 면모와 당찬 자신감. 세인트 빈센트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보면서, 그녀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도약을 거치며 음악계의 색다른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세인트 빈센트의 일곱 번째 앨범 <All Born Screaming>은 직설적이고 담백한 태도로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 앨범은 꽤 진지한 톤을 갖고 있다. 이는 ‘전염병 이후(post-plague)’ 뮤지션의 질문이 보다 원초적인 곳을 향해 던져졌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모두 ‘비명을 지르며 태어’났고,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이 세상으로 떠밀려 나온 존재가 호흡을 시작했다는 뜻이므로 좋은 신호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앨범은 커버 이미지부터 파격적이고 저주스러우며 금기스럽다.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지점은 이것이 ‘전염병’ 이후의 고민에서 비롯된 작품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모든 일상적인 일들이 마비되었던 그 시기 문득 죽음에 대해 내다보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큰 탈이 없는 듯 지나왔지만 들여다보면 내부는 참혹했고 현재와 미래는 두려움으로 번져갔다. <Daddy’s Home>은 의도적으로 70년대를 탐구한 뮤지션의 전작으로,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실마리로 접근해 본 컨셉추얼한 앨범이었기에 논의에서 제외하더라도, 그녀를 록과 팝 음악계의 틈새로부터 입지를 다지도록 이끈 <St. Vincent>와 <Masseduction>의 탁월한 테크니컬함을 상기하면 분명 <All Born Screaming>은 ‘가장 재미없거나' 어쩌면 나이가 든 성찰적인 성질을 띤다. 여기에선 음악적 변화도 많이 눈에 띈다. 우선 그녀는 이 앨범을 자신이 런칭한 레이블 Total Pleasure를 통해 작업했고, 지금까지 존 콩글턴(John Congleton),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 등의 프로듀서들과 공동으로 해왔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독립적인 앨범이기에 아무래도 타의에 의해 덜 규제받으며 자유로운 실험과 도전정신이 더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상업성보다 음악성에 더 무게를 두면서 자신만의 록 사운드를 실험적으로 소화해낸 것이 아닐까. 앨범의 메인 컬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프로그레시브 혹은 인더스트리얼 분위기의 록 사운드는 음악적 변신의 테마처럼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과거에 묵혀 두었던 에고를 이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같은 진정성과 더욱 긴밀히 교류한다. 그것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따라붙는 현대 사회의 신경질적인 태도나 시스템,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각종 재앙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자의 다급함을 형상화해낸 듯한 컨셉을 효과적으로 견인하거나 혹은 파괴하고자 하는 대상을 타파하며 이곳에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잔해처럼 남긴다. 싱글 발표 곡이던 Broken Man과 Flea에서 드럼을 치는 연주자는 너바나(Nirvana)의 전 멤버였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다. 이들은 2014년 락 앤 롤 홀 오브 패임 인덕션 세레모니에서 함께 너바나의 곡을 연주한 바 있다. Broken Man에서는 어둡고 비관적인 그런지 음악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뮤직비디오에선 인물과 마이크만 보일 뿐이지만 질병, 부적응, 내몰림 등 현대의 병폐들이 경계 없는 암흑 공간에 움츠리고 있는 것만 같다. 빈틈없이 헤비한 Broken Man에 비하면 Flea는 충분한 볼거리가 있는 쇼를 짐작게 하는 완만한 트랙이다.




Broken Man과 Flea, Big Time Nothing은 프로그 록과 인더스트리얼 록 사운드를 재현한 하나의 트릴로지다. Big Time Nothing을 들으면 세인트 빈센트의 음악적 역량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어딘가 오염된 듯한, 그리고 타협 없는 일렉트릭 비트와 로봇 같은 랩 보컬을 매치하며 시작해 코러스부에서는 그루브감과 클린한 톤의 기타 프레이징을 더하며 솔 음악의 한 악절을 덧붙인 듯 풀어나가며 곡이 너무 절망적으로 치닫지 않게끔 만드는 희극성이 돋보였다.

Sweetest Fruit, So Many Planets부터는 나른한 도취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케이트 르 본(Cate Le Bon)이 피처링에 참여한 All Born Screaming은 커버 이미지와 앞선 싱글 발표 트랙들이 선보인 강세에 비하면 마치 그 이면의 무질서한 무의식 세계를 거닐 듯 느슨한 태도로 나아간다. 펄스, 혹은 진동 이후 노래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오페라 창법 같은 장엄함을 끌어내며 노이즈 섞인 일렉트로닉 텍스처가 흩어진다. 이 형식은 가사의 혼돈을 투영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저 땅 위를 느끼려고 송전탑과 산을 올랐던' , ‘모던 걸의 팬터마임’에 지나지 않은 ‘비참한' 존재인 화자가 ‘우리 모두는 비명을 지르며 태어났어요'라는 숭고한 교리를 반복하며 자신의 감성적인 시를 마무리 짓는 이야기를 6분 정도 듣는다.

비명을 지르며 태어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좋은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이 기막힌 세상에 적응해 살아가는 동안 종종 혹은 자주 몸 어딘가에 불이 붙은 채 걸어 다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몸에 붙은 것이 불인 줄도 모르고 살고 있던 적은 없었는가. Broken Man의 뮤직비디오에서 뮤지션이 잘 연기해 내는 것처럼,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불을 끄려고, 그것이 가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전력을 다해 분노하거나 저항해 본 적이 있던가. 아주 평범해 보이는 나날들 속에서 몸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치열하게 마음을 써야 할 일들이 없는 삶은,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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