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 / Cigarettes After Sex

  

인디팝 그룹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는 아마도 이름 때문에 더 주목을 받거나 덜 주목을 받았을 것 같다. 이 그룹의 싱글 발표곡들이 인기를 얻을 때, 그리고 1집이 나왔을 때에도 나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지만, 우연히 이들의 노래를 접하게 될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짙은 서정적 분위기에 스며들곤 했다. 그룹의 노래들은 잠들기 전에 틀어 놓아도 좋을 만한 베드룸팝 무드로 가득 차 있다. 일부러 이런 음악들을 찾을 때, 일부러 이런 분위기 속에 빠져들고 싶을 때, 나만의 다락 공간에서 칩거를 원할 때,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의 음악을 더해 본다면, 비록 로맨틱한 감정에 메마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유의 고혹적인 발라드에 서서히 전염되고야 말 것이다. 보컬 그렉 곤잘레스(Greg Gonzalez)의 시크하면서도 관능미 서린 목소리는 그룹의 테마를 직접적으로 견인하는 요소다. 한번 빠져들면 다시 찾게 될 가능성이 큰, 높은 중독성을 가진 음악세계가 당신의 공간에 연기처럼 가늘고 넓게 퍼질 것이다.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는 2008년 보컬 그렉 곤잘레스의 홈스튜디오에서부터 출발했다. 차차 그룹으로 형체를 갖추어 가 라이브 셋 라인업에 이르게 된다. 이 출발 배경을 읽어 보면 그룹이 애초에 거창한 포부를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우연찮게, 장난스럽게 건물 복도에서 녹음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그러한 추측에 더 무게를 싣는다.

2012년 나온 데뷔 Ep의 Nothing’s Gonna Hurt You Baby가 서서히 차트를 점령하면서 소탈하게 출발한 그룹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연인의 로맨틱한 밤을 그리며 ‘아무것도 널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 베이비’, 의 다정한 위로와 ‘아무것도 널 내 곁에서 데려갈 수 없어’의, 단지 관계를 두텁게 하는 소유욕을 드러내며 청춘의 하모니를 완성했다. 2017년 발표된 셀프 타이틀 1집에 싱글 히트곡인 K, Apocalypse, Sweet 등이 수록되었다. Apocalypse에서 그녀는 부스러기처럼 흘러내리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며 빛나던 도시 경관이 한순간 재로 변하는 것을 보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첫 구절부터 매우 영화적인 장면을 묘사하며, 노래가 가진 암흑의 깊이를 넌지시 드러낸다. 타르 칠을 한 듯 검고 어두운 사랑 노래, 대담하게도 화자는 ‘이리 나와 나를 괴롭혀 봐(Come out and haunt me)’라 말한다. 두 사람의 입술과 ‘종말’을 하나로 엮으며 비극적 풍경을 고조시킨다. 사랑이 상처만을 주더라도 그 상처에 기꺼이 맞서고자 하는 의지적 마음가짐은 Sweet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난 기꺼이 부술 거야 /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부서진다 해도 난 기꺼이 그럴 거야(I will gladly break it / I will gladly break my heart for you).’ 서로 함께 무너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강인한 본모습을 이끌어냈다. 이는 사랑의 서약을 닮아서 프러포즈용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2019년 나온 2집 <Cry>는 느리고 둔한 비트, 앰비언트 사운드의 조각처럼 울리는 기타 리프를 심도 있는 욕망과 사랑의 무대 위에서 이어간다. 간절한 러브 송인 오프닝 트랙 Don’t let me go는 기꺼이 청자를 몽롱한 상심 속에 빠뜨린다. ‘어렸을 때 난 온통 너로 가득한 세상을 생각했어(When I was young I / thought the world of you)’, 화자의 회상과 중첩되면서 대상은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된다. Don’t let me go가 어린 시절의 동경을 불러들이며 순애보적인 마인드로 구애하는 모습을 그린다면 Kiss It off Me는 도전적인 태도로 어필한다.

Heavenly는 대상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올인하는 사랑을 천상의 기쁨에 비유했지만, 화자는 이것이 현실이기를 애처롭게 갈망한다. 반복되는 구절 ‘내 모든 사랑을 당신에게 주고 있어 / 내 모든 걸 당신에게, 내 모든 걸 당신에게 주고 있어(I’m giving you all my, giving you all my / Giving you all my love)’를 보컬의 창법처럼 탄식하듯 따라 부르다 보면 문득 정화된 내가 사랑의 순결함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이 노래에 치유의 힘이 있는 걸까?) 2절 코러스 라인에서는 ‘그리고 당신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난 여전히 모든 것을 느껴요 / 그리고 당신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느낌을 가져요(And when you’re far away, I still feel it all / And when you’re far away, I still feel it all the same)’라고 말하며 모호하게 처리된 두 사람의 어긋남을 암시하고 있다.


Touch는 처음에 별생각 없이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가장 끌렸던 곡이다. 도입부 비트가 조금 타이트하고 잔향감 깊은 기타 멜로디도 한층 더 선명하게 그려진 것 같았다. 가사의 의미를 찾아보니, 이 곡은 연인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상처 입은 화자의 내면을 그리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감정에 취한 화자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Don’t let me go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이 사랑의 화신은 연인이 주는 상처에 극심한 타격을 입는 감정적인 영혼이다. 사랑으로 인한 비애의 감정을 디테일한 장면 묘사와 관능성을 자극하는 이미지들과 접목해 어필하는 매혹의 트랙 Touch. Cry는 두 사람의 위태로운 관계를 상대에게 확인시키는 쓰디쓴 장면을 포착했다. 한편 Falling in Love에 그려진 관계는 제법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감정은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졌을 테지만 여전히 파트너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축복 같은 순간을 되새긴다.



<Cry>는 사랑에 있어서의 욕망과 상심 등의 주제들을 둔중한 무게감과 속수무책으로 느린 템포에 실어 이야기한다.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의 모노톤의 낭만주의 음악을 들으며 거기에 서 있으면 문득 내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기도 한다. 누구라도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연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 듯 상상력을 키우며 잠깐 달콤한 꿈에 젖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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