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Battle After Another Soundtrack / Jonny Greenwood

    

가을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려고 극장을 찾았다. 러닝타임이 2시간 반을 넘는 제법 긴 영화였지만 보는 동안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한밤이었다. 잠든 아들이 깰까 봐 가능한 한 조용히 씻고 머리도 말리지 않고 누워 스트리밍으로 사운드트랙을 들었다. 그리고 며칠간 그걸 반복해 들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영화를 애써 되새기기라도 하려는 듯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영화를 보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고, 선주문 해둔 바이닐 레코드가 약간 지연되다가 마침내 내 앞으로 도착한 이후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본 뒤 두 달 반쯤 흘렀다. 지금 영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그때보다는 조금 식었을 테지만, 시간이 축적되면서 애틋함은 쌓여간 것이 분명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대해 느끼는 감동의 포인트들은 보편적인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우선,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홀아비 역할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와 스티븐 J. 록조 역을 맡은 숀 펜(Sean Penn)의 연기는 더 말을 보탤 것이 없는 것이다. 록조는 퍼피디아와 밥의 관계에 권력으로 개입하는 악당이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그에게 약간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록조보다 더한, 진정한 악당은 백인 우월주의와 순수 혈통주의의 크리스마스 어드벤처스 클럽이니까. 초반부의 신 스틸러 같았던 퍼피디아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등장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밥이나 록조의 서사가 퍼피디아의 서사를 대신해 채웠다. 그러는 동안 록조에게 연민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이 충분히 만들어진 것 같다. 딸에게 ‘과대망상’이라고 핀잔을 듣는, 제법 평화롭게 박탄 크로스의 삶에 붙박인 듯 살아가는 밥은 불현듯 록조에게 쫓기게 되면서 무방비 상태로, 그러니까 격자무늬 가운 차림 그대로 집에서 탈출한다.


