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m / Clairo

클레어오는 내가 약간 선입견을 갖고 있던 뮤지션이라는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제대로 들어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나온 3집 앨범 <Charm>을 들어보고는 무척 솔깃해져서 마침내 클레어오의 음악을 리뷰해 보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2018년 나온 EP 앨범 <diary 001>이 십 대 시절의 경험들을 포착한 흔적이라면 2019년, 그리고 2021년에 나온 정규 1집 <Immunity>와 2집 <Sling>은 이십 대 초반의 경험들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여기에 나이라는 기준을 부과하는 이유는, 지병–특발성 소아 관절염(Juvenile Idiopathic Arthritis)--으로 병상 생활을 하거나 뮤지션으로서 투어를 하는 등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배경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그 나이대에 경험할 수 있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여러 감정과 고찰들을 꾸밈없이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Immunity>에는, ‘면역성’이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는 것처럼 병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고통이 잔잔히 묻어나고 있다. 마지막 곡 I Wouldn’t ask you는 병상 생활의 풍경과 함께 병문안을 온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한편 클레어오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Bags와 Sofia는 동성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병으로 인한 보편적 삶으로부터의 괴리감, 사랑의 쓴 감정들이 담겨 있는 그녀의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퀴어 정체성의 발견과 성장도 그려지고 있었다.
<Immunity>에서는 로스탐 배트매글리즈(Rostam Batmanglij)가 주요 프로듀서로 활약했고, <Sling>에서는 잭 안토노트(Jack Antonoff)가 메인 프로듀싱을 담당하면서 두 앨범의 어법과 색채가 확연히 달라졌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1집이 가진 활달한 느낌을 더 선호하고 싶지만, 2집이 가진 성숙한 분위기와 내밀함은 비평적 찬사를 불러일으킬만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집 <Charm>에서는 다시 핵심 프로듀서가 바뀌며 앨범에 또 다른 색채를 부여하고 있다. 대체로 한 프로듀서와 몇 장의 앨범을 연이어 작업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와서 그런지 앨범마다 프로듀서가 달라지는 이 스타일에선 어떤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Charm>에서는 솔과 재즈,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빈티지하고 현대적인 색깔로 재해석해온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레온 미헬스(Leon Michels)가 프로듀싱의 주축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전반적으로 빈티지 무드를 강조하며 재즈, 사이키델릭 포크, 소프트 록 등을 유연히 합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조성했다. 2집의 완결성을 한 단계 더 뛰어넘으며 대중적이면서도 뮤지션의 개성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전달되어 오는 <Charm>은 67회 그래미의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단계에 안착했다.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니, 수상은 St. Vincent의 <All Born Screaming>에 돌아갔지만, 아무튼 수상 여부를 떠나 노미네이트되는 것 자체가 인디 뮤지션들의 커리어에는 의미 있는 각인을 남기는 일처럼 이해된다. 이 시점에서 클레어오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십 대 시절의 싱글 발표곡이나 ep 앨범의 베드룸팝과 로파이한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3집 <Charm>은 가장 멀리 도약한 흔적이고, 더 돌아볼 필요 없이 지금 여기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록이다.
첫 곡은 Nomad. 가사는 제목이 의미하듯 정처 없이 흐르듯 살아가는 노매드가 되기를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난 모든 걸 다 잃을 각오가 돼 있어 /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놓고 노매드처럼 살아가려고(I'd run the risk of losing everything / Sell all my things, become nomadic)’, 첫 소절부터 가슴을 쿡 찌른다. ‘낯선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게 낫지(But I’d rather be alone than a stranger)’, 그리고 결의에 찬 메시지를 이어간다. 분명 이 트랙은 부드럽고 나긋한 어조를 띠지만 가슴을 관통해 지나가는 힘이 있다. 아르페지오로 감미로운 멜로디를 부여하던 기타가 멈추는 브리지 부분에서 이 곡의 사운드가 부여하는 무게를 더 잘 감지할 수 있다. 드럼의 균일한 리듬감과 베이스, 그리고 여백이 잔잔히 충돌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첫 번째 싱글로 발표되었던 Sexy to Someone은 재미있는 곡이다. 이 노래는 섹시함에 관한 탐색으로서 섹시함의 본질과는 거리를 두고 그저 한 인물의 콩트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나타났다. 그래서 조금 위트 있게 느껴졌다. 사운드도 화자의 의지적인 모습을 반영해 리드미컬함 속에 여러 개의 멜로디 패턴을 포개며 입체감을 부여한다. 지나치게 복고적이지 않지만 지나치게 트렌디하지도 않은 그 중간 지대에서 말이다.
