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the U.S.A. / Bruce Springsteen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에 대해 탐구해 보는 시간은 아마도 여느 때보다 느리게 흘러갔을 것이다. ‘보스(뮤지션의 별명 ‘The Boss’)’의 음악에 대해 처음 글을 쓰는데, 그 시작이 <Born in the U.S.A.>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던 것 같다. 타이틀은 물론 앨범 커버만 봐도 가장 미국적인 레코드란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과연 적절한지 아닌지, 혹은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지 여러 번 자문했던 것 같다.

전작 <Nebraska>와 <Born in the U.S.A.>는 확연히 색깔이 다르지만, 실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Born in the U.S.A.>에 수록된 트랙들의 일부가 <Nebraska>의 데모 테잎에서 가져온 것들이고, 그것들은 <Nebraska>와 그전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층의 상심과 고통을 다룬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둡고 무거운 내용을 앙상한 로파이 사운드와 함께 끌어낸 <Nebraska>와 대조적으로, <Born in the U.S.A.>에서는 밴드 스케일로 편곡해 로큰롤, 로커빌리, 록 발라드, 신스 록 등 다양한 장르를 구현하면서, 대체로 업비트 무드로 이끌어가는 진취적 성향을 드러낸다. 간단히 말하면, <Nebraska>는 고립된 환경에서 어두운 이야기를 써나간 특징을 가지고, <Born in the U.S.A.>는 비슷한 주제를 저항성이 내재하는 록 사운드로 풀어낸 것이다. <Nebraska> 데모에 녹음되었던 암울한 내러티브의 곡들–Born in the U.S.A., Working on the Highway, Downbound Train–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들에서는 향락적 열망이나 욕망, 희망과 동료애에 대한 인식까지 사회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을 들여다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초기 버전의 Born in the U.S.A.로 <Nebraska>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발매 예정인 <Nebraska '82: Expanded Edition>에 수록된 '일렉트릭 네브라스카' 버전의 Born in the U.S.A..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전기 영화 <Springsteen: Deliver Me from Nowhere> 개봉과 맞물려 기존의 팬들과 젊은 세대의 새로운 음악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첫 곡 Born in the U.S.A.는 파워풀한 스네어 드럼과 간결한 신스 멜로디를 반복하는 패턴에 고성을 지르듯 하는 보컬을 더해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다. 이 곡은 당시에 정치 우익 세력들에 의해 ‘애국주의’ 노래로 오해되었는데, 원래 가사는 베트남 참전 용사가 조국으로 돌아와 느끼는 환멸감을 다룬 것으로 오히려 우익 세력의 해석과는 지극히 반대되는 입장에 놓여 있다. 노동자 계층의 설움을 대신 알리던 뮤지션의 기존의 입장을 떠올린다면 그가 이 곡을 통해 급진적인 보수로 돌아선 것이 아님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정유 공장의 가스 난로 옆에서 / 난 길을 따라 10년을 타들어가고 있어 / 도망칠 곳도, 갈 곳도 없이(Out by the gas fires of the refinery / I'm ten years burnin' down the road / Nowhere to run, ain't got nowhere to go)’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암울한 시기를 지나는 화자의 절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Darlington County는 뉴욕에서 달링턴으로 로드 트립을 나선 두 주인공의 이야기로, 향락을 추구하는 청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뒤를 잇는 Working on the Highway는 유쾌한 로커빌리 스타일로 흥미를 돋운다. 이 곡은 줄거리가 꽤 재미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 한 건설 노동자의 씁쓸한 일상을 묘사하며 시작되는데 나이가 어린 그 여인을 데리고 도망을 쳐 결국 처벌을 받게 되는 막장의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수년간 해왔을 매일의 노동을 담담하게 그리는 코러스부 가사 ‘난 고속도로 위에서 일하지, 아스팔트를 깔면서 / 난 고속도로 위에서 일해, 하루 종일 멈추지 않아 / 난 고속도로 위에서 일해, 암반을 뚫으며 / 난 고속도로 위에서 일해, 고속도로 위에서 (I'm working on the highway, laying down the blacktop / Working on the highway, all day long I don't stop / Working on the highway, blasting through the bedrock / Working on the highway, working on the highway)’는 비극을 품고 있는 그의 사연을 단순히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여기도록 유도하는 것 같다.


Downbound Train은 <Nebraska>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되살리는 록 발라드이다. 한때 직장과 연인이 있었지만 모두 잃고 지금은 ‘비만 내리는 것 같은’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는 삶을 이야기한다. 추락한 것만 같은 그의 삶을 하향하는 기차에 빗대어 나타냈다. 그래, 인생은 기차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꿈과 이상을 향해 용맹하게 올라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때로 좌절을 맛본다. 그럴 때에도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사이드 B의 No Surrender와 Bobby Jean은 우정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우정이라기보단 같은 목적이나 취향, 지향을 가진 관계가 형성하는 깊은 유대감과 동료애를 통해 희망을 의식하도록 만든다. 이 앨범의 레코딩이 끝나고 이 스트릿 밴드(The E Street Band)를 떠난 스티브 반 잔트(Steve Van Zandt)에 대한 뮤지션의 개인적인 메시지를 반영한 만큼 이모셔널한 뉘앙스가 많이 묻어난다. Bobby Jean의 가사에서 ‘우린 같은 음악을 좋아했고, 같은 밴드를, 같은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지 / 우리는 우리가 봐온 모든 것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와일드한 것이라고 말했어 / 네가 내게 말할 수 있었으면, 내가 네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그냥 ‘잘 가, 바비 진’이라고 말할게 / 이제 우린 빗속을 걸어가 / 우리가 숨겼던 세상의 고통에 대해 말하며 / 이제, 아무도, 어느 곳도, 어떻게도 / 네가 한 것과 같은 식으로 나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We liked the same music, we liked the same bands / We liked the same clothes / Yeah, we told each other that we were the wildest / The wildest things we'd ever seen / Now I wish you would have told me, I wish I could have talked to you / Just to say “Goodbye, Bobby Jean" / Now, we went walking in the rain / Talking about the pain from the world we hid / Now, there ain't nobody, nowhere, nohow / Gonna ever understand me the way you did),’ 라는 부분에서, 유년기부터 알던 사람, 그를 알기 전에 혼자서 세상으로부터 배척 당했지만, 그들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가 된 이후로, 세상이 그들에게 배척당하는 경험이 이야기 바깥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Dancing in the Dark는 신스를 기반으로 했고, 사운드 면에서 제법 익숙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사적 상황이 뚜렷하게 드러나 마치 소설처럼 느껴지던 이전 곡들의 가사와 다르게 인물의 상황은 모호한 편이지만, 그 모호함 속에서 내면의 동기인 욕망과 절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Cover Me와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트랙 My Hometown은 릴랙스 무드를 취한 포크 발라드이다. 잔잔하고 소박한 사운드로 흘러가며 회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화자의 의식 세계를 조명한다.

어쩌면 선입견으로 인해, 그동안 Born in the U.S.A.라는 곡을 싫어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유심히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외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이 곡이 좋다. ‘보스’라 불리는 그의 열창도, 그의 에너지도. 단단한 강인함이 왜인지 지금은 반갑고 감사하다. 물론 이 견해는 나의 개인적인 의식의 전환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비밀을 기록하느냐면, 여러분들도 이렇게, 의식의 전환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감동을 느끼시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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