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Soundtrack / 조영욱과 사운드트래킹스
서래가 사용하는 ‘마침내'나 ‘단일한'이라는 표현은 구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구어적으로 사용했을 때 분위기가 꽤 어색하고 우스워진다. ‘말씀으로 해드릴까요, 사진으로 할까요'라는 물음에 ‘말씀'이라고 대답하는 것도. 떠올려 보면 외국인의 한국말 ‘부족’ 현상이 자아내는 것은 빈틈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맺게 되는 이상한 하모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경찰과 간병인을 주인공들의 직업으로 삼으며 영화나 일상에서 제법 익숙한 테마들을 다루었지만, 안개 가득한 ‘이포'라는 가상의 도시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솜씨로 일상적이면서도 낯선 빛깔과 리듬을 장면에 부여해 관객을 매혹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은 해준과 서래의 로맨스이다. 해준이 형사이고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데 반해, 서래는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남편을 둘이나 잃었으며,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종잡을 수 없는 영혼이자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혼돈스러운 삶이 이어지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해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다. 해준은 서래에게 자상함을 보여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이유에서 금기가 되거나 결코 나란히 두지 못할 만한 것이 된다. 가능한 한 가장 멀리 있는 존재를 사랑하도록, 마치 두 사람에게 그런 벌이라도 내려진 것만 같다. 사실 이러한 ‘금기적' 코드는 기존의 박찬욱 감독 영화들을 떠올려 보면 매우 친숙한 것들이고, 그 가운데 ‘불륜'이라는 것은 다소 마일드하다 싶은 소재다.
해준이 서래를 만난 뒤 완전히 ‘붕괴'돼버리는 것은, 그가 서래에게 마음을 쏟았기에 뒤따르는 당연한 결과로서 돌아온다. 통속적으로 ‘불륜'으로 치부될 수 있는 기혼자들의 로맨스라는 줄거리를 부인할 수 없지만, 내러티브적으로 주인공들이 경찰과 주요 용의자라는 특성과 함께 서로의 정반대 편에 속해 있다는 극적인 조건이 선행하고 있다. 그것도 경범죄가 아니라 ‘살인'과 연관되어 있기에, ‘사건'은 무조건적으로 가장 먼저 해결되고 풀어내야 할 ‘긴급’한 사안으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서스펜스가 가미된 전개에 몰입도를 더하며 이들의 ‘로맨스'를 저울질하려는 관습적인 태도를 해제할 만한 근거를 확보한다. 이포에 안개가 자욱해 오전에도 해가 없다는 설정처럼, 관객으로서 나는 이들의 로맨스가 진행되는 과정을 봐왔으면서도 거기에 대해 어떤 편견이나 판단을 쉽사리 가져볼 수가 없는 것 같다. (마지막에 서래가 마치 속죄라도 하듯 그렇게 사라지기 때문일까?) 이 영화에서 ‘안개'가 중요했다면 그것은 여러 이유에서였겠지만, 가장 큰 한 가지는 서래가 ‘나는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 이포에 왔나 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결', 혹은 매듭짓거나 단정 짓지 않고 헝클어진 채로 둘 수밖에 없는 사연들에 대한 은유나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헝클어진 채' 두도록 하자는 메시지처럼 읽히는 점이다.
비록 사운드트랙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포의 주제가’라고 말해지는 정훈희의 ‘안개’(정훈희와 송창식의 듀엣 버전)는 영화 안에서 내재 음향으로도 흘러나왔고,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에도 들려오면서 관객들과의 감정적인 유대를 강화한다.