연인에 대해 느끼는 운명적 감정을 이야기하는 Second Nature. 여성의 웃음소리가 배경에 희미하게 깔리는 걸로 보아 동성 연인에 대한 노래라고 짐작하게 된다. 균일한 리듬 패턴을 유지하다 브리지 부분에 이르면 드럼이 중단되고 갑자기 미니멀한 사이키델릭 분위기로 급전환된다. 이런 이색적인 브리지 패턴이 Thank You에서도 이어진다.
이 앨범은 Terrapin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Terrapin은 거북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바의 이름에서 따왔다. 가사에도 술을 한잔하러 갈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확실히 현실과 가사 속 이야기의 경계가 흐려진다. 거의 즉흥 연주 같은 피아노는 바의 무대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거리감이 있어서 듣다가 잠깐 딴 생각에 빠져도 괜찮을 것만 같다.
Juna는 자유롭고 실험적인 재즈 분위기로 채워진 트랙이다. 처음엔 이 곡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는데, 라이브를 보고 나서 서서히 친밀해졌다. 입으로 트럼펫 소리를 흉내 내던 것이 실제 트럼펫 연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말이다. 가사는 낭만적이고 희망적이다. ‘너와 함께 난 생각할 필요가 없어, 가식도 필요 없지 / 넌 날 알아, 넌 나를 알아 (I don't have to think / With you, there's no pretending / You know me, you know me)’, 코러스부의 위의 가사는 운명적 관계에 대한 깨달음인 Second Nature와 유사한 맥락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2018년 나온 EP 앨범 <diary 001>이 십 대 시절의 경험들을 포착한 흔적이라면 2019년, 그리고 2021년에 나온 정규 1집 <Immunity>와 2집 <Sling>은 이십 대 초반의 경험들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여기에 나이라는 기준을 부과하는 이유는, 지병–특발성 소아 관절염(Juvenile Idiopathic Arthritis)--으로 병상 생활을 하거나 뮤지션으로서 투어를 하는 등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배경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그 나이대에 경험할 수 있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여러 감정과 고찰들을 꾸밈없이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Immunity>에는, ‘면역성’이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는 것처럼 병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고통이 잔잔히 묻어나고 있다. 마지막 곡 I Wouldn’t ask you는 병상 생활의 풍경과 함께 병문안을 온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한편 클레어오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Bags와 Sofia는 동성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병으로 인한 보편적 삶으로부터의 괴리감, 사랑의 쓴 감정들이 담겨 있는 그녀의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퀴어 정체성의 발견과 성장도 그려지고 있었다.
<Charm>에서는 솔과 재즈,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빈티지하고 현대적인 색깔로 재해석해온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레온 미헬스(Leon Michels)가 프로듀싱의 주축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전반적으로 빈티지 무드를 강조하며 재즈, 사이키델릭 포크, 소프트 록 등을 유연히 합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조성했다. 2집의 완결성을 한 단계 더 뛰어넘으며 대중적이면서도 뮤지션의 개성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전달되어 오는 <Charm>은 67회 그래미의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단계에 안착했다.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니, 수상은 St. Vincent의 <All Born Screaming>에 돌아갔지만, 아무튼 수상 여부를 떠나 노미네이트되는 것 자체가 인디 뮤지션들의 커리어에는 의미 있는 각인을 남기는 일처럼 이해된다. 이 시점에서 클레어오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십 대 시절의 싱글 발표곡이나 ep 앨범의 베드룸팝과 로파이한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3집 <Charm>은 가장 멀리 도약한 흔적이고, 더 돌아볼 필요 없이 지금 여기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록이다.
