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ry / Perfume Genius

퍼퓸 지니어스의 <Glory>는 올해 나온 뮤지션의 일곱 번째 앨범이다. 요즘 나온 음악들 가운데 솔깃하게 들려온 앨범이라 리뷰해 보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최근 앨범 <Glory>에 대해 쓰기 위해 혹은 더 면밀히 알아 보기 위해 뮤지션의 이전 음악들을 되짚어 보았다. <Too Bright (2014)>, <No Shape (2017)> 그리고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2020)>를 중심으로 그의 음악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세 가지 앨범을 최소한의 고리로 연결해 보려 했다. 그의 이야기들은 투병하는 존재로서의 고통, 성소수자로서의 부딪침 등 비교적 명확한 테마들을 다루고 있었다. 주제의 깊이에서 오는, 종종 신화적으로 들리는 탈 세속적 사운드와 분위기 조성은 마이클 알든 헤드레어스(Michael Alden Hadreas)의 페르소나 퍼퓸 지니어스의 독보적인 캐릭터 형성과 존속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Too Bright>의 Queen과 Too Bright, <No Shape>에서는 Wreath, Die 4 you가 유난히 인상 깊었다. Die 4 you는 남다른 장악력을 가진 곡이었는데 뮤직비디오에도 잘 그려져 있지만, 욕망의 대상에게 구속된 존재의 움직임을 포착한 듯 관능적이고 비극적인 매혹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곡이었다.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의 첫 곡 Whole Life의 가사도 와닿았다. ‘인생의 절반이 지나가버렸어 / 그것이 떠다니도록, 씻겨 흘러가도록 해 / 내가 꾼 꿈에 지나지 않아 / 꿈에 지나지 않아(Half of my whole life is gone / Let it drift and wash away / It was just a dream I had / It was just a dream)라는, 나이 듦에 대해 자각할 때면 종종 공감하게 되는 흔한 서술이지만 노래에서 덧없음에 대한 슬픔이 더 생생하게 전해 오는 것은 분명 음악이 가진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일어난 현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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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록, 바로크 팝, 챔버 팝 계열 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 퍼퓸 지니어스의 음악 세계는 이번 앨범 <Glory>에서 반가운 포용력을 발휘한다. 전반적인 사운드 구성에서 어쿠스틱 사운드의 도입이 눈에 띌 만큼 조화롭고 생기 있게 결합되어 있다. 초기 인상으론 It’s a Mirror와 Full on이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었던 것 같다.
It’s a Mirror는 확실히 열려 있다. 조금 아니면 절반 가까이. 그동안의 자신을 프레임화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내가 비치는 거울, 그것이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자에게는 ‘신성한 공포(holy terror)’가 된다. ‘그건 사이렌, 숨죽인 울음 / 나를 부드럽고 느리게 붕괴시키는 / 다이아몬드, 문밖으로 나가면 내 일생이 열려 있어 / 그건 거울이야(It's a siren, muffled crying / Breaking me down soft and slow / It's a diamond, my whole life is / Open just outside the door / It's a mirror / Down)’. 내 삶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 있다면 그걸 마주하는 일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자는 그것이 자신이 부수어야 할 자화상이라 느끼는 것 같다. 뮤지션은 이 곡의 창작 배경에 대해 바깥에 멋진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 오랜 수렁에서 나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쓴 노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나가는 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자기 내부의 의지를 담아내며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Hanging out은 사운드의 내러티브를 음향성의 토대 위에 세운 트랙이라 할까, 그러한 성격 덕분에 시네마틱한 확장성을 얻고 있다. 마지막 트랙 Glory는 2분 남짓의 짧은 곡이지만 뭉툭한 톤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구축된, 이 앨범에 두루 걸쳐져 있던 열림, 변화, 변화의 목격, 확장 등의 소재들을 모두 집약하는 컨셉추얼한 엔딩으로 이해된다. 떠도는 자가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마침내 고요한 ‘영광’의 몸에 머무는, 그러한 의식적 죽음을 내포한 레퀴엠이다.
이제 나의 첫 번째 퍼퓸 지니어스 리뷰가 막을 내리려 한다. 그동안 그의 음악을 어느 정도는 회피해왔던 것 같은데, 때때로 감당하기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드러나는 성격과 형태, 분위기에는 저마다의 동기와 역사가 감춰져 있게 마련임을 문득 절감하게 된다. 내게도 나를 비추는 Mirror가 있고 어쩌면 나는 바깥이 너무 궁금한데 문을 열 생각도 없이 바깥에 대한 공상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나의 자화상을 부수면 더 멋진 날들을 만나면 좋겠다. 새로운 전개에 대해 생각할 때 이 앨범을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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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https://www.stereogum.com/2301844/perfume-genius-new-album-glory/interviews/footnotes-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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