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Season / Beth Gibbons

한동안 어두운 노래는 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그런 음악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베스 기번스에 이르렀다. 베스 기번스는 지금까지 세 장의 솔로 앨범을 냈다. 첫 번째는 2002년 나온 <Out of Season>, 두 번째는, 솔로 앨범이라고 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는, 폴란드의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Henryk Górecki)의 심포니 3번 ‘비통한 노래들의 심포니(Symphony of Sorrowful Songs)’ 라이브 앨범이다. 폴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가 지휘자로 나선 이 앨범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볼 수 있었는데, 무거운 선율이 이어지는 1악장은 일상에 달라붙어 미동 없던 감정을 쉽게 건드리며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아마도 기억 속에 ‘트립 합’이라는 라벨이 그룹 포티쉐드(Portishead)의 음악에 달라붙어 있었던 것 같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트리키(Tricky) 그리고 뷰요크(Bjork)의 초기 앨범들도 거기에 속했다. 포티쉐드의 음악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잊혀질 만큼 그리 각별하게 여겨지던 음악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Glory Box가 자아내던 이미지는 매우 강렬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포티쉐드의 음악을 들어보았을 때, 정작 그들에게 메인스트림의 성공을 가져다준 <Dummy>보다 오랜 텀을 두고 나온 <Third>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듣자마자 반해버린 곡은 Hunter. ‘만일 내가 넘어진다면, 나를 붙잡을 거야? 나를 그냥 지나칠 거야? 그저 잠시 기다려달라는 것 말고는 내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리란 걸 알잖아(And if I should fall, would you hold me? / Would you pass me by? / For you know I'd ask you for nothing / Just to wait for a while)’는 가사는 불현듯 마음속을 휘젓는 것 같았다.
베스 기번스의 첫 솔로 작업인 <Out of Season>은 러스틴 맨(Rustin Man)과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다. 포티쉐드의 음악과 비교하면 전자 악기 색채가 옅어지고 어쿠스틱한 사운드의 구현에 힘을 실었다. 이 앨범은 두 뮤지션의 유일무이한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러스틴 맨은 폴 웹(Paul Webb)이라는 본명을 가졌고, 그룹 토크 토크(Talk Talk)의 멤버이기도 했다. 토크 토크는 10년여의 비교적 짧은 활동 기간을 가진 아트 록 혹은 포스트 록 그룹으로, 이 그룹의 영향력은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마니아들 사이에선 고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Out of Season>의 첫 곡 Mysteries는 일상과 자연을 차분히 담아낸 듯한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이 자연의 조각이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아, 통로가 계속해서 열려 있는 것 같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선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것 같고, 나직한 목소리의 흐름은 언어로 인해 기어코 기억할 만한 순간으로 전환된다. ‘사랑과 신비의 장소 / 내가 언제든 거기에 있을게 / 오, 더이상 전쟁이 없는 사랑의 신비 / 내가 언제든 거기에 있을게(A place of love and mystery / I’ll be there anytime / Oh, mysteries of love where war is no more / I’ll be there anytime)’. 신과 전쟁, 사랑과 신비라는 큰 시각을 통해 전하는 그녀의 메시지는 왜인지 모르게 중요하다.
Tom the Model은 결별 후 겪는 상심을 다루고 있지만 ‘그냥 네 길을 가 / 날 오해하진 마 / 내 걱정 할 필요 없단 걸 알잖아(Just do what you're gotta do / And don't misunderstand me / You know you don't ever have to worry 'bout me), 라며 화자는 담담한 태도를 보여준다. 드라마틱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 필청 트랙이기도 하다. 부드러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Sand River, 다음 곡 Spider Monkey는 다크하고 미스터리한 풍경에 휩싸여 있다. 덧없음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며, 종종 ‘내가 거기 있을게’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고통 없이 흘러갈 수 없음을 새삼 깨닫도록 만든다. 약간 재즈 분위기가 나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떠오르기도 하는 Funny Time of Year. 사랑의 목소리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고 나무엔 꽃이 피지 않는 이상한 계절. 여러 겹으로 포개어지는 기타 선율들과 소음의 타래들 속으로 목소리는 멀어져간다.
<Out of Season>은 사운드의 텍스처들이 촘촘히 이어져 고르고, 실험적이며 진취적인 성향도 동시에 묻어난다. 베스 기번스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통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매혹적인 그녀의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들은 끝내 제철을 맞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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