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 Lana Del Rey

   

지난해 2월, 라나 델 레이의 앨범 가운데 <Born to Die>에 대해 리뷰한 적이 있다. 초기 앨범인 <Born to Die>에서 아홉 번째 정규 앨범인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약칭: Ocean Blvd)로 이 뮤지션의 음악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심한 비약인 것 같기도 하다. 중기 작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Norman Fucking Rockwell!>,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 그리고 <Blue Banisters>와 <Ocean Blvd>까지의 작업에 담긴 색채가 라나 델 레이의 음악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것처럼 느껴지기에 위의 앨범들에 관해 그동안 다루지 못한 게 유감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스트리밍으로 위의 앨범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2019년 나온 <Norman Fucking Rockwell!>은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은, 라나 델 레이 음악의 스탠더드 같은 앨범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듀서 잭 안토노트(Jack Antonoff)와의 협업이 여기에서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2021년작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에서는 주제와 형식 면에서 더욱 페미닌하고 아늑함이 드리워진 음악을 선보였다. 하지만 앨범을 내놓자 일부에서 비판적 반응이 뒤따랐고, 뮤지션은 거기에 대한 저항처럼 <Blue Banisters>를 같은 해에 발표했다. 팬데믹의 영향과 비판적 반응에 대한 저항 의식이 복합적으로 얽힌 <Blue Banisters>는 뮤지션이 내면에 집중하면서 조금 혼란스럽게 들려오는 측면이 있지만, 이 앨범이 없었다면 <Ocean Blvd>의 세계가 훨씬 낯설게 다가왔을 거라 생각되었다. <Blue Banisters>의 수록곡 중 Dealer는, 스포큰워드에 멜로디를 붙인 듯한 특유의 보컬 스타일에서 탈피해 샤우팅을 보여주면서 창의적 열정과 개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인상적인 트랙이었다.


라나 델 레이의 최근작 <Ocean Blvd>는 시네마틱 스코프를 창출하는 사운드 미학에 대응하는 서사적 확장의 완성을 보여주는 뮤지션의 역작이다. 문장형의 제목,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오션 대로 아래에 터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는 그녀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느닷없는 질문이다. 그녀가 묻고 있는 이 터널은 실제로 존재했던, 롱 비치 지역에서 과거에 지하 통로로 쓰였던 저긴스 터널(jergins tunnel)을 말한다. 이 장소가 노래에서 특별히 어떤 의미를 형성한다기보단 망각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있어 구심점이 되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지하 터널을 소환한 발상의 밑바탕에 현재의 사람들이 터널 위 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며 그 아래에 묻힌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끔찍한 자각이 동반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매장된 역사처럼 지금도 텅 비어 있는 그 터널을 소생시키는 것은 결국 기억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기조가 중심이 된 가운데, Ocean Blvd의 가사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들이 너울댄다. 고인이 된 뮤지션 해리 닐슨(Harry Nilsson)의 곡에서 ‘Don’t forget me’를 가져온 것, 그리고 존 레논(John Lennon)을 언급하는 것 등에서 화자가 심리적으로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When’s it gonna be my turn’은 ‘내 차례(내가 죽는 날)는 언제 올까’하는 자문처럼 들려온다.


오프닝 트랙 The Grants는 백보컬 연습 장면을 도입했다. 가사를 틀려 지적 받고 다시 시작하는 이 장면은 앨범을 한결 완화된 형태로 이끌어가는 데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백보컬 연습을 비롯해 곡에 스며든 가스펠 성향은 라나 델 레이가 어린 시절 참여했던 교회 합창단 시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곡은 형식적으로 자신의 음악 여정이 시작된 지점을 반추하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랜트 가문의 가족들을 등장시키며 생과 사의 헐벗은 듯한 무게를 드러낸다. The Grants와 Ocean Blvd는 둘 모두 죽음을 사유한 곡들이지만 The Grants는 가문에 속한 존재로서의 죽음, Ocean Blvd는 뮤지션으로서의 죽음을 각각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Sweet은 화자가 상대를 순결하게 여기고 조심스러움을 가지는 마음이 담겨 있는 진솔한 러브송이다. ‘난 다른 종류의 여자예요 / 만일 당신이 평범한 여자를 원한다면, 베벌리 센터에 가서 그녀를 찾아봐요 / 난 스윗하고 맨발이지 / 만일 당신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길 원한다면 / 바로 거기서 나를 찾을 거예요 (I'm a different kind of woman / If you want some basic bitch, go to the Beverly Center and find her / I'm sweet, bare feet / If you wanna go where nobody goes / That's where you'll find me)’, 그녀의 고백은 너무 투명해서 귀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와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만 같다.


