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 Fontains D.C.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되어 활동해온 록 밴드 Fontains D.C.. Fontains라는 이름에 D.C.를 붙인 건 ‘더블린 시티’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음악 대학에서 ‘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면서 시작된 그룹은 아일랜드의 시 장르 ‘도게렐(Doggerel)’을 모티프로 한 <Dogrel>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이듬해 2집 <A Hero’s Death>로 록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인지도를 높여갔고, <Skinty Fia>라는, 모국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3집 앨범으로 그룹의 음악적 색채를 굳혔다. ‘Skinty fia’라는 말은 ‘사슴의 저주’라는 뜻의 아일랜드에서 통용되는 욕설로, 그리안 채튼(Grian Chatten)에게 이 말은 ‘돌연변이, 파멸, 불가피성, 그리고 해외로 나갔을 때 부딪치는 아일랜드적인 것에 대한 경험들과 일치하는 모든 것들을 대변하는 언어로서 느껴졌다고 한다.(Grian Chatten described the word as sounding like “mutation and doom and inevitability and all these things that I felt were congruous to my idea of Irishness abroad.”) 이들이 채택한 ‘아일랜드’적 색채가 그룹의 특성을 견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할지라도, 아일랜드와 특별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기에는 진입장벽처럼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4집 <Romance>는 그동안 그룹이 고수해오던 아일랜드적이거나 문학적인 특색을 내세우기보다,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록 음악에 가까운, 자칭 가장 ‘덜 아일랜드적인’ 앨범으로 메인스트림의 문을 두드린다.
3집과 4집 사이에 일어난 큰 변화라고 한다면 멤버 카를로스 오코넬(Carlos O’connell)이 딸아이의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과 보컬 그리안 채튼이 공황 발작을 겪으며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리드 싱글이자 두 번째 트랙 Starbuster는 바로 공황 발작을 겪던 순간에 대한 영감에서 쓰인 곡으로, 코러스 사이의 긴박한 호흡 소리가 그 사건을 직설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자녀가 생긴 것과 질환을 진단받는 것은, 둘 모두 인생에 있어서의 큰 사건이라 할 만하다. <Romance>에서 그룹은 빛바랜 책들이 꽂힌 서가 앞에 선 침울한 얼굴의 아웃사이더들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를 향해, 대중을 향해 성큼 한 걸음 내딛는 액션을 취했다. 가디언의 음악 비평가 알렉시스 페트리디스(Alexis Petridis)는 이 앨범에 대해 Fontaines D.C.가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나 스타디움을 채울 만한 록 그룹으로서의 저력을 확인토록 하는 것’이라는 평을 남겼다. (There’s clearly currently an opening for an alternative guitar band to tip over into festival headlining, arena-packing territory. Romance definitely sounds like a band applying to fill said vacancy, but it’s no craven lunge for mass acceptance: it invites a bigger audience into Fontaines DC’s world, but it never begs them to accept.)


동굴에서의 외침 같은 시무룩하고 투박한 보컬 톤이 여전한 <Romance>와 함께 네온 빛의 현란한 색채가 넘실거린다. 홍보 자료를 찾아보면 멤버들의 의상과 스타일도 앨범의 시각적 컨셉 못지않게 현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Xl Recordings의 태동기 런던 레이브 컬처의 주역 중 하나던 그룹 프로디지(The Prodigy)가 연상되기도 하고, 그리안 채튼의 경우 그가 좋아했던 누 메탈 그룹 콘(Korn)의 보컬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의 스커트 차림을 오마주한 듯하다. 그런데 이건 Fontaines D.C.로서는 대단한 역발상이다. Fontaines D.C.는 2집 무렵까지 특별히 의상이라 강조할 것도 없는, 티셔츠와 바지 정도의 일상적 복장을 즐겨 입었다. 그리안 채튼은 그들이 지나치게 간소한 차림을 한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2주 동안 같은 옷을 연달아 입기를 선호했다고 말한다. (“we had a vague idea of ourselves under-dressing. I loved wearing the same shirt every day for two weeks and shit like that.”) 과거에 비하면 확실히 ‘과한’ 스타일링이지만 마치 새롭게 데뷔라도 하듯, 잘 재단되고 실험된 아트워크의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들의 음악과 마인드에 의식적으로 특정한 컬러를 부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혼돈의 대도시, 문화의 소음과 네트워크의 충돌에 시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기를 거듭하는 ‘문청’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스포티파이에서 음악 검색을 즐겨 하는 gen-z 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러면서도 과거의 음악 유산을 떠올리게 하는 노스탤지어를 놓치지 않았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급격히 발전해 관념과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컨셉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동시대의 음악 생태계에서 이들이 택한 주요 돌파의 수단이 음악과 별개로 여겨지지 않는 스타일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오프닝 트랙 Romance는 간결하고 다크한 전주곡이다.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 당신이 죽을 때까지(I’ll be beside you / Til you’re dead)’라고 말하는 잔혹할 정도의 사랑이자, ‘아마도 사랑은 장소가 될지도 몰라(Maybe romance is a place)’라는 가련한 전망을 내보인다. 이 말은 아무리 찾아도 내가 속할 장소가 없다고 인식하는 전제와 화자에게 확실한 감정인 ‘사랑’이 화자에게 그토록 어려운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투영하는 듯 느껴진다. 어둠과 슬픔의 기조는 Starbuster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며 여기에는 혼돈이 추가된다. 랩에 가까운 보컬로 숨이 가빠지는 돌진을 형상화하다, 인터루드에 이르러 혼재된 네트워킹을 하던 내면이 서정적으로 와해되어 깃털처럼 가라앉는 듯한 장면을 묘사한다.
