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reewheelin’ Bob Dylan / Bob Dylan

밥 딜런의 레코드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미 여러 번 그의 음악을 스쳐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를 통해 밥 딜런이 등장할 무렵 리바이벌 포크 신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컴플리트 언노운>을 통해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일렉 기타를 들고 나타나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자 일부 올드스쿨 포크 팬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에피소드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동안 밥 딜런의 음악을 굳이 찾아 듣지 않았다고 해도 위의 영화들을 통해 그를 마주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미네소타주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 로버트 알렌 짐머만(Robert Allen Zimmerman)이라는 이름을 얻은 밥 딜런은 유대계 혈통의 자손인 점과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작은 유대인 사회에 속해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 그는 라디오를 통해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 자니 레이(Johnnie Ray) 등을 접하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고, 고교 시절 밴드를 결성해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등을 커버하기에 이르렀다. 대학 시절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시를 접하고는 ‘딜런’을 예명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밥 딜런’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되었다. 밥 딜런은 거기에서부터 왔다.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상으로 여기던 포크 싱어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1962년 나온 데뷔 앨범 <Bob Dylan>은 트래디셔널 포크, 블루스, 가스펠 커버 곡들로 채워져 있다. 밥 딜런의 오리지널 곡으로는 Talkin’ New York과 Song to Woody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Talkin’ New York은 말하듯 노래하는 ‘토킹 블루스’ 형식을 취한 곡으로,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하우스 및 클럽 무대에 입성한 뮤지션의 이야기를 다소 수다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자, ‘힐빌리(hillbilly–이 용어는 원래 시골이나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백인들을 일컫는 말로, 컨트리 음악의 초기 형태의 장르를 의미한다)’ 같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고, 폐를 불어 넣듯 혼신의 힘을 다해 하모니카 연주를 해 1달러를 번다고 서술하는 등 이방인으로서 뉴욕에서 자리 잡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는 모습을 스케치한다. 이 노래에 그려진 상황들은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의 주인공 르윈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Song to Woody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에 헌정하는 곡으로, 이방인으로서의 애환이 묻어나고 선배 뮤지션에 대한 온정도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밥 딜런은 이 앨범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고, 이듬해 5월 두 번째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을 통해 포크 싱어송라이터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의 첫 트랙 Blowin’ in the wind는 밥 딜런의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대중적인 저항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주요 멜로디는 No More Auction Block이라는 흑인 영가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러한 창작 배경에서 노예제의 부조리, 인권 유린의 서글픈 역사와 무관할 수 없음을 통감하도록 만드는 창작자의 의도를 읽게 된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그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바람만이 안다고 말하는 이 짧은 노래는 심오하고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Blowin’ in the wind가 대중적으로 히트한 건 피터 폴 앤 마리 덕분이었다)
Girl from the North Country의 가사에는 화자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대상이 겨울 풍경 속에 그려진다. 그가 떠나온 북쪽 지역에 여전히 지내고 있는 여인에 대한 사랑 노래. 강풍이 휘몰아칠 때 그녀가 따뜻한 코트를 입고 있는지,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는지 봐달라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한 닿을 수 없는 연인을 추억한다.
분위기를 바꾸어 Masters of War에서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무기를 만드는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Down the Highway는 짙은 블루스 필이 살아 있는 곡이고, Bob Dylan’s Blues는 조금 와일드한 편으로, 데뷔 앨범의 자작곡 분위기와 연결되는 얼룩진 청춘의 감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A Hard Rain’s A-Gonna Fall은 한층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곡은 냉전 시대에 고조되었던 미사일과 핵 전쟁 갈등과도 연결 지어 해석이 가능했다. 질문과 대답의 일관된 구조를 유지하되 화자가 처한 장소나 풍경, 대상들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화자의 시선은 개인적 고통에서부터 출발해 사회, 혹은 세상이 드러내고 있는 온갖 상흔에 다다른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들으면 우리는 그게 뭔지 대충 알 것 같다. 2절의 가사 중 ‘나는 혀가 완전히 부러진 채 말하는 만 명의 사람들을 보았고, 나는 총과 날카로운 검을 손에 쥔 아이들을 보았지(I saw ten-thousand talkers whose tongues were all broken / I saw guns and sharp swords in the hands of young children)’라는 구절을 예로 들면 진실을 가리는 선동가들의 연설이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장소 등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첫 트랙 Blowin’ in the wind가 대중적 느낌의 저항곡이라면 이 곡은 문답법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미학으로서 잘 강조하고, 시적 이미지의 형성으로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어조는 하드보일드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Oxford Town과 Talkin’ World War III Blues도 당시의 사회 정치적 맥락과 함께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메시지가 분명한 곡들이다. Oxford Town은 그 당시 미시시피 지역에서 일어난 인종 갈등과 폭동을 슬며시 언급한다. 이 곡에 대해선 제임스 메러디스(James Meredith)라는 한 흑인 학생이 최초로 미시시피 대학에 입학한 사건의 전후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크게 와닿는 주제가 아닐 수 있지만, 그 당시 상황 속에서 이 곡이 지닌 파급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Talkin’ World War III Blues는 위에서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1920년대 후반 컨트리 가수 크리스 부실론(Chris Bouchillon)에 의해 정립된 ‘토킹 블루스’ 장르를 활용한 예시 중 하나다. 밥 딜런이 동경한 우디 거스리도 이 장르를 자신의 스타일로 잘 풀어내 특유의 민중적인 노래들을 선보이며 대중들과 후배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간결한 기타 반주에 말하듯 노래하는 이 스타일은 밥 딜런에 이르러 사회 정치적 맥락을 도입하면서 더욱 대중화되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이 장르는 스탠드업 코미디 같아서 친근하고 접근이 쉽고, 스포큰워드 양식과도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Honey, Just Allow Me One More Chance는 Honey, Won't You Allow Me One More Chance?라는 헨리 토마스(Henry Thomas)의 원곡을 약간 패러디하고 떠나간 연인에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는 상황으로 각색해 연출한 재미있는 트랙이다. 빠른 전개와 장난스러움, 그리고 도전적인 뉘앙스로 이 절박한 상황이 주는 무게를 뛰어넘는 재치를 발휘한다.
위의 곡과 이어지는 맥락으로 클로징 트랙을 음미해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수록된 노래는 리드 밸리(Lead Belly)의 앨범에 실렸던 We Shall Be Free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이 앨범에 수록된 마지막 두 곡의 가벼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튼 <The Freewheelin’ Bob Dylan>을 통해서 그 당시의 청중들은 미스터리한 신인 가수 밥 딜런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에는 사회적 사안의 무거움을 창의적으로 소화하는 패기와 기지는 물론, 토킹 블루스 취향의 빛나는 재치, 연인에 대해 애타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드라이함을 유지하는 러브송까지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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