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by Your Name Soundtrack / Various Artists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안-아메리칸 작가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는 17세 소년 엘리오와 대학원생 올리버가 만나 서로 사랑에 눈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게이의 사랑이다. 이 주제는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전작들인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다뤄진 ‘욕망’ 에 맞닿아 있고, 결국 감독의 ‘욕망의 발현’ 3부작을 완결하는 작품이 되었다.

엘리오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이성 친구 마르치아와도 교제를 한다. 하지만 마르치아를 향한 엘리오의 마음은 올리버를 향한 것과는 조금 다른 듯 비춰진다. 그 차이는 대상이 이성인지 동성인지 같은 근본적인 다름이나 단순히 엘리오의 마음에서 더 끌리는 대상이 지닌 특이성이나 고유성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올리버가 ‘손님'으로 이곳에 왔고, 곧 떠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싶은 심리가 엘리오의 무의식중에 자리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향해 강한 욕망을 느꼈다면 그 욕망은 대상을 잃는 것 또한 강하게 거부하려 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동성을 향한 사랑이 다소 금기 같아서,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비밀로만 간직해야 할 것 같아서, 첫사랑이자 첫 경험이어서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더 애틋함을 느꼈을 수 있다. 영화 내부에는 엘리오의 사랑을 질타하는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엘리오의 부모님도 그런 문제에 있어서 관대한 지성인 계층으로 설정되어 있고, 심지어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교수는 엔딩에 다다라서 아들에게 무척 의미심장하고 따스한 조언을 건넨다. 우리 몸과 시간, 관계라는 것은 유한하기에 그것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들이 부여하는 고통 또한 침착하게 받아들이며 시련을 통과해 나가기를 바라는 그의 조언은 엘리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고할 만하다.




그저 ‘작업 멘트'인지도 모르지만, 올리버는 자신이 엘리오를 유혹하려고 실은 계속해서 추파를 던졌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한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마음도 자신과 같았음을 깨달으며 그들의 사랑이 맞물려 하나가 되는 기쁨과 사랑을 통한 에너지를 동시에 얻는다. 영화는 동성애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이나 잣대를 배제하고 철저히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북부 이탈리아에 소재한 작은 도시 크레마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부드러운 햇살을 만끽하고, 싱그러운 몸짓들 속에서 낭만적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피아노를 치고 수영을 하는 엘리오의 세상을 경험한다. 이렇게 확보된 풍경 속에서 관객은 한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 데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소년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과 사랑에 상심하는 과정을 읽는 것 또한 관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영화에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에 훼방을 놓는 ‘악당'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지만, 올리버는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올리버는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사회적이고 세속적인 면을 가졌으므로 거기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이다. 엘리오와 밤을 보낸 다음 관계와 마음을 의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였다. 그는 하누카 날 엘리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린 뒤, 자신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지만, 완전히 엘리오의 세상에 속할 수는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어느새 올리버는 순수함이 있던 그해 여름의 빛나는 추억으로부터 멀어져 버렸다. 엘리오가 올리버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흰 눈이 내린 크레마의 모든 풍경이 여전히 낭만적이고 순수했을 테지만, 올리버의 전화를 받은 뒤 엘리오는 자신의 의식 안에서 독처럼 번지는, 사랑과 욕망의 덫에 걸려든 인물로 순식간에 변화해갔다. 그 여름의 광휘를 함께 지나는 동안 이 영화가 이토록 차가운 결말에 다다를 거라곤 쉽게 짐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영화 음악 작업에서 기존에 나와 있는 곡들을 선택해 하나의 사운드트랙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다음에 나온 <서스페리아(Suspiria)>에서는 뮤지션 톰 요크(Thom Yorke)가 스코어 음악을 맡기 때문에 그러한 전통은 이 작품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뮤지션이 스코어를 담당하면 주요 테마가 되는 라이트모티프 선율을 반복하거나 변주하면서 무게감을 부여하고, 기꺼이 그 영화에 대한 한 연구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면 컴필레이션 형태의 사운드트랙은 다정다감한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 느낌으로 기존 곡들을 재발견하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이미 존재하는 노래들이지만, 유일하게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의 노래 두 곡만이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들어졌다. 수프얀 스티븐스는 이색적이며 감미롭고 섬세한 음악들을 선보여 온 미국의 인디 포크 싱어송라이터이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길랭바레 증후군이 발병하여 재활 치료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활동을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가 얼른 회복하여 다시 멋진 음악과 무대를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수프얀 스티븐스에게 처음에 요구했던 것은 영화를 위한 한 곡의 노래였는데, 뮤지션은 두 곡을 만들어 건넸다. 바로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이다. Mystery of Love는 바로크 팝을 상징하던 그의 대표 앨범 <Illinois>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그려낸다고 할 만하다. 폭포처럼 빠르게 쏟아져내리는 멜로디와 안개 같은 잔향이 서로 어우러지고, 가사에서는 눈으로 보지 않고도 느끼게 되는 사랑의 신비로운 경험과 사랑으로 인한 슬픔과 절망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다. 사랑이 아프거나 슬프더라도 그것이 한 존재를 성장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되리란 사실을 쉽게 부인할 수 없듯이, 그는 결국 사랑을 하고 사랑을 앓는 모든 이들이 사랑의 신비로 축복받기를 기원한다.


