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Bill Vol.1 Soundtrack / Various Artists

2003년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네 번째 작품 <킬 빌>을 얼마 전 다시 보았다.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간편히 찾아볼 수 있으니, <킬 빌> 1편을 보고 다음 날엔 2편을 보았다.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의 ‘빌’을 향한 ‘복수’의 여정을 따르는 플롯에 의해 제작진이 공을 들인 액션 신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던 1편과는 사뭇 다르게 2편에서는 스토리와 대화가 중심이 되어 흘러간다. 개인적으로는 강렬하고 대담하게 다듬어진 1편보다 제법 둔한 전개로 서사에 몰입도를 높이던 2편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2편을 크게 나누어 뜯어보았을 때, 중국에서 키도가 괴팍한 성품을 가진 쿵푸 스승 파이 메이에게 혹독하게 수련 받는 과정과 마지막에 빌을 대면하는 챕터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빌을 눈앞에서 대면할 때까지, 베아트릭스 키도의 여정은 무시무시하도록 험난했다. 참 잔인하게도,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잔인한 일을 곧잘 하기에, 그녀를 산 채로 관에 넣어 땅속에 묻어버리고 떠난다. 파이 메이에게 배운 나무 격파술을 되새기며 그녀는 결국 나무로 된 관을 맨손으로 뚫어버리고 만다. 1편의 ‘청엽정’ 결투에서 야쿠자들을 모조리 박살 내버릴 때와 같은 현란한 액션은 아니지만, 스스로 위기를 탈출하는 그녀의 모습은 약간의 감정이입과 함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킬 빌> 시리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뼈 깊은 오마주 정신, 독창적으로 창안된 ‘키도의 영웅담’을 통해, 삶과 어떤 일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의지에 관해 그려냈다고 볼 수 있는 반은 제법 통속적이고, 반은 서정적이며 시네아스트적 열정의 불씨를 지닌 그런 인상 깊은 영화였다.
10년 정도의 텀–그 사이 감독은 <재키 브라운>을 연출했지만 이 논의에서는 생략–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지난번 살펴 본 <펄프 픽션>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유독 성숙함이 돋보인다. 캐릭터 구성도 그렇지만 주제 자체가 온통 인간적인 특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 역을 맡은 우마 서먼(Uma Thurman)은 이 영화를 제작할 무렵 임신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그녀가 출산 후 복귀한 뒤에 영화가 본격적으로 촬영되기 시작했다. <펄프 픽션>에서 Girl, You’ll be a Woman soon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주변으로 흐르지 않았던가. 그녀는 철부지 같던 소녀에서 여인이 된 모습으로 바뀌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서 복수의 여전사로 거듭난다. 뱃속 아이를 잃고, 새 삶을 살아보려는 희망도 산산이 조각나버린 그녀에게 남은 삶의 의지란 오직 복수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복수의 대상은 그녀에게 새 삶을 살도록 하는 선물을 건넨다.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는데 오프닝에 흐르던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의 Bang Bang이 전해주던 강렬한 인상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차분한 트레몰로 기타 선율과 보컬만으로 비극적 내용을 담은 가사의 쓸쓸함을 잘 전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원 곡은 셰어(Cher)가 불렀고, 작곡가는 남편이던 소니 보노(Sonny Bono)였다. 원 곡에서는 탬버린이나 여러 타악기, 스트링 악기 등이 다채롭게 사용되어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이와 같은 사운드 분위기는 영화의 엔딩에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원 곡에 비하면 낸시 시나트라의 버전은 다소 밋밋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감정을 부각하는 바 없이 대체로 드라이하면서도 약간 퇴폐적인 분위기가 묻어나 영화의 마이너한 정서와 잘 부합했기에 결국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원 곡은 1966년 발표되어 크게 히트했고, 낸시 시나트라의 버전은 <킬 빌> 개봉 후 영화의 흥행과 함께 재조명되었다.
