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s Outgrown / Beth Gibbons

그녀는 첫 트랙 Tell Me Who You Are Today로 어느 한 지점에서 바라보는 생에 대한 탐색의 문을 연다. 동양적 분위기를 가미해 오묘한 사운드를 구현한 퍼커션은 분명 이 앨범의 매혹적인 조연이다. 기도문을 읽는 듯한 면이 있는 보컬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앨범의 커버 이미지에 그려진 것처럼 나의 모습은 여러 가지고, 오늘 내 모습은 무엇과 가장 닮았을까. ‘너는 오늘 어떤 모습이었니’하고 문득 물어보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가 약간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네가 오늘 누구였는지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메시지 같아서.
Lost Changes에는 사랑과 상황, 시간의 변화 속에서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음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비슷하게 ‘사랑의 가능성’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Reaching out. 떠나가는 이를 붙잡고자 하는 심리를 내비치며 내면의 긴박감, 충돌 따위가 이 욕망의 무대 위에 제거되지 않고 배치되어 기꺼이 불편한 감상을 유도한다. Rewind는 제법 역동성이 드러나는 곡으로 주목을 끌었다. 주제는 마찬가지로, 대상의 떠남–이별과 죽음 모두–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린다. Oceans에 그려진 절망의 무게는 어쩔 수없이 아름답고 서글프다. For Sale은 여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곡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의 한 챕터를 그린 듯 선명하고 실감 나게 다가온다. 앨범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특유의 오리엔탈한 선율과 퍼커션의 리듬과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질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절충적 균형감을 유지하고, 감정의 넘침과 부족이 없이 완만한 커브를 그리는 노래도 이 앨범이 거머쥔 우아한 성취라 느껴졌다.
살아가는 동안 맞이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 중에서 유난히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사랑하는 이와의 결별, 가까운 이의 죽음, 나 자신의 병 같은 극복하기 어려운 일들. 내 모습이 여러 가지인 것이 당연한 시간 속에서 나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는 잘 변하지 않고 잘 늙지도 않는다. 그리고 삶은 그런 나보다 더 커져버려 종종 극복할 수 없는 일들을 내 앞에 툭 떨어뜨리고 지나가버린다. 그저 때가 되어 떨어지는 나무의 열매일 뿐인데도 감정을 지각하는 인간으로서 그것이 낯설거나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때도 있다. 나보다 더 커져버린 삶들. 제철이 아닌 과일과 식물들. 약간 주제에서 벗어난 그 이야기들은 아픔이 있지만 저마다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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