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ainbows / Radiohead

 

라디오헤드의 앨범 중에선 마스터피스라 할 만한 대표작들이 많다. <Ok Computer>, <Kid A>, <Hail to the Thief> 그리고 이 앨범 <In Rainbows>, 그 이후에 나온 가장 최근 앨범 <A Moon Shaped Pool>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마스터피스’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나머지 앨범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Kid A>의 더블 앨범 같던 <Amnesiac>, <In Rainbows> 이후 예상을 깬 <The King of Llimbs>가 위의 대표작들에 비하면 다소 희미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거나 이색적으로 느끼게 되는 측면이 있다. 위에 언급한 라디오헤드의 마스터피스 앨범들 가운데에서 주제적인 면에서 <In Rainbows>는 가장 덜 심각하고 제법 온화하며 덜 구속적인 앨범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In Rainbows>가 처음 나온 것은 2007년. 그때 라디오헤드는 혁신가다운 태도로 음악을 배포하는 기존의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CD를 발매하지 않고, 음악을 디지털로 다운로드하도록 했고, 판매 가격은 정해진 것 없이 구매자가 원하는 만큼 내도록 하는 꽤 반체제적인 전략을 세워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2025년인 지금 그 당시의 ‘판매’ 해프닝은 음악을 감상하는 데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지만 다만 상기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덜 얽매인’ 앨범이라고 할까? 전작 <Hail to the Thief>를 마지막으로 라디오헤드는 메이저 레이블인 EMI와 이별을 고하고 <In Rainbows>부터 인디펜던트 레이블 XL Recordings를 통해 앨범을 발표했다. 7집 앨범을 발표하는 시점에, 이미 정점을 몇 번 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 그룹으로서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결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라디오헤드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제도에 비타협적인 태도, 트렌드나 세상의 기대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인기나 성공에 안주하는 것에 민감히 저항해오며 그들만의 계보를 부단히 일궈온 흔적을 재발견하게 된다.

첫 트랙 15 step는 5/4 박자로 독특한 리듬 구조를 형성했다. 재즈에서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이 Take Five를 통해 선보였던 박자감이다. 라디오헤드의 노래 중에선 <Kid A>의 수록곡 Morning Bell도 5/4 박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맞는 듯 맞지 않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슬아슬함이 만들어내는 것은 긴장, 그리고 트릭이 자아내는 위트다. 독특한 비트와 잘 어울리는 베이스 라인도 이 곡에서 두드러진다.
 

Bodysnachers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얼터너티브 록의 진수를 보여주는 분위기다. 다음 곡 Nude의 느리고 연약한 분위기와 쉽게 대조를 이룬다. Weird Fishes / Arpeggi는 오묘함, 중첩, 노이즈가 뒤섞이지만, 청자를 혼돈 속에 빠트리지 않고 잘 통제된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고 어른거리는 소음들은 이후 앨범인 <A Moon Shaped Pool>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All I Need는 흥미롭다. 적당히 온건한 박자에 두께감을 잔뜩 준 신디사이저 음과 보컬을 매치했다. 라디오헤드 표 ‘칠아웃’ 트랙 같은 사랑 노래. 하지만 마치 숲의 풍경을 보는 것 같은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한눈팔 수가 없다.


Faust Arp에서는 현악기 사용으로 변화를 주었다. 곡 길이는 의외로 짧은 2분 10초. 그러나 이 곡에 스민 비극을 말하기엔 충분하다. Reckoner는, 이 앨범을 대표하는, 15 Step 다음으로 가장 임팩트 있는 곡이 아닐까? 성경의 뉘앙스와 앞선 곡에서 연결되는 파우스트 테마도 복합적으로 띄고 있다. 그리고 그냥 단지 어떤 ‘사랑’ 노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곡은 ‘왜냐하면 우리는 레인보우 속에서 빈 해변의 물결들처럼 헤어지니까 (Because we separate / Like ripples on a blank shore / (In rainbows)’, 라는 앨범의 타이틀을 이해할 만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어떠한 맥락이건 간에 이 곡에는 간절함도 묻어난다. 짙은 가성의 보컬과 유난히 생동감이 느껴지는 악기들의 결합으로 이 곡에 대해서는 슬프고 중요하고 훨씬 더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In Rainbows>는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와 함께 일궈낸 라디오헤드의 또 다른 성취이자 새로운 도약이었다. 메이저 레이블과 결별한 이정표가 되는 앨범이며, 이 앨범 이후 <A Moon Shaped Pool>이 나왔고, 지금 활동 중인 라디오헤드 멤버가 둘이나 포함된 더 스마일의 음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In Rainbows>는 밴드 특유의 시니컬함과 팝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한 세련된 아트록 앨범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중해 들어 보면 매우 정교한 파문들이지만 언뜻 들어 보면 그냥 잔잔한 물결들처럼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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