이 사운드트랙의 The Grand Duel (Parte Prima)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작곡가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의 곡을 사용한 것이다. <위대한 결투> (1972)의 음악을 사용한 것은 역시 감독의 과거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발로로 읽을 수 있다. The Grand Duel (Parte Prima)은 제법 고전적이지만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선율로 마음에 깊이 울리는 트랙이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사이코>, <현기증> 등의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유명한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의 Twisted Nerve 또한 동명의 1968년 스릴러 영화에서 가져와 쓰였다. 차분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해 다소 혼돈스러운 선율들과 겹치다 마지막에 이르러 비명과 같은 사운드로 변화한다. 영화에선 엘 드라이버가 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키도를 비밀리에 살해하려고 접근할 때 쓰이면서 천둥이 치는 바깥 날씨와 함께 불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심지어 배우가 직접 휘파람을 불며 걷는 모습을 미디엄 쇼트로 담아내며 영화 음악의 쓰임에 있어서 감독의 의도성을 과감히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이 사운드트랙에는 전설적인 힙합 그룹 우탱 클랜(Wu-Tang Clan)의 RZA도 참여를 하고 있다. Ode to Oren Ishii는 랩 곡, B면의 Crane/White Lightning은 인스트루멘털로 청엽정에서 키도가 본격적으로 한 떼의 야쿠자들과의 결투를 시작하기 전에 쓰였다. 하지만 RZA의 참여도는 많이 높지는 않았고, 그가 작곡한 음향효과에 가까운 짤막한 스코어들도 사운드트랙에 실리지는 않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효과적으로 쓰였던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Ironside도 마찬가지로 사운드트랙에는 빠졌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정원에서 키도가 오렌 이시와 마지막 결투를 벌인다. 피투성이로 변한 실내 분위기를 씻어내리기라도 하듯 푸른 달빛이 비친 눈밭에서 펼쳐지는 두 여성 검객의 결투. 캄캄한 밤과 흰 눈의 대비되는 자연 풍경을 심미적으로 담아내며 흥미진진한 대결을 그려냈다. 타란티노 감독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대화를 잘 쓰는데, 가끔은 획기적인 음악의 사용으로 대사만큼 흡인력을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결투가 시작될 때 말 없는 두 사람을 대신해 박진감 넘치는 비트로 시작하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BGM으로 깔며 검객의 싸움을 구경하는 입장에 놓인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렌 이시가 쓰러질 때 나오던 The Flower of Carnage 역시 1972년작 일본 무협 영화 <수라설희(Lady Snowblood)>의 곡을 재사용했다. 노래를 부른 메이코 카지(Meiko Kaji)는 위 영화의 주연 배우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70년대 일본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The Lonely Shepherd의 구슬픈 팬플루트, 그것은 영화의 한 막이 내렸음을 대신 말해주던 서정적인 시그널이었다.


사실, <킬 빌> 1편의 사운드트랙은 총체적 카오스에 가깝다. 이 음악들은 다소 두서없이 배열되어 있는데, 그런 까닭에 분류하여 말하기가 꽤 어려워 이야기하는 입장에서는 혼돈의 땅 위를 항해하는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운드트랙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역시 선택된 음악들이 너무도 훌륭한 것들이라 언제든 돌아볼 만한 곡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영화의 작품적 가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펄프 픽션>에 이어 <킬 빌>까지, 그의 대표작 두 편을 연달아 탐구해 보며 느낀 점은,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작가주의적 태도로 키워 나가기보다 우러러보며 공경하는 태도를 더 앞세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감독을 좋아한다면 바로 그런 태도가 어딘가 그에 작품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고 감독에 대한 존경심도 자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운드트랙의 The Grand Duel (Parte Prima)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작곡가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의 곡을 사용한 것이다. <위대한 결투> (1972)의 음악을 사용한 것은 역시 감독의 과거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발로로 읽을 수 있다. The Grand Duel (Parte Prima)은 제법 고전적이지만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선율로 마음에 깊이 울리는 트랙이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사이코>, <현기증> 등의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유명한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의 Twisted Nerve 또한 동명의 1968년 스릴러 영화에서 가져와 쓰였다. 차분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해 다소 혼돈스러운 선율들과 겹치다 마지막에 이르러 비명과 같은 사운드로 변화한다. 영화에선 엘 드라이버가 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키도를 비밀리에 살해하려고 접근할 때 쓰이면서 천둥이 치는 바깥 날씨와 함께 불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심지어 배우가 직접 휘파람을 불며 걷는 모습을 미디엄 쇼트로 담아내며 영화 음악의 쓰임에 있어서 감독의 의도성을 과감히 드러내기도 했다.