Desire에 새겨진 절망은 현악 4중주 편곡과 함께 지탱되고 있다. 다음 곡 In the modern world에서도 현악 편성의 주요 기조가 이어지고 가사를 들여다보면, 이들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었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소설처럼, 화자의 감정, 기분 그리고 몽상이 뒤섞인 의식 속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슬픔의 감정을 고양하거나 유형화하는 데 현악 선율이 얼마나 긴밀하게 협력하는지 되새기게 되기도 한다.
Sundowner에서는 기타리스트 코너 컬리(Conor Curley)가 보컬을 맡았다. 그룹의 메인 컬러에서 조금 벗어나, 앰비언트와 슈게이징 장르의 혼합으로의 우회를 보여주는 듯하다. Horseness is the whatness는 멤버들 중 유일하게 아일랜드가 아닌 스페인에서 자란 카를로스 오코넬이 쓴 곡으로, 간결하면서도 철학적 사색이 묻어난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 “말다움은 모든 말의 본질(Horseness is the whatness of allhorse)”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어린 딸에게 이 소설을 읽어주다가 영감을 얻어 쓰였다고 한다. 창의적 작업에 임할 때 순식간에 복잡해져버릴 수 있고, 여러 생각과 판단이 그물처럼 엉키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망각해버릴 때가 있지 않은가? 이 곡은 창작자가 바로 그러한 창의적 ‘늪’에 빠지지 않도록 일깨우는 메시지로 이해된다.
Death Kink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어둡고 불안해지지만, 마지막 곡 Favourite의 쟁글 팝 같은 소박함과 따스함으로 마무리 짓는다. ‘당신은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사람(You were my favourite for a long time)’을 반복하는 데에서 이 곡이 실연이나 어떤 종류의 결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지만, 곡을 이끌어가는 낙관적 분위기에서 화자가 절망에 빠지지 않고 도약하는 느낌을 캐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이 곡을 직접 연주하는 멤버들과 듣는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전달되는 ‘말의 본질(Horseness is the whatness)’ 같은 에너지일 것이다.
Favourite은 <Romance> 발표 후 최근 공개된 싱글 It’s amazing to be young과 유사하게 밝은 톤을 가지고 있다. 이 흐름은 그룹이 점차 더 밝아질 거라는 예측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문득 과거에 대해 생각하니 ‘동굴’이 떠오른다. 동굴에서 아무리 외쳐도 밖에선 들리지 않고 외부의 소리 또한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Romance>는 동굴 밖에서의 외침, 빛을 향해 나아간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Death Kink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어둡고 불안해지지만, 마지막 곡 Favourite의 쟁글 팝 같은 소박함과 따스함으로 마무리 짓는다. ‘당신은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사람(You were my favourite for a long time)’을 반복하는 데에서 이 곡이 실연이나 어떤 종류의 결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지만, 곡을 이끌어가는 낙관적 분위기에서 화자가 절망에 빠지지 않고 도약하는 느낌을 캐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이 곡을 직접 연주하는 멤버들과 듣는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전달되는 ‘말의 본질(Horseness is the whatness)’ 같은 에너지일 것이다.
Favourite은 <Romance> 발표 후 최근 공개된 싱글 It’s amazing to be young과 유사하게 밝은 톤을 가지고 있다. 이 흐름은 그룹이 점차 더 밝아질 거라는 예측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문득 과거에 대해 생각하니 ‘동굴’이 떠오른다. 동굴에서 아무리 외쳐도 밖에선 들리지 않고 외부의 소리 또한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Romance>는 동굴 밖에서의 외침, 빛을 향해 나아간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참조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4/apr/18/fontaines-dc-grian-chatten-carlos-oconnell-romance-interview
https://www.theguardian.com/music/article/2024/aug/15/fontaines-dc-romance-review-xl-recor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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