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ul Album / Otis Redding

마빈 게이와 아레사 프랭클린에 이어 이번에 오티스 레딩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만의 솔 음악’ 3부작을 구성해보게 되었다. 오티스 레딩의 이력을 살펴보면 아레사 프랭클린과 유사한 부분이 꽤 많다. 그도 어린 시절 침례교 교회를 거쳤고, 학교생활에 집중하기보단 일찍 음악계에 발을 들였고, 샘 쿡(Sam Cooke),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같은 뮤지션들을 자신의 확고한 음악적 롤 모델로 삼았다. 가스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오티스 레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택스(STAX) 레이블을 빠뜨릴 수가 없다. 마빈 게이가 모타운(Motown)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면 오티스 레딩은 스택스의 대표 주자였다. 미국에서는 지역적 특색으로 솔 장르를 크게 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설립된 모타운과 멤피스에서 태동된 스택스(Stax),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Philadelphia International)로 구분했다. 스택스는 남부 지역인 멤피스를 근거지로 한 만큼 서던 솔(Southern soul), 블랙 가스펠, 컨트리, 블루스 등을 접목한 참신하고 매력적인 음악으로 점차 입지를 굳혀 갔다. 당시 멤피스에 고조되던 인종 갈등의 긴장 속에서도 스택스는 인종 통합의 사례를 보여주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레이블의 에센셜 레코드들 중 하나인 <Green Onions>의 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 & The M.G.’s)도 흑인과 백인이 섞인 멤버 구성을 하고 있었다. 스택스의 자회사인 Volt라는 레이블도 있는데, 오티스 레딩은 원래 Volt 소속이었다. 기타 연주자 조니 젠킨스(Johnny Jenkins)를 차에 태워 세션 장소에 데리고 왔다고 하는 걸 보면 그 당시에 그는 레이블의 심부름꾼 같은 역할도 했던 것 같다. 부커 티 앤 더 엠지스와 조니 젠킨스의 세션이 마치고 우연히 오티스 레딩에게 기회가 주어져 그는 자신이 만든 두 곡을 불렀다. 하나는 Hey Hey Baby, 다른 하나는 These Arms of Mine이었다. 첫 곡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평을 들었지만 두 번째 곡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These Arms of Mine은 1962년 싱글로 발표되고 이것이 성공하면서 오티스 레딩에게는 마침내 싱어로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The Soul Album>은 1966년 처음 나온 오티스 레딩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이다. 내가 소장한 것은 Sundazed를 통해 리이슈 된 것으로, 오리지널 감성은 부족하지만 문득 과거 속으로 뛰어들어 보기엔 무리가 없다. 백인 여성의 희미한 이미지가 커버에 수록되었던 전작 <Otis Blue / Otis Redding Sings Soul>과 일련의 시리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흑인 여성의 포트레이트가 실린 커버가 꽤 눈길을 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예쁜 얼굴의 그녀가 살짝 머금은 미소는 솔 음악의 부드러움과 결코 동떨어지지 않는 친근감을 자아내는 것 같다.
오티스 레딩의 다른 앨범들처럼 이 앨범도 여러 커버 곡들을 포함하고 있다.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과 피트 무어(Pete Moore)가 쓴 곡 It’s Growing은 모타운의 자회사 Gordy Records를 통해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가 히트시킨 곡인데, 두 곡을 비교해 들어 보면 확실히 질감이 많이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템테이션스의 곡은 듣기 좋을 만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데, 오티스 레딩의 노래는 희망과 서글픔이 동시에 녹아 있고 절실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날것 같고 거칠지만 색소폰과 트럼펫 등 악기들의 소리와 블루스 필이 충만한 보컬과 잘 융화되어 하나의 자연스러움이 넘치는, 성긴 텍스처를 만들고 있다. 두 스타일 중 어떤 것에 더 끌리느냐 하는 건 취향 문제이거나 아니면 그때의 기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곡을 통해 모타운과 스택스 스타일을 비교해 보기 좋다.
Cigarettes and Coffee는 뭐랄까, 오티스 레딩만의 충분히 까슬거리지만 대지의 자유로움을 내포한 듯 생기가 일품인 보컬을 감상할 수 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커피와 담배>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이 곡과 그 영화는 특별한 관련이 없고 단지 제목만 같을 뿐이지만, ‘커피’와 ‘담배’가 가진 상징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종의 짤막한 여유, 무언가로부터 빠져나가는 자기 합리적인 순간, 혹은 그냥 지극히 일상적인 덧없는 일 중 하나라는 의미들 사이 어디쯤. 기호에 따라 커피와 담배를 다른 것으로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차와 책이라던가.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은 오래된 블루스 클래식 곡. 1923년에 쓰여 여성 블루스 싱어 베시 스미스(Bessie Smith)가 불러 널리 알려졌다. 니나 시몬(Nina Simone),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버전도 있는데, 제각기 다른 스타일들이 충분히 흥미롭게 느껴진다. 오티스 레딩 버전은 가사의 침울한 면을 잘 부각하면서도 희극적이라 유난히 절박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한 호소력이 바로 오티스 레딩의 노래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음악을 찾는다는 건 굉장히 고리타분한 일처럼 비춰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상 속에서, 때로는 일상에 짓눌린다고 느낄 때마다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내 앞에 음악의 바다가 있고 내게는 기꺼이 파도에 실려 음악에 대해서만 골몰하던 시간이 있었던 거라고. 3주간에 걸친 솔 음악 여정은 눈에 띄지 않게 생산적이기도 했다. 팝 음악의 뿌리가 되는 이 ‘사랑 노래’들에 대해 알아보는 건 분명 즐거움이고 행운이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행운이 스치기를 바라본다.
-참조
https://staxmuseum.org/1957-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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