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ses (50th anniversary) / Patti Smith

    

나의 sj_musicnote를 계속해 나가는 동안, ‘이 앨범은 꼭 이야기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에센셜 레코드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레코드들은 많이 있다) 패티 스미스의 <Horses>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튼 이 앨범에 대해서는 언젠가 이야기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바로 얼마 전 50주년을 기념해 바이닐이 재발매되었다. 재발매반은 오리지널보다 더 많은 보너스 트랙들을 수록하고 있다.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은 50주년 기념 <Horses>를 통해서, 이 음반이 여전히 상징적이며 시간을 견디는 레코드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패티 스미스의 삶을 대충만 돌아 봐도, 그녀가 예술가의 삶 그 자체를 걸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예술가의 삶’이란 말이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 같으니 말을 조금 다듬어 보자면, 예술의 바다에 온 정신과 온몸을 던진 것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패티 스미스는 예술을 탐닉하는 유년기를 보냈는데 특히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의 시를 무척 좋아했다. 뉴저지의 시골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랭보의 신비로운 언어는 어린 소녀의 가슴속에 예술의 길에 대한 열망을 품도록 하는,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였다. 또 어린 시절 자주 아팠던 그녀는 집에 머물며 어머니가 들려주던 레코드들을 벗 삼아 자랐는데, 그때 들은 밥 딜런의 레코드들도 그녀가 시인의 꿈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결정적 동기였다.

 
패티 스미스가 동경했던 랭보의 책 표지

CBGB 클럽의 모습

불안정하고 와일드한 채로 청춘 시절이 시작되었다. 이십 대 초반 뉴욕에 도착해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와 파트너가 되었고, 둘은 첼시 호텔에 머물렀다. 패티 스미스는 음악 활동보다 시로 먼저 예술 작업을 시작했다. Max’s Kansas City라는 레스토랑 겸 클럽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시 낭송회를 몇 차례 가졌다. 그녀의 시가 동시대 아트 신의 작업에 스포큰 워드 형식으로 도입되었고, 이후 밴드를 결성해 맨해튼의 유서 깊은 클럽 CBGB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CBGB의 다른 펑크, 뉴웨이브 그룹들과 함께 패티 스미스의 음악 커리어가 이 장소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되었다.

컨트리, 블루스 등의 라이브 공연을 주로 하던 CBGB는 1970년대 초반 뉴욕에서 펑크 신이 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어주었다. 패티 스미스 그룹을 비롯해, 텔레비전(Television), 라몬즈(Ramones), 토킹 헤즈(Talking Heads) 등 특히 아방가르드 성향을 가진 펑크 음악이 CBGB의 무대를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갔다. 수어사이드(Suicide), 더 크렘스(The Cramps) 등의 음악을 통해 당시 신의 분위기를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패티 스미스 그룹은 1975년 데뷔 앨범 <Horses>를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Horses>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멤버 존 케일(John Cale)이 프로듀싱한 앨범들 가운데 더 스투지스(The Stooges)의 데뷔작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앨범을 감상하면서 더 스투지스의 데뷔작도 함께 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위에 언급한 70년대 초반 펑크 그룹들의 음악도 곁들여본다면 그 시대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더욱 풍부한 청취 경험이 될 것 같다.

존 케일이 프로듀싱한 The Stooges의 데뷔 앨범 중에서 한 곡

70년대 CBGB 펑크 신의 대표 트랙들↓

첫 곡 Gloria는 패티 스미스가 쓴 시를 기반으로 가사를 붙였고, 제목과 주요 멜로디는 반 모리슨(Van Morrison)이 그룹 뎀(Them)을 통해 발표한 동명의 곡에서 따왔다. 노래는 이미 너무 유명한 구절, ‘예수는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 희생되셨지만 내 죄는 아니죠(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라는 당돌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글로리아’라는 여성의 존재를 신격으로 숭배하듯 묘사하는데 물론 신성한 태도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망상하는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는 듯해 듣는 이에게는 극처럼 느껴지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글로리아’라는 신비하고 새로운 여성의 존재보다도 서술하는 자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는, 문학적 스토리텔링의 기능이 잘 살아난 곡이라 생각된다.

뒤를 이어 다툰 뒤에 친구가 떠났다고 이야기하는 Redondo Beach의 몽롱한 노래가 흐른다. 가사에 서술적 상황이 충분히 그려져 있어 흐름을 따라가기 좋고, ‘I went looking for you / Are you gone, gone?’의 말놀이처럼 반복되는 구조가 중독성을 일으킨다. 이 곡은 레게와 유사한 락스테디 양식을 취해 흥겨운 리듬을 제시하며 오락적 측면을 강화하고 있다.



