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et It on / Marvin Gaye

  

마빈 게이의 <Let’s Get It on>은 아주 유명한 클래식 레코드들 중 하나다. 얼마 전 김밥레코즈에 들렀다가 덥석 집어 든 것인데, 지금까지 알앤비나 솔 음악에 대해서는, 컴필레이션 형태의 영화 음악을 통해 간간이 접한 경우 외에는 특별히 집중해 본 일이 없었다. 나로서는 미개척지 같은 ‘솔’ 장르의 출발 지점이라는 각인을 새기는, 반가운 첫 번째 솔 음악 레코드가 되었다.

마빈 게이의 생애와 이력을 읽어 보니, 20세기 초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간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그것에 비견되는 험난한 생의 고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 가장 특징적이었던 건 아버지와의 관계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다소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1984년 마흔넷의 나이에 우발적인 죽음에 이른 것도 가정 내에서 벌어진 다툼에 관여하다 그만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가 Gay라는 성을 Gaye로 변경해 활동한 것도 아버지와의 좋지 못한 관계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사랑과 성을 앨범의 주제로 삼은 이 앨범 <Let’s Get It on>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억압받아온 성적 자유를 스스로 해방하고자 한 의식적인 시도로 알려지기도 한다.

마빈 게이는 60년대 초반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앨범 <That Stubborn Kind of Fellow>를 통해 팝 차트 순위권에 오르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온 솔 싱어 태미 테렐(Tammi Terrell)과 듀엣을 이루며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갔지만, 그녀가 뇌종양으로 사망하자 몇 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등 매우 힘든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 세금 문제, 약물 의존 등 엉켜 가는 개인적인 상황도 그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시기를 견디기 위한 한 가지 확실한, 음악으로부터의 ‘외도’ 방법이었는지, 그는 NFL의 디트로이트 라이언즈(Detroit Lions)에 소속해 풋볼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 1971년, 강경한 반전 메시지를 담은 앨범 <What’s Going on>이 발표되었다. 처음 이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타운의 대표 베리 골디(Berry Gordy)에게 전달했을 때, 그의 반응은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한 뮤지션의 사기를 꺾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과 세상에 만연한 수많은 폭력과 전쟁 등을 보다 실제적인 차원으로 이해한 그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한 주제였고, 결국 그의 추진력이 일궈낸 이 계획은 성공하고 만다. 녹음은 불과 열흘 정도 만에 이루어졌는데, <What’s Going on>은 지금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솔 레코드들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첫 곡 What’s Going on에서 전쟁으로 죽어가거나 고통받는 사람들, 무너진 사회의 양심들에 대해 토로하는 그의 목소리는 메시지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청자로 하여금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여백을 가지고 있다. 앨범의 필청 트랙이라 할 수 있는 Mercy Mercy Me 또한 마찬가지다. ‘ecology’라는 부제가 붙은 것에서 파악할 수 있듯, 이 곡은 자연의 체계가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중심이 된다. 통렬한 상황에 비해 보컬 톤은 지나치게 담담하다.



<What’s Going on>의 커버에서 검은 재킷을 입은 그가 비를 맞으며 푸른 배경 앞에 서 있었다면, <Let’s Get It on>은 섹슈얼리티가 주제인 만큼 데님 의상에 빨간 비니로 포인트를 준 모습을 담으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다른 무엇보다 사랑에 집중한 앨범. 특별히 어떤 조건이 필요치 않은, 그저 그 자체만으로 순수할 수 있는 형태의 사랑.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에는 분명 그러한 성질이 있다. 바이닐 커버를 열어 보면 마빈 게이가 남긴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의 메시지를 대략적으로 요약해보면, 사람들이 성에 과도한 상징이나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 기관을 인간의 거룩한 몸의 일부로 파악하고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긍정적인 성 경험이 한 개인의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You Sure Love to Ball에 낯뜨거운 소리가 포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음반을 만들기 위해 녹음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현실적 삶에서 그가 느낀 좌절과 상처는 끊이지 않았다. 몇 차례 자살 시도 이력이 있기에, If I Should Die Tonight은 결코 그와 별개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죽음의 일기를 쓰는 것처럼, 부드러운 음색 속에 절망이 가득하다.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오, 자기야(If I should die tonight, oh, baby) / 이거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I just want you to keep this one thought in mind) / 내가 결코 우울하게 죽지 않을 거라는 거(That I will never die blue) / 왜냐면 난 당신을 알게 됐으니까('Cause I've known you)’, 그의 사연에 한 줄기 희망이 되는 존재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애절함을 자아낸다. 이 희망은 다음 곡 Keep Gettin’ It on에서 확장되어 이어진다. 봉고 드럼과 피아노 선율로 경쾌함이 무르익은 이 곡에서의 풍부한 백 보컬은 마빈 게이의 보컬과 화답하는 느낌을 자아내며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A면 곡들의 프로듀싱을 에드 타운젠드(Ed Townsend)와 공동으로 했는데, B면은 마빈 게이가 혼자 프로듀싱한 곡들을 수록했다. 그런 만큼 B면의 곡들은 뮤지션이 표현하고자 한 바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노골적인 성을 주제로 삼은, 억압된 성적 판타지들을 외부로 끌어낸, 그로서는 자신의 경계를 한 단계 뛰어넘는 곡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색소폰과 함께 재즈 느낌을 살린 Come Get to This와 윙윙대는 기타 선율이 오묘한 포인트를 자아내는 Distant Lover가 핵심 트랙들이다.

뮤지션에게 이 작업은 자신에게 줄곧 영향을 미쳐 온 아버지의 권력을, 자신만의 어법인 노래와 음악을 통해 돌파해 한 인격체로서 성숙해 간 흔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시점의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로 재해석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이들의 억압으로부터의 건전한 해방을 기원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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