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aves / Jamie xx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Jamie xx의 라이브를 보았다. <In Colour> 때부터 뮤지션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올해 그의 공연을 직접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목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아이를 재우려고 아이와 함께 방에 누워 책을 읽어 주거나 동요를 불러줄 바로 그 시간. 그날 나를 대신해 아이와 함께 있어준 남편 덕분에 신나게 공연을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9년 만에 나온 신작 <In Waves>는 뮤지션의 솔로 데뷔 앨범 <In Colour>로부터 성큼 도약한 흔적을 자신만만한 태도로 담아냈다. 소극적이고 고립된 성향은 일렁이는 파도 위로 꺼내어진 채 이제 어디로든 휘청일 수 있는 것 같다. 이리저리 휘청이며 방황하고 고뇌하는 것이 아니라 휘청거림 자체를 긍정하고 스스로 통제하는 균형이 느껴진다. 더불어 뮤지션 자신의 주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변화에서 시간, 경험, 성숙함 그런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In Waves>는 The xx부터 일관되게 제시되어 온 지극히 단순한 시그니처 디자인 외에 특별히 내세워진 컨셉이랄 게 없는 앨범이며 뮤지션의 인터뷰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자전적인 성향이 짙은 앨범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작과 비교하면 확연히 넓어진 세계를 그린다. 그런 변화가 담긴 이 앨범에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매혹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오프닝 트랙 Wanna에 샘플링으로 사용된 곡들은 Double 99의 Ripgroove와 Tina Moore의 Never Gonna Let You Go, Andy Quin의 Awakening이다. UK 가라지 듀오 Double 99의 Ripgroove라는 앨범의 제작 배경에는 다소 우연적인 상황과 샘플러 사용에 관한 미숙함이 자리해 있다. 런던의 한 공연장 N7의 부엌에서 곡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부터 이 앨범의 남다른 탄생을 잘 설명해준다. 어떤 과정을 거쳤건 간에 이 곡은 97년 여름 런던의 레이브 신을 강타한 추억의 히트 트랙이었다. 사그라들지 않는 인기로 2022년 25주년 기념 앨범이 제작되기도 했다(https://double99.bandcamp.com/album/ripgroove-feat-top-cat-25th-anniversary). 결국 이 곡의 쓰임은 과거 사람들이 이 음악에 열광했던 시기에 대한 뮤지션의 향수 어린 판타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샘플 곡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피아노와 제법 긴 여백, 현악기의 조화로 하나의 도회적이고 감성적인 프렐류드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트랙 Treat Each Other Right부터 본격적인 음악적 탐구가 막을 올린다. 이 앨범의 한 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댄스 플로어를 향한 열망을 증폭시키는 향연은 Dj 허니 디전(Honey Dijon)이 참여한 Baddy on the Floor에서 극에 달한다. 이 곡은 앨범 전체를 통틀어 댄스 트랙 가운데 가장 막강한 파워를 지녔다고 할 만하다. 케니 버크(Keni Burke)의 Let Somebody Love You의 화려하고 활기찬 솔 음악을 주요 베이스로 하고, 90년대 발표되어 미국 랩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던 디바인 스타일러(Divine Styler)의 Ain’t Sayin’ Nothing의 구절들을 반복적으로 배열한, 중저음부 베이스라인을 강화하고 브라스의 날렵한 패턴의 매치로 멋스러운 성취를 보여준다. 텐션이 노련하게 유지되는 컴팩트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마성의 트랙이다.



켈시 루(Kelsey Lu), 존 글래이셔(John Glacier), 판다 베어(Panda Bear)가 피처링한 Dafodil은 이 앨범에 대한 계획이 구체화되던 신호탄이 된 곡으로 다른 곡들에 비해서 꽤나 몽환적이고 농밀한 분위기로 어필한다. Dafodil에 그려진 사랑의 감정들이 장면들의 포개어짐으로 다소 혼돈스런 양상을 띤다면 로빈(Robyn)이 피처링에 참여한 Life는 사랑의 기쁜 경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우리가 아는 사랑의 경험, 우리가 아는 사랑의 느낌, 우리가 아는 사랑의 형상이 그대로 들어 있어 이 곡은 쉽게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 The xx 밴드 메이트 로미와 올리버가 피처링한 Waited all Night은 Dafodil, Life와 나란히 러브 트랙의 조각을 완성한다.



Breather에서는 요가 클래스의 멘트를 가져와 청자를 다소 사색적 분위기에 빠뜨린다. 물론 여기에서도 댄서블한 비트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언밸런스함이 부여되는 것 같다고 할까. 클럽 댄스와 요가는, 동적이고 정적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그 성질이 다르지만 둘 모두 인간이 신체활동을 통해 정서적 고양을 얻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그 뿌리는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뮤지션은 사색적인 태도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 같다. 이제 보컬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스포큰 워드다.

호주의 혁신적인 일렉트로닉 그룹 애벌랜치스(The Avalanches)--애벌랜치스는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라는 샘플 기반의 음악 장르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2000년 발표된 <Since I Left You>는 이 장르의 대표적 본보기로 거론된다–와 협업한 두 곡 All You Children과 Every Single Weekend–이 곡들은 분명 애벌랜치스의 앨범 <Since I Left You>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도록 부추긴다–가 내게는 무척 울림이 크게 남았다. All You Children은 Baddy on the Floor에 버금가는 액티브함을 가졌다. 그러나 All You Children은 어쩐지 더 다크하고 멜랑콜리한 면이 있다. 내레이션은 니키 지오바니(Nikki Giovanni)의 어린이들을 위한 오디오 시집 가운데 Dance Poem에서 발췌한 구절을 편집해 사용했다. 이러한 스포큰 워드 방식의 스토리텔링은 벨파스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댄서 우나 도허티(Oona Doherty)가 참여한 마지막 트랙 Falling Together로 이어진다. 원래 25분 남짓이던 보이스 메모 중에서 격려가 되거나 메시지가 잘 전달될 것 같은 부분들을 발췌해 곡에 사용했다고 한다. 약간 절망스럽지만 패기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쪼개진 비트와 함께 일렁이는 이 트랙이 가진 에너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3의 기대를 유발하기에 이것은 마치 또 다른 시작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In Waves>와 함께 Jamie xx는 확실히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랜 밴드 메이트 The xx 동료들과의 협업에서 벗어나 다른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해 보다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형성했고 지나간 과거를 적극적으로 소환시키며 음악에 깊이 있는 애정을 심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앨범들이 다 그런 면이 있겠지만 유독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읽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댄스 플로어를 향한 노스탤지어와 낭만적인 서핑이 청춘 시절의 특권을 묘사한다면 요가와 명상, 사색은 뮤지션이 인생의 노을을 바라본 흔적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9년 뒤 그의 세 번째 앨범이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참조
https://www.stereogum.com/2277882/jamie-xx-new-album-in-waves-interview/music/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4/sep/22/jamie-xx-smith-in-waves
https://www.dazeddigital.com/music/article/49128/1/jamie-xx-idontknow-video-interview
https://www.theguardian.com/culture/2023/mar/20/bassline-mozart-double-99-ripgroove-michael-bo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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