영화에 대한 인상 중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흡인력 있게 관객을 리드하는 스펙터클한 연출이었다. 주인공 퍼피디아와 밥이 몸담은 혁명 단체 프렌치 75의 전성기 시절을 디테일하게 그리는 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고 긴장감이 높았다. 이민자 구금소 주변을 탐색하는 퍼피디아와 국경에 모인 프렌치 75 구성원들의 모습을 시크하게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위태로움이 고조되는 현장감과 함께 오프닝 트랙 One Battle After Another가 흐르며 장면에 살을 붙였다. 이 곡은 그다지 튀는 곳이 없이 평범하지만 다만 페달을 밟고 있는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마치 SF적인, 미래적이고 둔중한 패턴을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 파트와 매치된다. 은은하게 광활해지며 시네마틱 스코프를 창출하는 이 곡이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대립되는 것들의 충돌과 그 잔해들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The French 75는 타이틀 시퀀스를 중심으로 흘러나왔고 피아노 스타카토 연주로 미니멀하지만 통통 튀는 개성을 드러내던 재치 있는 곡이었다. 배가 부른 채 사격 연습을 하는 퍼피디아를 보고 밥은 ‘임신의 자각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한다. 퍼피디아의 어머니로부터 ‘자네는 내 딸과 어울리지 않아’라는 타박을 들으며, 마침내 윌라가 태어나고 퍼피디아가 집에서 떠날 때까지 Guitar for Willa가 흐른다. 어쩐지 남부 유럽의 에스닉한 선율을 연상케 하는, 서정적이고 짙은 애환이 묻어나는 기타 연주가 밥과 퍼피디아의 파국을, 이 가족의 비극적 운명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나도 엄마인 까닭에, 퍼피디아가 가정을 두고 떠나는 장면을 볼 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나는 퍼피디아와 밥의 입장 둘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고, 만일 퍼피디아가 떠나지 않고 가정에 머물렀다면 그녀가 밥과 비슷한 사람으로 서서히 변모해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라면, 바로 팀이 서로를 배신하게 되는 냉정한 스토리 전개였다. 죄목이 커진 채 경찰에 붙잡힌 퍼피디아를 록조가 구제해준다. 흑인이자 혁명가로서 철저한 언더그라운드 세계에 속해 살아가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미국 주류 사회에 입성한 것을 환영해’라는 말을 듣게 된다. 퍼피디아의 배신으로 인해 결국 팀은 위기에 처한다. 16년 후의 추적에 시발점이 되는 하워드 서머빌도 미군의 압박에 결국 밥의 주거지를 털어놓고야 만다. 윌라의 친구들 또한 결국 진실을 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그려진 이러한 배신들이 유감스러웠지만, 그러나 이 씁쓸함은 현실에 대한 냉소임을 부정할 도리도 없다고 느꼈다. ‘모든 혁명은 악마와 싸우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으로 끝난다’라고 퍼피디아가 읊조린다. 어쩌면 혁명의 목적은 싸우고 대항하는 과정에 있고, 거기에서 열성적인 생명력을 다하고 최후를 맞는 게 그것의 운명인 걸까? 어쨌든, 퍼피디아의 캐릭터는 혁명의 본질에 가장 근접하다. Perfidia Beverly Hills는 계속해서 위로 상승하는 바이올린의 샤프한 선율을 통해, 그녀의 극단적 기질과 이상을 향한 혼신의 질주 같은 혁명의 본질을 음악에 투영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윌라의 가라테 사부이자 밀입국한 라틴계 이민자 커뮤니티를 이끄는 숨은 혁명가 세르지오는 영화의 감초 그 자체였다. 중반부에 등장해 위험에 처한 밥에게 큰 도움을 주고 더 등장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대사는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두려움 없는 거야, 톰 크루즈처럼.’ 달리던 차에서 뛰어내려 경찰의 추격으로부터 달아나야 하는 밥에게 세르지오가 건넨 말이다. 즉시 내 삶에 비춰보게 되는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대사였다. 두려움 없는 태도로 돌파하는 건 혁명가의 그것과 유사하다. 퍼피디아의 캐릭터가 혁명의 본질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세르지오는 ‘사부’의, 그리고 ‘버디’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혼돈에 휩싸인 밥에게 ‘오션 웨이브’를 떠올리라고 일러주는 그는, 비록 출연은 길지 않았지만 운율감 있는 대사들을 남기며 영화에 다른 입김과 생기를 불어넣었다. Ocean Waves도 피아노 스타카토로 재치 있는 멜로디를 선보였던 The French 75와 유사하게 미니멀한 형태의 음형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이민자들로 뒤죽박죽이던, 산만하지만 서로 부대끼는 온정이 느껴지는 세르지오의 공간을 닮은 듯한 흥미로운 트랙이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온 그 밤에 사운드트랙을 듣다가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곡은 역시 Trust Device였다. ‘Trust Device’는 혁명 단원들이 사용하는 길 스콧 헤론(Gil Scott-Heron)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의 가사로 이루어진 암구호처럼, 말을 대신해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를 뜻한다. 이 장비를 가진 두 사람이 근접하게 되면 하모니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통해 서로 같은 편임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비는 주인공들이 긴급한 순간에 이를 때마다 빛을 발했다. 느닷없이 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 윌라는 이제 극도의 공포와 내적 붕괴를 겪는다고 해도 좋을 만한 쇼크 상황에 다다랐다. 과대망상의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는 영웅이 아니라 배신자였고, 친부로 밝혀진 록조가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믿기 어려운 진실 앞에서 소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윌라는 결국 총을 손에 쥐게 되고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굽이진 사막 도로를 지나 마침내 밥이 윌라에게 이르렀다. 그가 다가가도 윌라는 겨누고 있던 총구를 쉽게 내리지 못한다. 이때 두 사람이 가진 장비들이 태연히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 장면은 꽤 황당한 감동을 만들어냈다. 이때 윌라 앞에 서 있는 밥은 윌라가 알던 그 ‘밥’이 아니다. 밥은 여전히 모르는 사실을 윌라와 관객들만 알게 되면서 극적 아이러니가 불현듯 침투했다. 대체 어떤 멍청한 이가 자신이 아버지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아기였을 때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며 보호자 노릇을 해왔단 말인가. 록조가 친부임이 밝혀진 뒤로 밥의 신세는 또 한 번 처량해졌다. 그래서 밥은 영웅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놓인 인물이 되었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특별 상영 이후 가진 한 대담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그러니까 16년간 윌라를 키운 그 시간이 바로 밥의 영웅의 시간이라고.



우리에게 영화에서와 같은 멜로디 장비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아무리 스쳐도 하모니가 일어나지 않는데,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면 하모니가 만들어진다. 새삼스럽지만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멋진 일이다. 우리가 그런 하모니를 만들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삶은, 이 세상은 꽤 멋지다고 낙관하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되새길 때 무엇보다 가장 오래 남게 될 여운은 아무래도 혁명에 관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혁명은 영화에 그려진 것과는 다른 비폭력적인,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식적인 것에 가깝다. 나는 내가 혁명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새삼 자문해 보았고 내 주변의 인물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혁명을 하며 살고 있는지, 한다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문득 골몰해 보기도 했다. 혁명이 실패해서 비참한 것은 세상에 혁명이 없어서 비참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참조-
혁명 단원의 암구호가 담긴 길 스콧 헤론(Gil Scott-Heron)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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