오키나와의 스시집에서 제작된 핫토리 한조의 검을 들고 도쿄에 도착한 키도가 매우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이소룡을 상징하는 노란 슈트과 노란 오니츠카 타이거, 노란 오토바이를 타고 도쿄의 도로를 질주할 때 풍요로운 트럼펫 사운드의 Green Hornet Theme이 흐른다. 복수의 대상 소피의 차를 지나쳐 터널로 사라지고, 곧 피 튀기는 대결투가 열릴 ‘청엽정’으로 오렌 이시와 야쿠자들이 입장한다. 이때 토모야수 호테이(Tomoyasu Hotei)의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가 들려온다. 이 곡도 기존에 일본에서 개봉한 야쿠자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였던 것을 재사용했다. <킬 빌> 1편에서 일본을 배경으로 촬영한 분량이 많은 만큼 일본 음악가들의 곡들이 많이 사용된 점도 눈길을 끈다. ‘청엽정’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록밴드 The 5.6.7.8’s의 Woo Hoo, 그리고 사운드트랙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The Ikettes의 1961년 발표곡 I’m Blue도 이 그룹의 라이브로 영화에서 들을 수 있다. The 5.6.7.8’s는 타란티노 감독이 도쿄의 한 옷 가게에 들렀을 때 스피커를 통해 우연히 듣고는, 점원에게 이들의 음반을 구하고 싶다며 알아보게 된 특별한 사연을 가진 그룹이다. Woo Hoo도 낸시 시나트라의 Bang Bang처럼 원 곡이 따로 있다. Woo Hoo는 유명한 로커빌리(Rockabilly) 곡으로 1959년 The Rock-A-Teens가 처음 발표했고, 시간이 흐르며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커버 되었다.
사실, 이 사운드트랙에는 전설적인 힙합 그룹 우탱 클랜(Wu-Tang Clan)의 RZA도 참여를 하고 있다. Ode to Oren Ishii는 랩 곡, B면의 Crane/White Lightning은 인스트루멘털로 청엽정에서 키도가 본격적으로 한 떼의 야쿠자들과의 결투를 시작하기 전에 쓰였다. 하지만 RZA의 참여도는 많이 높지는 않았고, 그가 작곡한 음향효과에 가까운 짤막한 스코어들도 사운드트랙에 실리지는 않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효과적으로 쓰였던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Ironside도 마찬가지로 사운드트랙에는 빠졌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정원에서 키도가 오렌 이시와 마지막 결투를 벌인다. 피투성이로 변한 실내 분위기를 씻어내리기라도 하듯 푸른 달빛이 비친 눈밭에서 펼쳐지는 두 여성 검객의 결투. 캄캄한 밤과 흰 눈의 대비되는 자연 풍경을 심미적으로 담아내며 흥미진진한 대결을 그려냈다. 타란티노 감독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대화를 잘 쓰는데, 가끔은 획기적인 음악의 사용으로 대사만큼 흡인력을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결투가 시작될 때 말 없는 두 사람을 대신해 박진감 넘치는 비트로 시작하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BGM으로 깔며 검객의 싸움을 구경하는 입장에 놓인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렌 이시가 쓰러질 때 나오던 The Flower of Carnage 역시 1972년작 일본 무협 영화 <수라설희(Lady Snowblood)>의 곡을 재사용했다. 노래를 부른 메이코 카지(Meiko Kaji)는 위 영화의 주연 배우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70년대 일본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The Lonely Shepherd의 구슬픈 팬플루트, 그것은 영화의 한 막이 내렸음을 대신 말해주던 서정적인 시그널이었다.

사실, <킬 빌> 1편의 사운드트랙은 총체적 카오스에 가깝다. 이 음악들은 다소 두서없이 배열되어 있는데, 그런 까닭에 분류하여 말하기가 꽤 어려워 이야기하는 입장에서는 혼돈의 땅 위를 항해하는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운드트랙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역시 선택된 음악들이 너무도 훌륭한 것들이라 언제든 돌아볼 만한 곡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영화의 작품적 가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펄프 픽션>에 이어 <킬 빌>까지, 그의 대표작 두 편을 연달아 탐구해 보며 느낀 점은,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작가주의적 태도로 키워 나가기보다 우러러보며 공경하는 태도를 더 앞세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감독을 좋아한다면 바로 그런 태도가 어딘가 그에 작품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고 감독에 대한 존경심도 자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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