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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et It on / Marvin G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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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게이의 <Let’s Get It on>은 아주 유명한 클래식 레코드들 중 하나다. 얼마 전 김밥레코즈에 들렀다가 덥석 집어 든 것인데, 지금까지 알앤비나 솔 음악에 대해서는, 컴필레이션 형태의 영화 음악을 통해 간간이 접한 경우 외에는 특별히 집중해 본 일이 없었다. 나로서는 미개척지 같은 ‘솔’ 장르의 출발 지점이라는 각인을 새기는, 반가운 첫 번째 솔 음악 레코드가 되었다. 마빈 게이의 생애와 이력을 읽어 보니, 20세기 초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간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그것에 비견되는 험난한 생의 고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 가장 특징적이었던 건 아버지와의 관계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다소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1984년 마흔넷의 나이에 우발적인 죽음에 이른 것도 가정 내에서 벌어진 다툼에 관여하다 그만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가 Gay라는 성을 Gaye로 변경해 활동한 것도 아버지와의 좋지 못한 관계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사랑과 성을 앨범의 주제로 삼은 이 앨범 <Let’s Get It on>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억압받아온 성적 자유를 스스로 해방하고자 한 의식적인 시도로 알려지기도 한다. 마빈 게이는 60년대 초반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앨범 <That Stubborn Kind of Fellow>를 통해 팝 차트 순위권에 오르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온 솔 싱어 태미 테렐(Tammi Terrell)과 듀엣을 이루며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갔지만, 그녀가 뇌종양으로 사망하자 몇 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등 매우 힘든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 세금 문제, 약물 의존 등 엉켜 가는 개인적인 상황도 그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시기를 견디기 위한 한 가지 확실한, 음악으로부터의 ‘외도’ 방법이었는지, 그는 NFL의 디...

Romance / Fontains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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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되어 활동해온 록 밴드 Fontains D.C.. Fontains라는 이름에 D.C.를 붙인 건 ‘더블린 시티’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음악 대학에서 ‘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면서 시작된 그룹은 아일랜드의 시 장르 ‘도게렐(Doggerel)’을 모티프로 한 <Dogrel>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이듬해 2집 <A Hero’s Death>로 록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인지도를 높여갔고, <Skinty Fia>라는, 모국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3집 앨범으로 그룹의 음악적 색채를 굳혔다. ‘Skinty fia’라는 말은 ‘사슴의 저주’라는 뜻의 아일랜드에서 통용되는 욕설로, 그리안 채튼(Grian Chatten)에게 이 말은 ‘돌연변이, 파멸, 불가피성, 그리고 해외로 나갔을 때 부딪치는 아일랜드적인 것에 대한 경험들과 일치하는 모든 것들을 대변하는 언어로서 느껴졌다고 한다.(Grian Chatten described the word as sounding like “mutation and doom and inevitability and all these things that I felt were congruous to my idea of Irishness abroad.”) 이들이 채택한 ‘아일랜드’적 색채가 그룹의 특성을 견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할지라도, 아일랜드와 특별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기에는 진입장벽처럼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4집 <Romance>는 그동안 그룹이 고수해오던 아일랜드적이거나 문학적인 특색을 내세우기보다,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록 음악에 가까운, 자칭 가장 ‘덜 아일랜드적인’ 앨범으로 메인스트림의 문을 두드린다. (1, 2, 3집에서 각각 한 곡씩..) 3집과 4집 사이에 일어난 큰 변화라고 한다면 멤버 카를로스 오코넬(Carlos O’connell)이 딸아이의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과 보컬 그리안 채튼이 공황 발작...

Rome / The 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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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는 그룹이었고, 도무지 흥미를 자극하지 않는 밴드명 때문에 잘 듣지 않던 그룹이었지만, 아마도 2023년 이후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되어버린 더 내셔널. ‘트윈’ 앨범 <First Two Pages of Frankenstein>과 <Laugh Track> 발표 후 투어를 할 때 한국에도 꼭 내한을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러한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양 록 음악의 본거지가 영국과 미국이다 보니 각 나라의 대표 록 그룹들을 주로 찾고, 차이나 특성을 비교해 볼 때가 많은 것 같다. 지난번 글을 썼던 라디오헤드와 비교했을 때 더 내셔널의 음악은 한결 따스하고 친근한 정서가 녹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맷 버닝거(Matt Berninger)의 바리톤 보컬은 우울하지만 따스하고 절망적이지만 듣는 이를 낙담시키지 않고 고뇌하는 자의 열정 속을 기꺼이 항해하도록 만든다. 멋부리지 않았는데 따라 부르고 싶을 만큼 멋진 구절들이 때론 가슴을 치기도 한다. 꽤 감정적인 기분의 보컬과 그룹만의 역동적 감성을 살리는 드러밍, 현란하고도 과시하지 않는 기타와 민첩한 사운드 테크닉, 이따금 선을 그리듯 나타나는 금관 악기 선율들의 조화는 비 내린 뉴욕의 거리를 수채화로 담아낸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디 성향이 강하던 초기작들을 거쳐, 대중을 향해 서서히 입지를 굳혀 가며 미국 얼터너티브 인디 록 밴드로서 정점을 찍은 더 내셔널. 아무래도,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좋아하는 그룹의 신작 소식일 것이다. 게스트 리스트로 가득 채워진 최근 두 앨범 <First Two Pages of Frankenstein>과 <Laugh Track>의 희화화된 유머러스함과 과거에 비해 다소 마일드해진 톤에 뒤를 이은 건 내추럴함이 감도는 라이브 앨범이다. 더 내셔널은 <Rome>을 통해서 그들의 음악이 가진 인간적 면모를 더욱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