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Blue Sky / Wilco

    
  
윌코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하지만 내 머릿속은 얼마 전 읽게 된 제프 트위디(Jeff Tweedy)의 책 <How to Write One Song>--한국어판 제목은 <한 곡 쓰기의 기술>–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윌코의 음악을 마주할 기회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레코드점에 들러 발견한 반가운 윌코의 <Sky Blue Sky>를 마침내 턴테이블에 올려놓게 되었다. ‘Sky Blue Sky’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파란 색상의 바이닐. 찌르레기 떼 앞에 매 한 마리가 나타나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새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포착한 커버 이미지는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http://news.bbc.co.uk/1/hi/sci/tech/4355628.stm)

그룹에서 보컬과 기타 등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멤버 제프 트위디는 이 앨범의 작업에 앞서, 윌코의 음악 세계에 있어 가장 혁신적이며 성공적인 성취를 가져다준 두 작품, <Yankee Hotel Foxtrot>과 <A Ghost Is Born>의 스튜디오 효과에 의존적인 환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서정적 포크 록의 영향을 흡수하고 이를 송라이팅의 방향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한결 온화하고 안정적인 사운드 팔레트를 구현했다. 기타리스트 넬스 클라인(Nels Cline)과 팻 산소네(Pat Sansone)의 영입이 특색이 된 윌코의 여섯 번째 앨범 <Sky Blue Sky>는 그룹의 음악 세계의 새 막을 연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오프닝 트랙 Either Way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모호해진 일들에 대해 담담히 인정하며 위로하는 심정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쪽이든’, ‘난 너를 위해 여기에 머물게(I'm gonna stay right for you), ‘어느 쪽이든’, ‘난 모든 일에 그 나름의 계획이 있음을 이해할게(I will understand / Everything has its plan / Either way)’라는 화자의 입장은 이미 둘의 관계가 와해되었음을 충분히 암시한다. 그는 ‘아마 오늘은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뜰’ 거라며 소극적인 희망을 품는다. 이 곡은 간결한 가사와 멜로디를 기반으로 감미로운 기타와 나긋한 현악 파트 연주를 더하고 있다. 잎이 떨어진 가을날의 나뭇가지들처럼 군더더기 없이 오롯이 버티고 있는 보컬이 이 노래의 밸런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Impossible Germany는 ‘경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껴진다. ‘불가능한 독일’, ‘될 것 같지 않은 일본’과 같은, 꽉 막힌 듯한 상황을 마주한 채 화자는 사랑의 의미와 ‘경청’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6분 가까이 되는 이 곡의 절반은 인스트루멘털로 흘러간다. 기타 솔로가 이어지다 트윈 기타의 서로 다른 어법을 병렬적으로 진행시킨다. 그에 따라 곡의 흐름은 더욱 비옥해진다.


타이틀곡 Sky Blue Sky는 잔잔한 포크 트랙이다. 화자는 자신의 집이었던 곳을 떠나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곳은 창문이 깨진 황폐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화자는 ‘썩은 시간’을 보냈고, 살아남은 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푸른 하늘과 함께 / 이 썩은 시간 / 이제 내게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아 / 오, 난 죽지 않았지 / 난 만족해야 해 / 난 살아남았고 / 그걸로 내겐 충분하지(With a sky blue sky / This rotten time / Wouldn't seem so bad to me now / Oh, I didn't die / I should be satisfied / I survived / That's good enough for now)’, 화창한 푸른 하늘은 화자의 암담한 과거 시간과 대비되고 그저 살아온 것이, 축복임을 문득 상기시킨다.

Shake It off는 틀이 여러 번 바뀌면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잼 세션 같은 트랙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개별적인 소리들이 서로 겹쳐졌다가 풀어졌다가 다시 겹쳐지는 등 즉흥적이고 도전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오버 더빙 효과와 함께 한층 실험적으로 기울었던 전작들의 계보를 잇는 급진적 트랙이라고 할까. 자유로운 구조가 처음엔 혼란스럽게 느껴지지만 반복해 듣다 보면 여기에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 Please Be Patient with Me는 어쿠스틱 기타 기반의 발라드이다. 보컬리스트 제프 트위디는 심한 편두통을 앓아 왔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복용한 진통제의 여파로 우울증과 공황 장애 등을 겪기도 했다. 윌코 활동을 해 나가는 중에 진통제 중독 치료를 위해 재활원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이 곡은 그러한 그의 질병과 결부 지어 생각하게 되는 요소가 있었다.


Hate It Here는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의 영화 <보이후드>에 삽입되었던 곡이다. 화자는 일상의 사소한 소일거리들에 대한 묘사를 늘어놓으며 노래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걱정에 휩싸인 루저의 내면을 그리기도 한다. ‘난 이곳이 싫어 네가 떠나면(I hate here / when you’re gone)’ 하는 불안은 결국 현실이 된다. 연인은 떠났고 화자는 홀로 남아 집안일들을 하며 바쁘게 지내려고 애를 쓴다. 자신을 희화화하는 희극성과 상황의 비극이 뒤섞여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What Light은 소박한 분위기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트랙이다. 마지막 곡 On and On and On은 남다른 사연이 있다. 이 앨범을 녹음하던 당시 제프 트위디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는 상심한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우리는 함께할 거야(On and on and on, we'll stay together, yeah)’라고 되뇌며 역동적이고 엄숙한 태도로 윌코의 새로운 여정을 끝맺는다.

장르적으로 윌코는 얼터너티브 컨트리, 컨트리 록에서 아트 록, 인디 록 등으로 점차 변화해가며, 음악적 팔레트를 확장하면서 앨범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연의 이미지를 채택한 <Sky Blue Sky>가 가진 이상적인 안정감과 부드러움, 인간적 면모가 나에게는 유독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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