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on the Tracks / Bob Dylan

    

지난주에 다루었던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1963년 나온 그의 두 번째 앨범이었다. 신인으로서 풋풋함이 실려 있는, 은유적이면서도 강렬한 저항적 메시지를 담은 곡들로 이목을 집중시킨 60년대 포크 명반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Blood on the Tracks>는, 밥 딜런의 앨범들 가운데 흔히 ‘최고’라 여겨지는, 비평가들과 팬들의 마음 모두를 사로잡은, 여러 음악 매체들로부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온, 비록 뮤지션 자신은 부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첫 번째 결혼 생활에서의 위태로움을 반영했다고 느끼는 앨범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앨범에 대한 수식이 너무 긴 걸까? 아무튼 그 정도로 음악팬들의 관심이 높은 앨범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이 발표된 1963년과 15번째 앨범이 나온 1975년 사이에 밥 딜런은 여러 변화를 겪었다. 일렉 기타를 처음 들고나왔을 때 일부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고, 비틀즈에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음악에 적극 반영하기도 한다. 1966년 <Blonde on Blonde>를 발표한 뒤 오토바이 사고를 겪은 다음부터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레코딩에 집중하는 시기를 보낸다. 컨트리 지향 앨범 <Nashville Skyline>을 낼 무렵엔 날카롭던 목소리도 마치 다른 사람의 노래처럼 느껴질 만큼 부드러운 음색으로 변했다. 어떤 앨범, 그러니까 1970년작 <Self Portrait>에 대해선 혹평을 받기도 했다. 1973년엔 <관계의 종말(Pat Garrett and Billy The Kid)>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사운드트랙 작업도 담당했다. 이미 잘 알려진 Knockin’ on Heaven’s Door의 오리지널 곡이 바로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그 후 레이블을 옮겨 Asylum에서 루츠 록 기반의 음악 <Planet Waves>와 라이브 앨범 <Before the Flood>를 선보였다. 이와 같이 1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뮤지션은 갖가지 굴곡을 거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포크, 일렉트릭 록 사운드, 컨트리, 그리고 루츠 록 등의 장르들을 긴 시간을 거쳐 두루 지나온 이후 도착한 <Blood on The Tracks>는 사랑과 관계에 대해 보다 내밀한 내러티브로 어필하는 밥 딜런의 상징적 앨범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 앨범에는 뮤지션이 한동안 레슨받았던 화가 노먼 래번(Norman Raeben)에 의한 시간 개념의 해체가 반영되어 있다. 가사와 내러티브가 다소 혼돈스럽게 구성된 첫 곡 Tangled Up In Blue에 그러한 새로운 인식이 도입되었다. 7절까지 이어지는 이 노래는 각 벌스의 마지막 행인 ‘우울에 얽혀 들어(tangled up in blue)’에 도달할 때까지 내적인 혼돈과 비참함에 빠진 화자의 질주를 그려낸다. 동부에서 서부로, 서부에서 북쪽 숲으로, 뉴올리언스로, 몬태규 스트리트로, 실제로도 어딘가 자신이 속했던 곳을 떠나 방랑하고 있음이 짐작되는 화자의 거의 잠재의식 같은 내부를 비춰낸다. 이 의식의 여행을 마칠 무렵 그는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에 알던 사람들과 과거의 장소는 이제 화자에게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화자의 마지막 메시지, ‘우린 항상 같은 걸 느꼈어 / 하지만 우린 각자 다른 관점에서 그걸 보았지 / 우울에 엉켜든 채로(We always did feel the same / We just saw it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 Tangled up in blue)’는 이 혼란스러운 여정이 서로에 대한 차이를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한 가장 열정적인 태도로 묻고 부딪쳐야 비로소 오를 수 있는 다음의 스텝인 것처럼 느껴진다.


기타 선율이 그림자처럼 무겁게 떨어져 처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발라드 Simple Twist of Fate은 사랑이 시작되고 관계가 지속되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묘사해 보여준다. 이번에는 반복되는 맺음 구 ‘운명의 단순한 반전(simple twist of fate)’을 각 연마다 변주해 나타내며, 관계에 침투하고 당사자들을 괴롭히기도 하는 미지의 힘인 ‘운명의 반전’을 관계를 지속시키는 명목상의 구실로 강조하고 있다. 한편 You’re a Big Girl Now와 You’re Gonna Make Me Lonesome When You Go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이거나 회의적인 태도가 없는, 사랑의 감정이나 대상에 대한 순수함이 깃들어 있는 트랙들로 이해할 수 있다.

Idiot Wind는 피아노와 해먼드 오르간이 더해져 더욱 다층적이며 드라마틱한 사운드 팔레트를 조성했다. 관계의 폐부를 파헤친 뒤의 기록인 듯 냉혹한 노래. ‘너’에 대한 분노가 끝에 이르러 ‘우리’를 향하듯, 결국 상대에 대한 증오나 분노가 나에 대한 분노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래 속에서 ‘어리석은 바람’은 신체의 기관과 온갖 장소들, 그리고 사물들 위로 불어 오기를 그치지 않는다.

(밥 딜런의 형 데이비드 짐머만이 테스트 프레싱을 듣고 사운드가 너무 앙상하다는 식으로 평하자, 밥 딜런이 다시 녹음한 버전이 본앨범 <Blood on the Tracks>에 실렸고, 기존의 테스트 프레싱 버전은 나중에 부틀렉 레코드에 실린 것으로 보인다)


레코드를 뒤집어도, 뮤지션의 목소리는 A면 못지않은 영향력과 함께 이어진다. Lily, Rosemary and the Jack of Hearts와 Shelter from the Storm은 각각의 노래가 거의 한 편의 소설의 일부라고 봐도 될 만큼 장황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Shelter from the Storm에는 ‘나’와 ‘그녀’가 등장하지만, Lily, Rosemary and the Jack of Hearts는 3인칭 시점으로 쓰였고 분명한 이름과 역할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한층 더 허구적이다. 민속 음악 같은 도입부에 거의 9분에 이르는 이 노래는 인물들과 행위를 충분히 암시적으로 그려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If You See Her, Say Hello는 헤어진 상대에게 전하는 안타까운 혼잣말. <The Freewheelin’ Bob Dylan>의 수록곡 Girl from the North Country에서도 그는 자신을 대신해 그녀가 잘 지내는지 봐달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된다.

마지막으로 듣는 곡은 Buckets of Rain. 기타와 베이스의 심플한 구성을 취한 이 곡은 간결한 가사에 이야기의 내용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것으로 제법 단순하다. 비가 든, 눈물이 든 양동이가 화자의 귀에서 쏟아져 나오고, 달빛으로 가득 찬 양동이가 그의 손에 들려 있다. 눈물과 달빛, 사랑의 양면을 모두 가진 이의 노래. (Buckets of rain / Buckets of tears / Got all them buckets comin’ out of my ears / Buckets of moonbeams in my hand / You got all the love / Honey, baby, I can stand) 빗물이 가득 든 양동이는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감출 수 없는 현실을 은유할 수도 있다. 빗물이 떨어질 때 양동이는 특유의 메탈 소리를 내서 그것이 양동이임을 결코 숨길 수가 없는 것처럼. 사랑은 낭만으로 흐를 때도 있지만 관계의 신의가 깨지고 파국으로 와해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진심을 다하고 헌신할 것을 다짐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이를 더 확대해 생각해 보면, 반드시 연인과의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이 노래를 통해 충실함을 다할 것에 대한 다짐을 새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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