조영욱 음악 감독에 대해 알아보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접속>의 사운드트랙을 컴필레이션으로 만드는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접속>의 사운드트랙이 있기 전까지 한국 영화 시장에선 사운드트랙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한다. 조영욱 감독이 음반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해외의 곡들을 쓸 때 저작권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이 있었고,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직접 전화를 걸어 담당자들과 통화를 하면서 부딪쳤는데, 결국 그 과정이 한국에서 사운드트랙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확립하도록 이끌었다는 이야기가 나로서는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때 나는 <접속>이란 영화를 즐길 만큼 성숙하진 못해서 그 커다란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가 여러 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대중적으로도 무척 화제가 되었던 기억만큼은 선명히 간직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곡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헤어질 결심>의 스코어 음악들은 오케스트라 편성보다 실내악적인 소규모 분위기에 집중해 작업되었다. 대부분 짤막한 스코어들은 저마다의 완결성을 가지기보다 전체적인 큰 덩어리를 구성하는 조각들로서 파편성을 띤다. 전반적으로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탬버린, 캐스터네츠, 우드블록, 봉고 등의 타악기들을 매치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오케스트라나 현악기군, 피아노 등의 쓰임이 주가 되지 않은, 이를테면 변방의 것들, 밀려난 것들이 메인 스테이지에 오른 것이다. 이 새로운 멜로 영화처럼, 새로운 음악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세팅이라 할 수 있다.
엔딩곡 ‘서래'의 테마 선율을 차용하고 있는 ‘우는구나'에서는 과감히 현악 오케스트라가 등장해 모처럼 영화음악다운 음악을 만난다는 인상을 주었다. 클라리넷이 가진 음색은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여기에서 이 악기가 그려내는 선율은 서글프고 위태롭다. 그래서 이 악기는 마치 서래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사랑한 사람을 망친 것, 그를 ‘붕괴'시킨 것이 바로 자신임을 막 깨달은 사람의 사연을 듣는 일인 듯 마음을 아리게 한다. 탬버린의 둔탁하고 흐트러진 리듬은 사운드트랙의 전반적인 흐름을 떠올려 보았을 때 진지함이 넘치는 선율들을 경쾌하고 신선한 체험으로서 이끌어가고 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암벽을 타고 비금봉을 오를 때 언급한 음악이다. 이 곡은 1901년 작곡된, 말러가 반해버린 여인 알마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곡으로 알려져 있다. 아다지에토는 무척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져 사랑으로 인한 도취감이 극에 달한 인물의 내면 풍경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아름답고 위태로워서 내면에 가득 차오른 사랑이 순식간에 독으로 변해버리진 않을까 염려하는 불안을 동반하고 있다.
말러는 생전에 그가 작곡가로서 얻은 명성보다 지휘자로서 얻은 명성이 더 높았다. 그의 교향곡들은 다소 난해하고 복잡해 선호도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었는데, 1960년대에 이르러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말러 교향곡들의 지휘를 맡아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번스타인이 비엔나 필 하모닉과 지휘하는 버전이 유명한데, 지휘자의 색채가 강한 점과 장례에 쓰였다는 점 등이 원곡이 가진 순수성을 오롯이 체험하고자 하는 현대의 청취자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사운드트랙에는 한국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버전이 실려 있는데, 번스타인과 비교해서는 더 명쾌하고 클리어한 느낌, 샤프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헤어질 결심> 사운드트랙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사운드트랙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매우 영리한 영화 음악 같다. 영화에 공생하면서도 서로 윈윈하는 효과를 낳았고, 말러 곡이 가진 유명한 탁월함과 안개라는 가요의 깊은 영향력, ‘서래' 테마 스코어의 독보적인 위상으로 노련하게 정상에 오른다. 영화는 물론이지만, 영화 음악이 미치는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가늠할 수 있게 만든다.
