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a / Hiroshi Yoshimura

   

음악은 무엇일까. 음악은 휴식이다. 음악은 나누는 것이다. 음악은 듣는 것이다. 물론, 음악은 라이브를 통해 보거나 ‘경험’될 수도 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음악 감상’에 한정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책과 영화는 시각 활동을 요구하지만 음악은 오직 청각에 의존한다. 집에서 바이닐 레코드를 듣는 일은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만일 그 레코드에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노래가 담겨 있다면 그와 나의 거리는 측정할 수 없거나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돼버릴 것이다.

위에서 내린 정의에 의하면 음악 감상은 ‘보는’ 행위, 혹은 ‘보기의 강요’로부터 정당하게 멀어질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간을 떠다니기 시작하는 일련의 결합된 소리 덩어리들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며 이미지인 형태로 다가와 마음의 심상을 이끌어낸다.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잡념을 떨치고 내면 혹은, 다소 비일상적인 의식의 어떤 층위에 깊이 잠겨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레코드인 히로시 요시무라의 <Flora>는 그런 면을 더욱 강조하는 작품이다.

히로시 요시무라는 일본 태생의 작곡가이자 사운드 디자이너였다. 그는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존 케이지의 전위적 음악, 플럭서스(Fluxus)의 실험 정신, ‘furniture music’(배경 음악)이라 명명된 에릭 사티의 작업 등에 큰 영감을 받아 아티스트다운 컴포지션들을 생산했고, 한편으로 그의 음악은 전시나 공간의 배경 음악에 대한 의뢰를 통해 공공의 목적에서 제작되고 소비되는 경향도 있었다. 이 두 갈래에서 이 뮤지션만의 균형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본능과 직관에 가까운 예술적 표현 욕망과 공공의 목적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타적 욕망 사이에서. 그의 음악은 차분하고 평화로우며 이지적이다. 부담스럽지 않고 걱정을 끼치는 법도 없다. 문득 템포를 늦추고 시야를 넓혀 주변 풍경을 둘러보도록 이끈다.

히로시 요시무라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로는 1982년작 <Music for Nine Postcards>와 1987년작 <Green>을 꼽을 수 있다.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Music for Nine Postcards>는 원래 도쿄에 위치한 하라 뮤지엄의 공간에 배경 음악으로 쓰이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것이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어 레코드로 제작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Green>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야마하의 DX7과 여러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들과 시퀀서 등을 통해 만들어낸 앰비언트적인 전자 음악에 가까운 버전, 다른 하나는 SFX 버전으로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등 자연의 소리 조각들을 함께 엮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 SFX 버전은 1987년 당시 미국 뉴에이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의미에서 사운드 이펙트 효과들이 첨부된 형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버전과 SFX 버전의 비교)

<Flora>는 <Green>에 이어 1987년 제작되었지만 발표되지 않고 그의 카탈로그 속에 오래 숨어 있었다. 2006년 처음 발매되어 대중과 팬들에게 공개되고 2024년 리이슈되어 동시대 음악팬들에게 사그라들지 않는 작곡가의 영향력을 재확인하도록 했다. <Music for Nine Post Cards>와 <Green>에 대한 열광적 반응이 어느 정도 식은 이 시점에서 <Flora>를 마주한 것은 나에게 반가운 주제처럼, 그리고 타당한 이완의 기회로 다가왔다.

히로시 요시무라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몇 가지 장르적 분파들을 살펴보자면, 앰비언트, 뉴에이지 그리고 환경 음악(environmental music)을 예로 들 수 있다. 셋은 서로 비슷한 스타일처럼 보이지만 그 지향점이 각기 다른데, 앰비언트가 아방가르드한 예술적 형태로 구축되기를 지향한다면 뉴에이지는 어쿠스틱과 전자 음악을 결합해 이완과 평화를 통한 명상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경 음악은, 히로시 요시무라의 Blink가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 <Kankyo Ongaku>를 기준으로 삼을 때, 자연이나 일상에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배경 음악을 지향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Kankyo Ongaku는 ‘버블 시대’라 불리는 일본의 경제 호황기인 7-80년대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시티 팝과 비슷한 문화적 유산이었다.(https://www.tokyoweekender.com/entertainment/music/the-calming-world-of-kankyo-ongaku-music/) 물론 두 장르의 스타일과 특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말이다.




히로시 요시무라의 <Green>과 <Flora>는 위의 세 가지 장르적 요소들이 모두 혼합되어 있는 그의 대표 작품들이다. <Green>에 비하면 <Flora>가 좀 더 미적이고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든다. <Flora>에는 피아노 연주가 제법 많이 수록되어 특유의 생동감과 친밀함을 이끌어낸다. 아무튼 <Flora>가 반가운 것은, 반대편에서, 혹은 바로 옆에서 이토록 오래된 클래식 <Green>을 바라보도록 하는 동기를 마련하기 때문일 것이다.

Over the Clover는 상쾌한 출발점이다. 잠에서 덜 깨 아직 몽롱한 상태인 아침에 이 음악을 듣는다면 이후 펼쳐질 하루를 기대하며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뒤를 잇는 Flora는 기대를 품은 당신의 머릿속에 판타지를 흩뿌리며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매혹적인 트랙이다.



Ojigisou와 Maple Syrup Factory는 여과 없이 피아노 선율을 도입해 이끌어간다. Maple Syrup Factory은 장난기 어린 순간의 스케치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이 곡을 들으면 금세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것만 같은 보편적 사랑스러움이 있는 한편, 자신만의 우화를 지닌 채 잘 설명하지 않고 그런 기미만 풍기는 것 같은 새침함도 묻어난다.


Adelaide는 7분 분량의 곡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긴 곡이다. 곡의 길이가 자주 해석의 단서를 마련한다고 생각하기에, 가장 긴 길이를 가진 이 곡을 좀 더 유심히 듣게 되었다. 잔잔한 파도 소리와 물방울이 무언가의 표면에 닿아 일어나는 소리와 같은 자연음, 그것은 바다 아래의 소리로 이동하면서 한없이 유동적인 이 악곡의 서사를 완성해간다.

작곡가가 존경했던 존 케이지의 저서와 타이틀이 같은 Silence는 공명하는 멜로디들을 저마다 부유하게끔 배치해 기와 공기의 흐름을 막지 않는 배려심이 묻어난다. 합창단의 코러스처럼 들리기도 하는 신스음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Satie on the Grass도 마찬가지로 뮤지션이 존경했던 에릭 사티를 기리기 위한 곡으로 볼 수 있다. 이 음악이 흐르는 동안 잔디 위의 사티라는 이미지에 동작과 감정을 부여해 마치 영화처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 음악’, Kankyo Ongaku의 관점에서 이 앨범을 다시 바라보면 이것은 풍부한 생동감을 지닌 환경적 음악의 스케치이자 뮤지션의 개성을 보다 정감 있는 시선으로 이끌어낸 작업으로 생각된다. <Flora>의 이야기는 <Green>의 고요한 역동성과 식물의 시선으로 담아낸 듯한 생동성이라는 형체 없는 주인공이 땅 위로 높이 솟아올라 들판과 하늘을 바라보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앨범이 머금고 있는 낙관주의와 유미주의는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생산적 자발성의 발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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