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 The National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는 그룹이었고, 도무지 흥미를 자극하지 않는 밴드명 때문에 잘 듣지 않던 그룹이었지만, 아마도 2023년 이후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되어버린 더 내셔널. ‘트윈’ 앨범 <First Two Pages of Frankenstein>과 <Laugh Track> 발표 후 투어를 할 때 한국에도 꼭 내한을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러한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양 록 음악의 본거지가 영국과 미국이다 보니 각 나라의 대표 록 그룹들을 주로 찾고, 차이나 특성을 비교해 볼 때가 많은 것 같다. 지난번 글을 썼던 라디오헤드와 비교했을 때 더 내셔널의 음악은 한결 따스하고 친근한 정서가 녹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맷 버닝거(Matt Berninger)의 바리톤 보컬은 우울하지만 따스하고 절망적이지만 듣는 이를 낙담시키지 않고 고뇌하는 자의 열정 속을 기꺼이 항해하도록 만든다. 멋부리지 않았는데 따라 부르고 싶을 만큼 멋진 구절들이 때론 가슴을 치기도 한다. 꽤 감정적인 기분의 보컬과 그룹만의 역동적 감성을 살리는 드러밍, 현란하고도 과시하지 않는 기타와 민첩한 사운드 테크닉, 이따금 선을 그리듯 나타나는 금관 악기 선율들의 조화는 비 내린 뉴욕의 거리를 수채화로 담아낸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디 성향이 강하던 초기작들을 거쳐, 대중을 향해 서서히 입지를 굳혀 가며 미국 얼터너티브 인디 록 밴드로서 정점을 찍은 더 내셔널. 아무래도,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좋아하는 그룹의 신작 소식일 것이다. 게스트 리스트로 가득 채워진 최근 두 앨범 <First Two Pages of Frankenstein>과 <Laugh Track>의 희화화된 유머러스함과 과거에 비해 다소 마일드해진 톤에 뒤를 이은 건 내추럴함이 감도는 라이브 앨범이다. 더 내셔널은 <Rome>을 통해서 그들의 음악이 가진 인간적 면모를 더욱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녹음은 2023년 6월 3일 로마의 역사적인 공연 장소 파르코 델라 뮤지카 오디토리움 엔리오 모리꼬네(Auditorium Parco della Musica Ennio Morricone)에서 이루어졌다. <Rome>에 수록된 히트곡들은 대체로 후반기 앨범들에서 발췌된 것들이고, 그 이전의 히트곡들을 감상하고 싶다면 2018년 나온 라이브 앨범 <Boxer(Live in Brussels)>를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이 트랙 리스트에서 내가 소장하고 리뷰를 한 적 있는 앨범들이 많아서–특히 <High Violet>--이번에는 기존에 언급한 노래들보다 언급하지 않았던 노래들을 중심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 (<@sj_musicnote> 3편을 참고)

<Sleep Well Beast>의 수록곡 The System only dreams in total darkness는 다소 주술적으로 퍼커션을 두드리는 것 같은 드러밍에 날렵한 기타 사운드가 포개지며 주요 멜로디라인을 형성해간다. 제목의 ‘darkness’가 충분히 암시하듯, 한밤중 절망에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는 자의 중얼거림을 듣는 것 같은 노래. 팬들이 함께 부르고 있는 Lit up을 들으면 문득 입가에 웃음이 번질지도 모른다. 이 노래가 한 편의 소동처럼 느껴진다. 진지하고 장난스러운, 웃기지만 가슴 아픈 무언가를 관통하지 않고는 제대로 웃을 수 없는, 모순의 하모니가 상충한다. <Alligator>의 수록곡 The geese of beverly road에서는 피치 못할 상실의 아픔들을 다소 고양된 형태의 낙관적 다짐으로 봉합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밤의 거리를 자유롭게 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곡. ‘ 우리는 반짝이는 세상의 상속자들이다(We're the heirs to the glimmering world)’는 비록 희미할지라도 희망 서린 메시지다.

<Boxer>의 수록곡 Fake Empire는 꽤 정치적인 곡으로 느껴진다. 버락 오바마 후보자가 대통령 출마 후 선거 유세를 할 때 이 곡의 인스트루멘털 버전이 홍보 영상에 사용되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화되지 않았나 한다. 다부진 피아노 패턴과 하강하는 트럼펫 선율이 여백을 채우는 동안 ‘우리는 가짜 제국에서 반쯤 깨어 있다(We’re half awake in a fake empire)’는 가사가 마음에 깊이 울린다. 이런 가사들에서 그룹이 누구나 느끼게 마련인 절망에 관해 우아한 필치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Alligator>의 수록곡 Mr November는 Murder me Rachael처럼 펑크적이며 도전적인 성향이 도드라지는 곡이다. 마치 백치와도 같은 화자의 내면 풍경은 아름답고 찬란할 것 같지만 처참함을 벗어날 수 없다. ‘난 미스터 노벰버 / 난 우리를 망치지 않을 거야(I’m mr November / I won’t f*** us over)’라며 되뇌기. 확신에 넘치고, 더욱 오버스럽게 반복하며 말할 때에도 채 사라지지 않은 반대편의 어둠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녹아내리기라도 하는 듯 주변을 물들인다.

Vanderlyle crybaby geeks는 두 말할 것 없는 엔딩이다. 팬들은 이걸 들으면 눈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팬들이 대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퍼포먼스 중에 술을 한 병 마시거나 무대로부터 뛰쳐나와 저 멀리, 아마도 마이크 선이 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거리의 관객 앞까지 다가가는, 영웅 같다고 하기에는 너무 슬프고 웃긴 프론트맨 맷 버닝거가 관객 앞에서 지휘라도 하고 있었을까. 

(Rome 공연에서 팬이 올린 영상으로 앞 부분에 해당한다. 언제 끊어질 지 모르겠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Archbasilica of Saint John Lateran)의 내부 모습)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이 앨범에 노출될 때마다 늘 의문으로 남던 앨범의 커버 이미지. 모노톤의 차분한 이미지를 한 커버를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과연 록 밴드의 라이브구나 하고 깨달을 만한 현장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커버 이미지에 담긴 손은 카밀로 루스코니(Camillo Rusconi)의 조각상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로마에 위치한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내부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18세기에 제작된 열두 사도들의 조각상 중 하나이다. 옷자락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후기 바로크 시기의 정교한 전신상으로 이 앨범의 커버는 지극히 작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며 의미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펼친 책을 들고 있는 성 마태오의 조각상. 다른 열한 명의 사도들 가운데 왜 책과 손에 주목했던 걸까, 하는 생각을 과제로 남기는 <Rome>. <Rome>을 듣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 그룹을 좋아하고 즐겨 듣던 시기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Barbie the Album / Various Artists

Honey / Caribou

Two Star and the Dream Police / Mk.g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