첫 곡은 Nomad. 가사는 제목이 의미하듯 정처 없이 흐르듯 살아가는 노매드가 되기를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난 모든 걸 다 잃을 각오가 돼 있어 /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놓고 노매드처럼 살아가려고(I'd run the risk of losing everything / Sell all my things, become nomadic)’, 첫 소절부터 가슴을 쿡 찌른다. ‘낯선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게 낫지(But I’d rather be alone than a stranger)’, 그리고 결의에 찬 메시지를 이어간다. 분명 이 트랙은 부드럽고 나긋한 어조를 띠지만 가슴을 관통해 지나가는 힘이 있다. 아르페지오로 감미로운 멜로디를 부여하던 기타가 멈추는 브리지 부분에서 이 곡의 사운드가 부여하는 무게를 더 잘 감지할 수 있다. 드럼의 균일한 리듬감과 베이스, 그리고 여백이 잔잔히 충돌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첫 번째 싱글로 발표되었던 Sexy to Someone은 재미있는 곡이다. 이 노래는 섹시함에 관한 탐색으로서 섹시함의 본질과는 거리를 두고 그저 한 인물의 콩트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나타났다. 그래서 조금 위트 있게 느껴졌다. 사운드도 화자의 의지적인 모습을 반영해 리드미컬함 속에 여러 개의 멜로디 패턴을 포개며 입체감을 부여한다. 지나치게 복고적이지 않지만 지나치게 트렌디하지도 않은 그 중간 지대에서 말이다.
연인에 대해 느끼는 운명적 감정을 이야기하는 Second Nature. 여성의 웃음소리가 배경에 희미하게 깔리는 걸로 보아 동성 연인에 대한 노래라고 짐작하게 된다. 균일한 리듬 패턴을 유지하다 브리지 부분에 이르면 드럼이 중단되고 갑자기 미니멀한 사이키델릭 분위기로 급전환된다. 이런 이색적인 브리지 패턴이 Thank You에서도 이어진다.
이 앨범은 Terrapin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Terrapin은 거북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바의 이름에서 따왔다. 가사에도 술을 한잔하러 갈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확실히 현실과 가사 속 이야기의 경계가 흐려진다. 거의 즉흥 연주 같은 피아노는 바의 무대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거리감이 있어서 듣다가 잠깐 딴 생각에 빠져도 괜찮을 것만 같다.
Juna는 자유롭고 실험적인 재즈 분위기로 채워진 트랙이다. 처음엔 이 곡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는데, 라이브를 보고 나서 서서히 친밀해졌다. 입으로 트럼펫 소리를 흉내 내던 것이 실제 트럼펫 연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말이다. 가사는 낭만적이고 희망적이다. ‘너와 함께 난 생각할 필요가 없어, 가식도 필요 없지 / 넌 날 알아, 넌 나를 알아 (I don't have to think / With you, there's no pretending / You know me, you know me)’, 코러스부의 위의 가사는 운명적 관계에 대한 깨달음인 Second Nature와 유사한 맥락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Add up my Love에서 사운드는 초반의 레트로 비트가 중심이 되던 노래들처럼 경쾌한 톤을 되찾는다. Glory of the Snow는 약간 사이키델릭 분위기를 조성했다. 클로징 트랙은 Pier 4는 어쿠스틱 기타와 노래로 포크 분위기가 난다. 화자는 직설적이고 도전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넌 그냥 멍청하게 굴지 / 사랑받는 데 드는 대가는 뭐야? / 가까이 있는 것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 선은 어디 있어? 언제 그을 거야? (You're just playing dumb / What's the cost of it, of being loved? / When close is not close enough / Where's your line? When do you draw?).’ 그리고 시니컬한 태도로 관계를 바라보며 자기 내부의 변화도 발견하면서 이 이야기를 끝맺는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