9분이 넘는 곡 Birdland는 앨범의 예술성의 정점을 찍는 대표 트랙이다. 이 곡은 서술적인 시를 읊으며 시작되는 도입부를 가지고 있다. 이어지는 즉흥 피아노 반주와 허공에 새겨지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기타 리프들이 불협화음처럼 놓인다. 쌓인 것들을 철저히 와해시키는 듯한 노이즈를 동반하며 난해함으로 치닫는다. 패티 스미스가 좋아했던 재즈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별명이던 ‘Bird’를 따와 제목으로 삼았고, 피터 라이히(Peter Reich)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유년기 경험과 함께 풀어냈다. 일반적인 세상 속에 잘 섞이지 못했던 그녀는 자신을 외계 생명체에 가까운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한 초월적 모티프가 가사에 잘 드러나 있다. 화자는 ‘우리가 인간이 아닌 곳으로 들어갈 거야 / 우리는 인간이 아니야(“We'll go inside of it where we are not human / We're not human")’라며, 인간의 ‘비인간적’ 면모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태도를 노래에서 반복적으로 변주해 나타낸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말은 우리가 야만적일 만큼 비인간적 행동을 일삼는다는 생각의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이 문장은 결국 사회를 반영한 것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전쟁, 비운의 죽음, 불가해한 인간의 행동이나 처지 등이 녹아 있다. 패티 스미스는 <Horses>를 통해, 60년대 말, 그리고 70년대 초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록 뮤지션들, 짐 모리슨(Jim Morrison),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등의 유산을 되새기고 후대의 뮤지션들이 죽음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그들의 유산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취지를 담고자 했다. 보다 내적인 취지로는, 형식적으로 텍스트 기반의 문학 작품인 ‘시’와 록을 결합하고자 시도했고, 내용적으로는 소외된 사람들, 자신과 같이 조금 특이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특이함을 잘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사회적 멸시나 박해 등을 겪은 사람들의 편에 설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창작 의도와 연계해 생각해 볼 때, 노래의 마지막 구절, ‘우리는 버드랜드를 좋아해(We like birdland)’는 아마도 이 산문시의 핵심인 것 같다. 버드랜드를 통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닌, 연대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Free Money는 피아노가 리드하며 서정적인 발라드가 될 것처럼 흐르다 펑크 미학과 함께 ‘프리 머니’ 를 얻기 위해, 혹은 그것이 환멸스러워서 질주하는 레이스를 보여주는 듯하다. Kimberly는 패티 스미스의 어린 여동생의 이름이다. 마녀 같은 톤을 가진 보컬은 시작부터 불길함에 휩싸인다. Kimberly는 칠 무드의 소프트 록 사운드에 약간의 사이키델릭을 곁들이고 있는 라디오 프렌들리한 곡으로 앨범에서 가장 듣기 편한 노래라 생각된다. CBGB 무대에 올랐던 동료 그룹 텔레비전의 톰 벌레인(Tom Verlaine)과 함께 작업한 Break It up은 조금 다른 뉘앙스를 가졌다. 가사는 간결해지고 기타 사운드가 중심이 되는 시크한 록 발라드 형태를 취했다. Land: Horses / Land of a Thousand Dances / La Mer(de)를 들어 보면, 그 당시에 패티 스미스 그룹이 라이브 무대에서 어떤 공연을 보여줬는지에 대한 그림이 상세히 그려질 것이다. 꽤나 급진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개념 미술 작업을 닮은 Birdland에 이은 또 다른 에픽이다.


두 번째 lp에는 데모와 다른 버전, 그리고 미발표 곡들이 실려 있다. Snowball은 <Horses>와 비슷한 시기에 녹음되었지만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Distant Fingers는 2집 <Radio Ethiopia>에, We Three는 3집 <Easter>의 수록곡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데모 버전 노래들이 아닐까. Gloria의 데모 버전은 한층 느슨하고 퇴폐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문득 패티 스미스가 보컬 트레이닝을 받거나 악기를 배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의 트레이닝이란 성장기를 지나는 동안 열정적으로 시를 동경한 것과 뉴욕에 도착해 시 낭송 무대에 선 것, 파트너이자 포토그래퍼인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첼시 호텔 주변부를 드나든 삶이 전부였다. 게다가 이 앨범은 데뷔 앨범이니 녹음 경험도 이때가 처음인 것이다.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지만, 펑크란 바로 그런 에너지로부터 오는 것 아니겠는가. 존 케일의 날카로운 프로듀싱과 패티 스미스의 풍부한 이야기성으로 완성된 <Horses>를 돌아보기 좋은 시기다.

    


-참조
https://www.npr.org/transcripts/122722618?storyId=12272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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