-참조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2407091265i&category=&sns=y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494
https://www.mk.co.kr/news/culture/9007883
영화 음악은 조영욱과 사운드트래킹스(Cho Young-Wuk & Soundtracking)가 맡았다. 조영욱 음악 감독은 오래전부터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해왔다. 그가 참여한 영화보다 참여하지 않은 작품들을 거론하는 편이 더 간결할 것 같다. 감독의 초기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과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를 제외한 영화들을 그들은 함께 작업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과 일적인 것 외에도 서로 나누는 것이 많은 친하고 오래된 관계라 말했다. 두 사람의 친분은 분명 영화와 음악 작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이 사운드트랙을 듣고 인터뷰 등을 찾아보면서, 그들의 친분이 비록 보이거나 측정되기 어려운 얼마만큼일지라도 매우 위력 있는 여유를 마련하고 신뢰와 허락을 가능케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는 내가 극장에서 보고 너무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충격을 받았던 영화다. 그때 사운드트랙을 시디로 들었는데 영화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만큼 서정적면서도 강렬하게 서글픔을 자아내던 테마 곡들의 선율들은 영화와 인물들의 실루엣처럼 달라붙어 아직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조영욱 음악 감독에 대해 알아보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접속>의 사운드트랙을 컴필레이션으로 만드는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접속>의 사운드트랙이 있기 전까지 한국 영화 시장에선 사운드트랙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한다. 조영욱 감독이 음반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해외의 곡들을 쓸 때 저작권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이 있었고,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직접 전화를 걸어 담당자들과 통화를 하면서 부딪쳤는데, 결국 그 과정이 한국에서 사운드트랙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확립하도록 이끌었다는 이야기가 나로서는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때 나는 <접속>이란 영화를 즐길 만큼 성숙하진 못해서 그 커다란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가 여러 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대중적으로도 무척 화제가 되었던 기억만큼은 선명히 간직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곡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헤어질 결심>의 스코어 음악들은 오케스트라 편성보다 실내악적인 소규모 분위기에 집중해 작업되었다. 대부분 짤막한 스코어들은 저마다의 완결성을 가지기보다 전체적인 큰 덩어리를 구성하는 조각들로서 파편성을 띤다. 전반적으로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탬버린, 캐스터네츠, 우드블록, 봉고 등의 타악기들을 매치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오케스트라나 현악기군, 피아노 등의 쓰임이 주가 되지 않은, 이를테면 변방의 것들, 밀려난 것들이 메인 스테이지에 오른 것이다. 이 새로운 멜로 영화처럼, 새로운 음악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세팅이라 할 수 있다.
엔딩곡 ‘서래'의 테마 선율을 차용하고 있는 ‘우는구나'에서는 과감히 현악 오케스트라가 등장해 모처럼 영화음악다운 음악을 만난다는 인상을 주었다. 클라리넷이 가진 음색은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여기에서 이 악기가 그려내는 선율은 서글프고 위태롭다. 그래서 이 악기는 마치 서래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사랑한 사람을 망친 것, 그를 ‘붕괴'시킨 것이 바로 자신임을 막 깨달은 사람의 사연을 듣는 일인 듯 마음을 아리게 한다. 탬버린의 둔탁하고 흐트러진 리듬은 사운드트랙의 전반적인 흐름을 떠올려 보았을 때 진지함이 넘치는 선율들을 경쾌하고 신선한 체험으로서 이끌어가고 있다.
사운드트랙을 엘피로 듣는 동안 이따금 영화의 대사들이 흘러나와 청취의 몰입도를 높이기도 했다. 스쳐 지나가버린 영화의 장면들을 다시 꺼내 보도록 하는 대사들은 영화와 음악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돌아 보면 이 영화는 진지함과 위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음악도 그와 무척 닮아 있었다. 살인사건과 서래의 파멸이 주는 무게가 결코 어딘가로 흩어져 버리지 않았듯, 수시로 균열을 만들어내던 서래의 어색한 한국어라던가 피식 웃는 태도, 그러나 잘 규정할 수가 없던 서래라는 캐릭터처럼 미스터리하고 엉뚱한 분위기 또한 어딘가로 흩어져 버리지는 않았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암벽을 타고 비금봉을 오를 때 언급한 음악이다. 이 곡은 1901년 작곡된, 말러가 반해버린 여인 알마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곡으로 알려져 있다. 아다지에토는 무척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져 사랑으로 인한 도취감이 극에 달한 인물의 내면 풍경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아름답고 위태로워서 내면에 가득 차오른 사랑이 순식간에 독으로 변해버리진 않을까 염려하는 불안을 동반하고 있다.
말러는 생전에 그가 작곡가로서 얻은 명성보다 지휘자로서 얻은 명성이 더 높았다. 그의 교향곡들은 다소 난해하고 복잡해 선호도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었는데, 1960년대에 이르러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말러 교향곡들의 지휘를 맡아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번스타인이 비엔나 필 하모닉과 지휘하는 버전이 유명한데, 지휘자의 색채가 강한 점과 장례에 쓰였다는 점 등이 원곡이 가진 순수성을 오롯이 체험하고자 하는 현대의 청취자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사운드트랙에는 한국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버전이 실려 있는데, 번스타인과 비교해서는 더 명쾌하고 클리어한 느낌, 샤프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2407091265i&category=&sn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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