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T. the Extra-Terrestrial Soundtrack / John Williams

 

이티는 지구에 홀로 남겨진 외계인이고, 주인공 소년 엘리엇의 친구가 된다. 이티는 인간들과 비슷해 보이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처럼 옷을 입지도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팔 길이나 머리모양도 독특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농도 짙은 휴머니즘 속에서 이티는, ‘외계 생명체’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티>는 스필버그 감독의 제작되지 않은 영화 “Night Skies”의 중심 소재를 이어 받아 완성되었다. 그 당시 그는 <폴터가이스트>라는 공포 영화의 각본도 썼는데, 그 영화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토브 후퍼(Tobe Hooper)가 연출을 맡았고, <이티>와 마찬가지로 1982년 개봉했다. 이에 대해 스필버그 감독은 “<폴터가이스트>는 나의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고,“<폴터가이스트>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 <이티>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 구분 지어 이야기했다. 그는 각본가로 활동하던 멜리샤 마시슨(Melissa Mathison)에게 “Night Skies”의 줄거리를 들려주었고, 그녀는 그 스토리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야기에 살을 보태면서 지구에 남겨진 외계인과 지구에서 외톨이처럼 살아가던 소년이 친구가 되는 <이티>의 각본을 완성하게 되었다.

지구의 언어를 알지 못하던 이티는 엘리엇의 집에 머물며 마침내 간단한 언어를 습득한다. 아주 간단히 몇 가지 단어만 말하지만 그 정도만 표현해 주어도 인간과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엘리엇은 헛간에 숨어 들어온 이티를 초코볼로 유인해 집 안으로 데려온다. 이티는 엘리엇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며 반응을 보인다. 이티의 모방은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두 존재가 서로 소통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확실한 사인이었다.



잠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아들은 외계인 이티와 닮은 점이 많다. 우리 아이는 3살이 되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여러 병원을 다니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고, 결국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자폐 성향을 보이고, 아이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으며 그 범위와 규모는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가장 두드러진 장애 요인은 언어 사용 능력이다.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단어는 몇 가지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언어를 사용해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성이 많이 부족하다. 여러 치료들과 언어 치료를 꾸준히 받아 오고 있지만 발전은 아주 더디다. 영화에서도 그려지지만, 언어적 모방을 시작하기 전 단계가 바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자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소통의 결여이므로, 자폐 성향을 보이던 우리 아이에게는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말하는 것보다 대상인 나를 바라보고 모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행동 모방을 넘어 한 음절 언어 모방이 가능해졌지만 두 음절을 연결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아이는 의미 있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자기만의 말이 꽤 많다. 외계어라고 할까. 밝고 명랑한 편이라 기분이 좋을 때면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점프도 곧잘 하면서 희한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가끔 공공장소에서 그런 소리를 내면 사람들의 시선이 곧장 우리에게 쏟아진다. 눈치는 빨라서 주의를 주면 곧 조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이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은 없지만 나는 우리의 미래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우리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밝을 것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릴 때 이 영화를 보면 ‘외계인’과 지구인 소년의 특별한 우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 이 영화를 ‘소통’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보니 새롭게 이해되는 것들이 있었고, 그렇게 내 상황도 빗대어보게 되었다. 엘리엇과 이티의 관계는 언어 외적인 소통을 통해 맺는 우정에 관한 일깨움을 준다. 다른 사람들이나 반려견과 맺는 관계와 다른 유일무이함에 대한 엘리엇의 무의식적, 거의 직관적인 자각이 이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연료였다. 엘리엇은 이티와 정서적으로 연결되고 그들은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단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이해하면서 일어난 마법이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언어중심의 ‘고등한’ 방식과는 사뭇 다르지만 오히려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보다 더 긴밀히 교류할 수 있었던 진실된 마음이 소년과 이티 사이를 이어 주고 있었다.

영화 <이티>가 80년대 클래식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영화음악 스코어를 맡은 존 윌리엄스의 이름도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들 대부분을 그가 맡았고, 그 밖에도 <스타 워즈> 시리즈, <슈퍼맨>, <나 홀로 집에>,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의 스코어 음악들을 바로 그가 담당해왔다.

