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A Gold : Greatest Hits / ABBA

  

바로 얼마 전 2025년 새해가 밝았다. 2024년의 끝자락에 한국에서는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 대체로 어수선함을 고조시키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시작되고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은 1월 4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되었다. 제법 마음이 무거운 연말연시가 되었지만 새해가 밝아 오는 것을 반갑게 환영하고 싶은 마음마저 어둡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새해가 되어 처음으로 턴테이블에 올릴, 바이닐 레코드로는 과연 무엇이 좋을지 며칠을 고심했다. 무언가 밝고, 경쾌한 톤이 좋을 것 같았는데, 내가 주로 선호해 들어온 장르인 록과 얼터너티브 계열 음악들이 밝을 리는 크게 없었다. 사놓고 자주 듣지 않았거나, 아직 글쓰기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은 레코드들도 몇 장 있었지만, 역시 ‘새해 처음’의 타이틀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2024년 12월의 마지막 날. 오전에 잠깐 교동에 들렀다가 홀리데이 비지터 샵에서 ABBA의 Gold를 구매했다. <ABBA Gold>는 히트곡들을 모아 놓은 ABBA의 베스트 앨범이자,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대중적으로 매우 성공한 앨범이다. 생기 넘치는 두 여성 보컬의 노래와 쉽게 각인되는 멜로디, 드라마틱한 스타일로 이목을 끄는 ABBA 음악의 활력을 되새겨 보니, 그것은 이 우중충한 나날을 돌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선곡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활기찬 출발을 응원하는 레코드로서 적절해 보였다.

ABBA라는 밴드명은 보시다시피 너무도 단순하다. 멤버 네 사람, 아그네사 팰트스코크(Agnetha Fältskog)와 비요른 울바에우스(Björn Ulvaeus),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과 애니프리드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ABBA라는 이 단순한 이름을 채택하기 전 그룹은 여러 후보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룹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발판이 된 1974년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직전에 비로소 ABBA로 정해졌다. 두 번째 B가 반전되어 표기된 것은 심벌에 독자성을 부여했다. 이 반전된 표기는 A를 향한 B의 방향을 의미하기도 해서 재미있다.

Side A부터 ABBA의 하이 텐션 바이브에 노출될 각오를 해야 한다. 첫 트랙 Dancing queen은 하강하는 글리산도로 운을 뗀다. 말 없는, 그러나 재치 있는, 전략적인 도입부에 다소 우울한 선율과 속도(101bpm)의 오프닝 악절이 이어진다. 확실히, 댄스 여왕에 관한 노래로서는 전개가 느리고, ‘너는 춤출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력한 기분이다. 이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잘 풀어낸 것이 영화 <맘마미아>의 장면이 아닐까. 그러나 심층적인 감상을 위해 시각적으로 환기되는 이미지를 제거하고 음악에 집중해 보면,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와 하이퍼 스피릿을 느낄 수 있다. 노련한 감초 연기자 같은 침착한 드럼 전개, 도무지 미련 없는 듯 리프 식으로 새겨지는 피아노, 신시사이저, 현악기의 멜로디들. 후렴부에서 두 여성 보컬이 고음역대에 이를 때 노래는 이미 지상을 벗어난 무언가처럼 여겨진다.




Dancing queen과 Knowing me, knowing you는 76년 앨범 <Arrival>에 수록된 곡들이다. Take a chance on me는 파편적 발성을 통해 기계적 재현을 모방하고, 유로 디스코의 딥 비트, 에너제틱한 보컬의 조화를 통해 혁신성을 보여준다. 전자 음악의 색채가 짙은 Lay all your love on me, Super trouper는 소프트한 성향에 멜랑콜리가 스며 있는, 아기자기한 멜로디가 특색을 이루는 ABBA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다.


<ABBA Gold>에 수록된 곡들 중에서, 그룹의 이름을 널리 떨치는 데 기여한 Dancing queen과 Mamma Mia 같은 노래들이 팀의 개성이 잘 묻어나는 에센셜이라면, 후반부에 수록된 Chiquitita, Fernando 등의 노래들은 한들거리는 마음을 적어 놓은 수첩 속 글귀 같은 소극적 마인드의 노래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I have a dream, The winner takes it all 같은 발라드 곡들도 잔잔한 공감과 정서적인 동요를 이끌어내는 히트 트랙들이다.



Thank you for the music은 음악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사랑을 표현한 엔딩 곡. 그리고 마지막에 그룹의 시작점이 된 Waterloo를 수록했다. 역사적 전투를 사랑에 빠진 자의 패배로 형상화해낸 러브송. 이 경쾌한 박력은 엔딩으로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뭐, ‘뜨거운 안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을 떠올리면 볼보, 이케아 같은 다국적 기업들과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선진국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ABBA는 그다음이라 해도, 확실히 볼보, 이케아, 복지 국가와 균등한 저력을 가진 대명사로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음악을 들을 땐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음악가들과 음악 신에는 국가나 도시가 있지만 음악 속에는 그런 경계가 없다. 음악 속에서는 길을 잃는 편이 더 좋다—그만큼 매혹적이었다는 뜻이니까. 중요한 것은 음악이 가진 힘일 것이다. 그 음악이 어떤 힘을 보여주고 전해주는지 느끼는 것. <ABBA Gold>는 비틀즈나 퀸처럼, 여전히 신화로서 추앙받는 전설적 그룹들에 뒤지지 않는 음악적 업적과 대중적 호소력을 골고루 지닌 ABBA의 히트곡들로 채워진 컴팩트한 베스트 앨범이다. 이것 때문인지 몰라도 1월의 첫 주를 보내는 동안 나는 조금도 우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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