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man Original Soundtrack / Prince

배트맨은 DC 코믹스의 만화로 처음 선보인 1939년 이래로, 지금까지 수차례, 여러 감독과 작가들에 의해 때론 코믹하게, 때론 진중하게 그 원형의 이야기를 가공해 재해석되어 왔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배트맨 이야기는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이 연출한 “다크 나이트” 삼부작–<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1989년 처음으로 거대 자본을 들여 영화화된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배트맨>을 주제로 삼았다. 사실상 이 영화를 미국 밖 관객들에게 슈퍼 히어로 ‘배트맨’에 관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성공적인 첫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을 탐색하다가 프린스(Prince)가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 사실이 매우 놀랍고 반가웠다. 훵크와 디스코 사운드의 흥겨움, 솔과 알앤비의 감미로움, 특유의 과시적인 성적 표현과 함께 대단히 저속하면서도 체계적인 팝 음악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음악 세계를 구축해 간 프린스. 끼가 넘치는 그 뮤지션이 정의를 수호하는 밤의 기사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각성되기에 충분했다. 애플 뮤직에서 사운드트랙 수록곡들을 하나씩 들어보면서, 팀 버튼의 영화를 이틀 밤에 걸쳐 나누어 보면서… 연일 35도를 넘는 여름의 한 자락을 지나는 동안 이 레코드가 내게 뭔가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갔다.

<다크 나이트의 모든 것>이라는, 80년에 걸친 배트맨의 역사에 대해 다룬 아주 두꺼운 책에 실린 팀 버튼의 인터뷰에서, 그는 프린스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영화 속에 제대로 흡수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밝히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그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힐 것 같다. 영화 속엔 대니 엘프먼(Danny Elfman)의 스코어가 끊임없이 흐르는데, ‘도대체 프린스의 음악은 언제 나오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도 한참이 흘러서야, 조커가 붐박스를 든 일당과 함께 미술관에 등장할 때 프린스의 하이퍼 훵크 트랙 Partyman이 마침내 흘러나온다. 조커 일행이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제멋대로 훼손하며 난동을 부리는 그 장면과 함께 말이다. 붐박스를 통해 영화 속에서 간접적인 형식으로 프린스의 음악이 흘러나오게끔 유도한 것은, 영화에 전반적으로 흐르던 대니 엘프먼의 스코어나 영화의 진지한 흐름과 극명하게 색깔이 다른 프린스의 음악을 여기에 도입하기 위한 유용한 타협점처럼 느껴졌다. 또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 고담시의 200주년 기념행사에서 조커가 유해 가스가 든 피에로 풍선을 띄울 때 Trust가 흘러나왔다. 조커 일당이 돈다발을 마구 뿌리고, 흩날리는 지폐에 정신이 팔린 시민들과 이를 ‘고담의 탐욕’이라 묘사하는 매정한 기자들의 모습이 뒤섞인 혼돈과 광란의 장면이다. 확실히 프린스의 음악은 조커의 과장된 액션이나 발상과 함께 엮일 때 빛을 발했다. 그렇지만 조커와 상관관계가 있는 위의 곡들 위주로 영화에 사용된 점은, 프린스를 좋아하는 감독으로서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으리라는 게 이해가 됐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아득한 검은 화면 위로 노란색 글자들이 흘러갈 때 나오던 Scandalous는 그야말로 영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붐박스와 피에로 풍선 인형 같은 소품들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영화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트랙으로서 말이다. 브루스 웨인과 비키 베일의 로맨스에 힘을 실어 주는 멜로우한 발라드 곡이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아득한 검은 화면 위로 노란색 글자들이 흘러갈 때 나오던 Scandalous는 그야말로 영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붐박스와 피에로 풍선 인형 같은 소품들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영화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트랙으로서 말이다. 브루스 웨인과 비키 베일의 로맨스에 힘을 실어 주는 멜로우한 발라드 곡이다.
이 글을 쓰기도 전에, 단지 프린스가 팀 버튼의 <배트맨>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거나 혹은 열광하고, 뭔가 이것이 내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줄 거란 기대에 부풀었던 초기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느 때와 다르게 약간 도취된 상태로, 짜릿하고 스릴 있는, 디오니소스적 성향이 강한 프린스의 음악이 궁극에는 짙은 어둠에 빠진 절망을 약간 희망 쪽으로 돌려놓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게 음악 본연의 힘이라 해도 프린스의 음악이 주는 에너지는 어딘가 색다르다.
배트맨은 자기만의 비극과 상처를 가졌고, 그로 인해 결코 밝아질 수 없고 같아질 수도 없는 외톨이 같은 인물의 표상이다. 어떠한 보상도 없이, 단지 정의를 위해 어둠의 편에 서겠다는 결심을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주류의 가치관이나 시대정신에 반하는 저항정신으로 정의를 수호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로 바꾸는, 강렬한 꿈이 이끄는 고독한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배트맨을 그들의 희망을 상징하며 대변하는 히어로로 읽을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나는 ‘정의’를 위해 액션을 취하는 사람이, 히어로를 숭배하거나 판타지를 간직하는 사람이 우습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액션에 실린 완고한 힘이 얄팍한 의심들을 초라하게 꼬리 내리도록 만드는 경우도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생각보다 불쾌한 편이지만, 예상과 다르게 마법 같은 일이 못 일어날 이유도 없는 무한히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프린스의 센스 있는 음악과 함께 무적이 되어 보기를 바란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