스필버그 감독과 작곡가는 14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존 윌리엄스는 첫 만남에서 자신보다 훨씬 어리지만 영화 음악을 폭넓게 알고 있던 스필버그 감독을 아주 총명한 십 대로 여겼다고 한다. 스필버그 감독의 첫 작품 <슈가랜드 특급 (1974)>이 두 사람의 첫 협업이었고, 이듬해 개봉한 <죠스 (1975)> 음악에서 불길한 음조의 오스티나토를 강조한 시그니처 사운드로 무척 테마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할리우드 영화 음악계에서 그의 활약은 <죠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의 굵직한 작품들과 함께 그의 음악은 영화라는 문화 산업 속에서 거의 한 시대의 뼈대를 구축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외면했던 것 같은 그 영화들처럼, 존 윌러엄스의 음악들을 이 기회에 다시 찾아보니 그 시절 영화들의 추억과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에서 트랙리스트의 타이틀만 죽 읽어 보아도 영화의 내용을 어느 정도 요약하고 있는 듯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회상이 될 것이고 영화를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게는 궁금증을 품게 하고 흥미를 돋우는 목차 역할을 한다. 영화의 길잡이가 되는 Main Title은 성간 공간에서 여러 물질들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인해 일어나는 듯한 신비로운 침묵과 앰비언스를 가득 머금고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날 천장이 높은 커다란 성당 안에서 들려오는 바깥의 바람 소리 같기도 한,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런 바람의 말인 듯한 이 사운드의 비밀스러움이 좋았다. 보다 체계적인 양상을 띠는 다른 스코어 음악들과 차별화되는 앰비언스 사운드가 이색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며칠 전 영화를 다시 봤을 때, 과거와는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볼 수 있었다고 위에서 이야기했는데, 그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다른 한 가지 예로 들고 싶은 것은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를 본 이후의 시점이라는 점이다. <파벨만스>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가 영화감독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느린 전개로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파벨만스>를 보고 난 뒤에는 <이티>의 개구리 해부 실험 시퀀스를 전과는 다르게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엘리엇은 마취 솜과 함께 밀폐된 유리병에 갇힌 개구리들을 모두 탈출시키는 작은 반란을 일으킨다. 유리병에서 탈출한 개구리들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교실에서 불현듯 엘리엇은 같은 학급의 소녀에게 키스한다. <파벨만스>를 보기 전에 나는 이 장면을 뜬금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파벨만스>를 통해, 스필버그 감독의 눈을 통해, 내가 경험한 것은 현실에서 곧잘 그러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충분히 돌발적 상황이 빚어질 수 있고, 그것은 우선적으로 놀라움을, 그리고 곧 의외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점이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서 무용을 하던 새미의 어머니 미치처럼 말이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어떤 언어로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리라. 종종 언어 이상의 감동을 목격하거나 그것이 우리 내부를 순식간에 관통하고 지나가는 경험을 한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The Kiss에는, <파벨만스>에도 나오는 것처럼, 스필버그 감독의 우상이던 존 포드(John Ford) 감독의 작품 <말 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에 쓰였던 Isle of Innisfree의 선율이 삽입되었다. 엘리엇의 집에서 캔맥주를 마신 이티가 티브이를 볼 때 바로 <말 없는 사나이>의 키스신이 나오고 있었다. 티브이에서 주인공들이 키스할 때 학교에서 엘리엇과 소녀도 키스를 한다. 학교에서 개구리들을 탈출시키던 엘리엇과 맥주를 마신 이티, 그리고 이티가 보고 있는 영화의 장면이 마법처럼 하나로 연결되던 순간이다. 사실 영화의 중심 스토리에서 이 장면은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 장면은 엘리엇이 이상하게 몽롱한 기운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키던 하나의 정신적 의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핼러윈 데이에 이티와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가던 엘리엇이 땅이 너무 울퉁불퉁해 걸어가야겠다고 하자 이티가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해 자전거를 공중으로 띄운다. 이티와 엘리엇은 달이 빛나는 밤 속을 자전거를 타고 항해한다. 음악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지는 명장면이다. The Magic of Halloween의 클라이맥스에는 유명한 테마가 담겨 있다. ‘Flying theme’으로 잘 알려진 라이트모티프 선율은 E.T.’s Powers와 The Rescue and Bike Chase, 엔딩에 사용된 Departure를 비롯한 여러 곡에서 여러 변주로 활용되며 외계인과의 우정 주제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부터 구축되어 온 라이트모티프 개념을 영화 음악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존 윌리엄스는 바그너의 영향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대체로 신낭만주의 계열로 받아들여지는 성향에 걸맞게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사운드적으로 풍성하고 감정적 요소를 강화하는 음악들을 작곡해냈다. 그러한 특성으로 휴머니티가 살아 숨 쉬는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 극적인 효과를 더할 수 있었다.


마침내 외계와의 교신에 성공해 이티의 친구들이 지구로 그를 데리러 온다. 떠나기 전 이티는 엘리엇과 잠깐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인사는 너무도 간결하지만 부족하지 않다. “와(Come)”, “머물러(Stay)”, “(마음이) 아파(Ouch)” “(내 마음도) 아파(Ouch)”, 단 네 마디 말로 그들은 말하고 감정을 깊이 공유했다. 이티는 빛나는 손끝을 엘리엇의 이마에 대며, “나–여기–있을–거야(I’ll–be–right–here)”,라고 천천히 문장형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별은 슬프다. 그러나 그것은 값지다. 서로의 길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만큼.





-참조

https://www.classicfm.com/composers/williams/guides/facts-williams/
https://collider.com/steven-spielberg-night-skies-unmade-horror-movie/
https://www.premiumbeat.com/blog/leitmotif-in-film-sc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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