영화의 엔딩에 흘러나왔던 음악 Visions of Gideon은 Mystery of Love보다 정적인 분위기다. 카메라는 울음을 삼키는 엘리오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고 엘리오가 시선을 두는 벽난로로부터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식탁을 차리느라 분주한 부엌의 소리를 생생히 담는다. 축제의 하누카 날, 그리운 이의 목소리가 전한 소식은 어린 소년의 일생일대의 비보가 된다. 식탁 너머 창밖으론 하염없이 흰 눈이 쏟아지고 엘리오의 눈물은 속으로만 삼켜진다.

영화를 위해 여러 곡들을 편집해 구성된 사운드트랙인 만큼 클래식부터 영화의 배경이 된 80년대에 유럽 지역의 라디오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을 듯한 올드 팝과 지금 이 시대의 인디 포크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와 범위를 폭넓게 통합했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사용된 첫 곡 Hallelujah Junction(1st movement)은 존 애덤스(John Adams)의 1996년 곡으로 미니멀리즘 계열의 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 맞물리고 엇갈리며 반복적인 패턴을 그리면서,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그들만의 길을 날아가는 한 쌍의 나비처럼 나아간다. ‘junction’이 ‘교차 지점'을 의미하듯 서로 다른 장소에 머물던 엘리오와 올리버가 만나게 되는 이 장소에 대한 총체적 은유가 된다.

얼마 전 타계한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피아노 곡들은 피아노라는 전통적인 악기로 크로스오버적이고 혁신적이며 새로운 감성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두 곡 모두 80년대에 작곡된 것들인데, M.A.Y in the Backyard는 그의 앨범 <Illustrated Musical Encyclopedia(音楽図鑑)>에 수록된 피아노 트리오 곡이고, Germination은 그의 영화 출연작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 수록되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나 수프얀 스티븐스 같은 개성적이고 혁신적인 음악가들이, 마치 음악적 재능이 충분한 엘리오의 미래의 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정원에서 엘리오가 기타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자 올리버가 듣기 좋다고 말한다. 그는 다시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엘리오는 기타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가며 올리버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엘리오는 앞서 연주한 감미로운 기타 버전을 다른 버전으로 바꾸어 제법 터프한 연주를 들려준다. 두 사람이 별것 아닌 내용으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흥미로운 에피소드였다. 이때 엘리오가 연주하던 곡은 바흐(J.S. Bach)의 작품 번호(BWV.992), Capriccio in B flat major(사랑하는 형과의 이별에 부치는 카프리치오)의 5장 기수의 아리아(Postilion's Aria: Allegro Poco)이다. 이 곡은 사운트랙에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바흐의 칸타타(BWV.140)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의 4장 “Zion hört die Wächter singen”(시온은 파수꾼의 노래를 듣고)는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바흐에 이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피아노 곡도 두 곡 수록되어 있다. 그중 Le jardin féerique(요정의 정원)는 라벨이 지인의 어린 두 자녀를 위해 만든 피아노 듀엣 곡이다. 존 애덤스의 Hallelujah Junction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연주곡이었다면 이 곡은 듀엣을 위한 것. Le jardin féerique는 여러 동화를 모티프로 한 피아노 모음곡‘Ma mère l'Oye(어미 거위) 가운데 5장이며, 이 곡은 엘리오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영화의 끄트머리에, 긴 여름이 가고 삽시간에 겨울로 변화한 눈 덮인 크레마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이어질 때 배경에 함께 놓여 있었다.


영화를 볼 때,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 마치 사랑에 빠진 듯 우리는 대상에 대해, 혹은 그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사랑은 환상처럼 붙잡을 수도 없지만 온몸으로 빠져들지 않고는 결코 그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다. 사랑은 기쁨과 충만감을 주고 활기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이별이나 절망 따위로 당신을 몹시도 괴롭힐 수도 있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노랫말처럼 사랑은 미스터리하고 신비롭다. 때로는 그것은 두렵다. 하지만 그 누가 눈앞의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시선을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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