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le, Fable / Bon 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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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Sable 파트의 파멸적 아름다움부터 감상해보자. 혼자의 생각에서 일기장에 몰래 적은 글귀들을 보는 듯 내밀하고 낯익은 기분을 선사하는 어두운 트랙들. 뒤에 남겨진 것들의 무한한 팽창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음을 말하는 무거운 심정을 포착한 Things Behind Things Behind Things. 자기비판적 태도와 근심하는 자아의 섣부른 인식 따위를 담아낸 S P E Y S I D E. 그리고 Sable 파트의 마지막 트랙 Awards Season은 이제 본 이베어 음악의 새 지평이 되는 Fable 파트를 연결할 만한 최소한의 싹을 지닌 곡으로 이해된다.
고뇌와 근심의 독백이 눈부신 발견으로 전환된 Short Story부터, 모든 것이 평화로운 사랑이며 그것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Everything Is Peaceful Love에 이어 Walk Home은 낭만적인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존 윌슨(John Wilson)의 재치 있는 뮤직비디오 이야기와 함께 저스틴 버논이 남긴 메시지가 인상적이라 이곳에 옮겨보고자 한다. 그는 Everything Is Peaceful Love를 만들 때 새 앨범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알 수 있었고, 행복과 기쁨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형태이자 생존의 진정한 부양성이라는 생각, 그리고 자신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The idea that happiness and joy are the highest form and the true buoyancy of survival, and even taking yourself less seriously could heal the world.)
이제 확실히 힘을 뺀 듯 레이드 백 스타일의 느슨한 트랙 There’s A Rhythmn, 가사 없이 앰비언스로 채워진 마지막 트랙 Au Revoir로 이 밝고 새로운 무대도 서서히 페이드아웃된다. 문득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잘 믿기지 않는다. 그 가을 Sable에서 시작된 여정이 봄의 Fable로, 그리고 여름으로 넘어오는 계절의 변화를 닮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쁨, 충만감, 위로하는 마음, 기다림, 희미해지는 감정 등 Fable에 그려진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사랑의 생동감을 이끌어낸 Fable의 초반부 노래들이 흥미로웠다.
종종 어떤 예술가, 어떤 뮤지션, 어떤 작가가 급격한 변화를 보여줄 때, 그렇지만 충분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을 때 그들을 지켜보는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때가 있는 것 같다. 변화라는 건 언제나 말로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Sable, Fable>에 담긴 변화, 혹은 이행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파악되도록 애를 쓴 흔적과 함께 드러난다. 너무 단순해서 더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 단순함 뒤에 계속해서 숨은 의미가 남겨져 있는 듯, 상반된 두 세계의 경계와 관계에 대해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본 이베어는 절망의 끝에 도달하던 감정의 무게와 속도를 그대로 가지고 이번에 단지 반대쪽 끝을 향해 밀어붙여 본 것 같다. 뮤지션도, 글을 쓰는 나도,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우리 모두 사람인 관계로 슬픈 이야기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나 이야기를 듣기를 내심 더 원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본 이베어의 <Sable, Fable>은 환영할 만한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새 앨범이다.
-참조-
https://youtu.be/BWfQYYDhefs?si=G6pG1cDVAcUaZreq
https://youtu.be/WH2HwdfXme0?si=UeIp1QC4h39U-0ld
https://www.stereogum.com/2296917/bon-iver-everything-is-peaceful-love/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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