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ple Rain Original Soundtrack / Prince & The Revolution

    

과거에 나는 <퍼플 레인> 사운드트랙에 대해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2018년 sj_musicnote 계정을 인스타그램에서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그때 나는 프린스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고, 그냥 그 앨범이 특색 있어 보여 선택했던 것이었다. 돌아 보니 musicnote 계정을 통해 꾸준히 글을 쓰고, 소극적이지만 소통을 하고, 또 책을 만들고 펴내는 활동을 해 온 지 어느덧 7년 반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약간 프린스의 팬이 되었다고 할까, 그의 음악이 가진 에너지를 재발견하며 마침내 <퍼플 레인> 사운드트랙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려 보게 되었다.

지난주 <배트맨> 사운드트랙에 대해 글을 쓰면서 프린스의 앨범들을 두루 훑어보게 되었고, <퍼플 레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다. <퍼플 레인>은 1984년 작품이고, <배트맨>은 1989년으로 둘은 비슷한 시기에 작업되었고, 두 작품 모두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아무래도 <배트맨> 하나로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기분이라 한 주 더 프린스의 음악에 머물기로 했다.

사실 <퍼플 레인>이란 영화는 그다지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선 줄거리가 꽤 신파적으로 흘러가고 전개가 작위적인 면이 있었다. 여주인공 아폴로니아 캐릭터가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게 그려진 것도 유감스러운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그 당시에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흑인 인물에 대한 심층적 심리 묘사를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개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평단의 반응이 엇갈린 ‘문제작’이었던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소거하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리뷰하는 이유는 역시 음악이 좋고 앨범의 특별함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내가 단점으로 언급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그룹 내부의 갈등도 은은하게 그리고 있어 드라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고, 따라서 음악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결코 부족함이 없는 기념비적인 록 뮤지컬 극영화라 할 수 있다.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작품일 것이다.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은 음악이 중심이 되는 듯한 발상의 전환이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중심 스토리와 영상이 주가 되고, 음악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 장면을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퍼플 레인>은 음악을 온전히 감상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초반에 더 키드와 아폴로니아가 오토바이를 타고 호숫가 쪽으로 가는 장면은 불필요할 만큼 길게 이어지며 배경에 흐르는 Take Me with U를 2분에 걸쳐 들려준다. 이런 방식은, 제작자들로서는 이해 못 할 창작자의 고집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마니아들을 열광시킬 수 있었던 포인트일 거라 생각했다. 이 초반의 오토바이 신은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 세 가지 중 하나다. 두 번째는 모리스가 아폴로니아를 유혹하려고 수작을 걸 때 더 키드가 무대에 올라가 The Beautiful Ones을 부르는 라이브 무대, 마지막은, 두 말할 것 없이 피날레인 Purple Rain 라이브다.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더 키드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라 소개한 뒤 부르는 Purple Rain은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에 쌓여 온 불편과 아쉬움 들을 단번에 씻어내려주는 듯했다. 또한 더 키드는 이 곡이 그룹의 여성 멤버들인 리사와 웬디가 쓴 곡이라 덧붙이며 그룹 내부에 고조되었던 갈등도 해결되는 순간을 마련한다. 더 레볼루션의 밴드 메이트 리사 콜먼(Lisa Coleman)의 설명, ‘이 곡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보라색은 새벽녘의 하늘을, 비는 정화하는 요소를 뜻하죠(Lisa Coleman shared it means “a new beginning. Purple, the sky at dawn; rain, the cleansing factor.”)’은 정확하다. 이 노래는 ‘씻어냄’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폭력, 갈등, 여성 혐오 그리고 에로티시즘 같은, 그동안 영화를 이끌어 온 주요 동력과 같은 소재들이 슬픔에 잠긴 아버지가 마침내 방아쇠를 당길 때 허탈하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위와 같은 영화의 소재들은 더 키드가 가진 내면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하다. 더 키드는 아버지의 자살 시도를 겪은 후 정신적으로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관객으로서는 그 시점 이후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 ‘정화’의 의미를 담은 이 노래와 영화 속 이야기가 빈틈없이 일치해서 결국 라이브가 주는 울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느린 트랙이 주는 감동은 화자가 깊은 소망과 유감의 공간에 대상을 위치시키고 ‘보라색 비’ 의 이미지를 불러온 창의적 결합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에 올라 이 곡을 선보인 뒤 더 키드의 내면에도 성장이 일어나고, 멀어졌던 관객들이 다시 그를 환영하듯 주인공의 외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퍼플은 어둡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중성을 지닌 비밀스러운 색이다. 프린스의 Purple Rain은 팝과 록 세상의 화려함과 순수, 그리고 낭만을 담아내고 있다.


<퍼플 레인>은 프린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반영된 영화다. 크레딧을 읽다가 재즈 음악가였던 뮤지션의 아버지 존 L. 넬슨이 기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의 디럭스 버전에 그가 참여한 Father’s Song이 수록되어 있고, Computer Blue에 이 곡의 피아노 연주가 쓰이며 편곡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배트맨>의 인상적인 엔딩 크레딧 곡이었던 Scandalous에도 그의 참여가 기록되어 있었다. 프린스는 유년기에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고,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친부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걸 떠올려보면, 여기에서 두 사람의 협업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관계의 회복과 극복을 도모한 흔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퍼플 레인>은 영화가 가진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개성과 매력을 지닌 컬트적 작품으로 기억 속에 자리한다. 프린스가 만들어낸 팝 음악의 과장된 즐거움이 나로서는 적절히 도움이 됐던 2025년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올여름은 비가 제법 자주 온 것 같은데, 또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걸으며 마음속으로 Purple Rain을 떠올려 볼 것이다. 내면의 어둠을 향해 내리는 그 세찬 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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