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If You Get Lost / Tyler, the Creator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 그가 내세운 것은 ‘타일러 보들레르’라는 새로운 캐릭터다. “길을 잃으면 내게 전화해”라는 꽤 힘이 되는 이 메시지는 앨범의 곳곳에서 흘러나오며 마치 영화 음악의 라이트모티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여행의 테마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이 메시지와 함께 <Call Me If You Get Lost> 여정의 공식적인 가이드와 같은 DJ Drama의 멘트들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면서 유랑의 컨셉을 도입한 앨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랩과 솔 음악의 매끄러운 결합을 보여준 전작 <IGOR>와 비교하면 이 앨범은 노래보다 랩의 비중이 높고, 데뷔 초기 그의 음악에 붙어지곤 하던 라벨인 ‘호러 코어’ 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외로의 여행 혹은 자신의 유년기 터전이던 곳을 떠나는 낯섦과 희열을 동시에 지니고 (내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멋진 일은 / 이십 대 무렵 처음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떠난 거야 / 난 내 거품을 벗어났고 시야가 넓어졌지 / 내 여권은 가장 가치 있어(The greate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me was / Bein' damn near twenty and leavin' Los Angeles for the first time / I got out my bubble, my eyes just wide / My passport is the most valuable—MASSA), 롤스 로이스, 요트 같은 부의 상징들을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진심 어린 감정들을 새겨내는 (그리고 새로운 보트 왜냐하면 나는 바다에서 우는 게 나으니까(And a new boat 'cause I'd rather cry in the ocean–CORSO, ‘Yonkers’가 나왔을 때 엄마는 보호소에 계셨어 / 그녀를 데리고 나왔을 때, 그 순간 내가 성공했다는 걸 알았지(Mom was in the shelter when ‘Yonkers’ dropped, I don’t say it / When I got her out, that’s the moment I knew I made it–MASSA) 등 당시의 생생한 충돌을 간직한 그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도록 만든다.

오프닝 트랙 SIR BAUDELAIRE는 1분 남짓의 인트로다. ‘여권에 도장 찍었어(Passport stamped up)’는 이번 해외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노래에서 여러 번 변주되어 나타난 태양과 여름에 대한 화자의 시선을 살펴보는 일이 조금 흥미로웠던 것 같다. ‘태양이 빛나네, 너희 준비 다 됐어?(The sun beamin’/ Y’all ready?)로 시작해, 태양에 대한 감각은 ‘내 피부는 태양을 흡수했어(My skin soak up the sun)로 이어지고, ‘여름은 사립학교처럼 보이네(summertime look like private school)’,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이것은 태양을 찾는 자들을 위한 것 / 아스팔트 위의 바이크들을 가졌어 / 디스코로 온 걸 환영해(This shit for the sunseekers / Got the bikes on the tarmac / Welcome to the disco)’, 라는, 설레는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길을 잃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니, 이렇게 말하는 편이 있다니,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 여행을 감행해 볼 수 있다.


다크함과 불온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한 CORSO와 LEMONHEAD에 비하면, 나른하고 레트로한 분위기의 알앤비 트랙 WUSYANAME이 듣기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러 이지 리스닝 모델을 모방한 것 같은 작위적 손길이 묻어나는 지점은 궁극에는 타일러의 음악성을 이루는 주요 성분처럼 이해된다. 막 사랑에 빠진 사람이 품은, 아직 둘 사이에 아무런 오염이 없는 핑크빛 판타지에 대해서, 열 번째 트랙 SWEET이 그런 것처럼, 타일러 자신이 이러한 사랑의 감정을 몽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따금 클라리넷 등의 목관악기 연주가 들려와 크로스오버 재즈 분위기도 가미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SIR BAUDELAIRE의 종결부에서 덤불 사이의 뱀처럼 모습을 드러내던 그것은 HOT WIND BLOWS에서 곡을 리드하며 비트로 가득한 사운드에서 문득 해방되는 감각을 선사하기도 하고, MASSA에서는 아방가르드 재즈 풍의 흥미진진한 도입을 그려내기도 한다.

HOT WIND BLOWS의 가사–‘신사 숙녀 여러분 / 우린 이제 제네바에 도착했어요 / 예, 바로 스위스죠 / 우리는 요트에서 / 젊은 여인이 내게 프렌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여주었죠 / 우리는 모두 발가락도 내밀었어요 / 길을 잃으면 내게 전화해(Ladies and gentlemen / We just landed in Geneva / Yeah, that's in Switzerland / We on a yacht / A young lady just fed me French vanilla ice cream / We all got our toes out, too / Call me when you get lost)에는 과시적인 현란함, 성공 이후 주어진 스타로서의 삶이 가져다주는 미지근한 권태 따위를 겪는 자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그의 가사들이 시적인 텍스트로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앨범은 과거에 내가 즐겨 읽거나 매료되곤 했던 시집들을 떠올리게 했다. 글로, 온몸으로 청춘과 고통에 시름하며 내면의 환부를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던 그 시집들을.

앨범의 중반부를 넘긴 지점에 수록되어 있는 트랙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지는 구조로서 이색적인 완결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널 슈가라고 불러야 해, 넌 너무 달콤하거든 / 사람들은 너를 슈가라고 불러야 해, 넌 내게 너무 다정하거든(They should call you sugar, you're so sweet / Well, they should call you sugar, 'cause you're so sweet to me)’라는 가사를 지닌 SWEET은 사랑의 몽상에 젖은 순도 100 퍼센트의 감미로운 러브송으로 신스 사운드 기반의 알앤비 스타일을 선보이고,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에서는 레게 사운드로 전환하며 몽상에서 깬 상태의 서술을 이어간다. 양립하기 어려운 꿈과 현실 두 세계가 나란히 놓여 있고 둘 중 어느 한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를 오가는 트랜스한 상태에 붙들려 사는 것이야말로 현대적 삶을 투영한다고 느끼기도 했다.


두 개의 파트가 합쳐진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와 유사하게 길이가 긴 WILSHIRE. 이 곡은 8분 가까이 이어지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사연과 화자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세세히 드러낸다. 타일러는 한 인터뷰에서 이 곡을 원테이크로 녹음했고, 핸즈 헬드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 곡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90f1-zWg0c&t=2800s) 그만큼 자신에게 의미가 큰 곡이라 생각된다. DJ Drama의 멘트마저 배제된 WILSHIRE는 진지한 내면세계로의 여행이다.

마지막 트랙 SAFARI에 이르면, 그 에너제틱한 내레이터 DJ Drama는 그들이 이제 시간 빼고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말한다. 이국적이고 와일드한 목관 악기 연주와 패턴으로 자리하는 브라스 사운드를 덧붙이면서. 여러 장소들과 상황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 한 편의 영화 같은, 한 편의 시집 같은 앨범이 여기에서 마침내 끝을 맺는다. <Call Me If You Get Lost>는 재치 있고 흥미롭게 트랙들을 이어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창의적인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뮤지션의 대표적 랩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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