A&W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지는 규모가 큰 트랙이다. 성적 욕망에 탐닉하는 멍든 일상을 읊조리는 내러티브를 가졌다. 두 번째 파트는 취한 듯 몽롱하게 건들거린다. 보컬은 랩 느낌으로 바뀌고, Jimmy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상대를 가볍게 조롱한다.

이 앨범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동료 뮤지션들이 피처링에 참여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다. 그중 첫 번째 협업자인 존 바티스트(Jon Batiste)가 피처링한 Candy Necklace는 가족, 기억과 망각, 타락 등의 영역을 맴돌던 화두를 욕망의 중심으로 옮긴다. 암울하고 구슬픈 피아노 선율에 퇴폐적 음색이 짙게 깔려 있다. 매혹의 ‘사탕 목걸이’를 테마로 한, 할리우드 빈티지를 재현했던 초창기 스타일을 연상케하는 드라마틱한 컨셉 곡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The Grants부터 Sweet까지의 세 곡이 가족과 개인적 서사에 몰입한 기록이라면, A&W와 Candy Necklace는 의도적으로 세속적 주제를 부각시킨 컨셉추얼한 트랙들이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서로 겹쳐지지 않고 다면적으로 존재하며 전체 이야기를 입체화한다.

Paris, Texas는 인디 팝 뮤지션 SYML의 I Want to Leave라는 곡의 주요 멜로디를 가져와 라나 델 레이의 보컬과 매치했다. 몽환적이며 서정적이고 차분함이 두드러지는데, 위의 Candy Necklace도 피아노 발라드이고, 이 곡도 피아노로 전개가 되지만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가 피처링한 Let the Light in은 어쿠스틱함을 살린 팝 발라드로 엇갈린 로맨스의 서글픈 스토리를 담아냈다. 왠지 이 무드는 쉽게 깨질 것만 같다.



Peppers는 토미 제네시스(Tommy Genesis)와 협업해 라나 델 레이의 드립팝적 몽환성과 힙합 비트를 결합한 이색적인 트랙이다. 힙합 분위기 탓에 어느 정도 뮤지션의 과거 카탈로그를 떠오르게 했다. <Norman Fucking Rockwell!>의 Doin’ Time이나 <Born to Die>의 수록곡 Diet Mountain Dew 같은 비트가 강조된 노래들이 떠올랐다. 클로징 트랙 Taco Truck x VB는 이 다면적 서사를 마감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이 트랙은 안정적 틀을 따르기보단 실험적 제스처를 취하며 과거의 한 챕터를 접목시킨다. <Norman Fucking Rockwell!>의 수록곡 Venice Bitch의 일부분을 종결부에 배치해 과거의 곡을 재맥락화하는 메타적 구조를 유연하게 소화하면서, 궁극적으로 앨범에 대한 이해를 과거나 현재, 미래에 얽매이지 않는 다층적 시각을 부여하며 마감하고 있다.



라나 델 레이라는 페르소나는 가수가 되거나 앨범을 내려는 큰 포부 없이 브루클린의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친구들 그리고 열성적인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시절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홉 번째 앨범은 그보다 더 먼 과거에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잠재적인 시작이었음을 암시하고, <Ocean Blvd>는 바로 그 지점을 출발지로 삼는다. 더 깊은 시간 속에서 끌어낸 이야기가 가진 파장은 결코 평평할 수가 없다. <Ocean Blvd>는 라나 델 레이의 기원부터 데뷔 이후 어느 시점까지의 여정을 재구축한 앨범이며 동시에 사후에서 현재를 숙고한 흔적을 담고 있다. 이 물음은 어딘가에서 뮤지션이 보낼 수 있는 간접적인 어필일 것이다.


댓글

  1. 하단의 이미지는 Jergins tunnel, 이미지 출처는 https://tessa2.lapl.org/digital/collection/photos/id/110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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