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AG / Justin Bieber


    

원래 올해의 예정에 없던 앨범이었지만, 내심 아쉬움이 많이 남던 것이었다. <SWAG>가 처음 공개된 이후 음악계에선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것 같고, 올여름 나도 스트리밍으로 이 앨범을 자주 들었다. <SWAG> 한 편의 앨범만으로도 충분히 새롭고, 완전하고, 또 놀라웠지만 한 달쯤 뒤에 깜짝 공개된 자매 앨범 <SWAG II>로, 저스틴 비버는 다시 한번 음악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뮤지션들이 이렇게 서프라이즈 앨범을 내는 경우를 종종 봐왔는데, 이번에도 효과는 아주 좋았던 것 같다. <SWAG>의 서사적 층이 더욱 두터워지는 결과를 불러왔으니 말이다. <SWAG>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그 앨범을 즐겨 들었던 것처럼–역시, 내가 집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에서–<SWAG II>가 나왔을 때 그 앨범도 스트리밍으로 들어 보았다. 가사는 잘 모른 채 부엌에서 흘려들으면서 사운드의 이미지와 느낌에 집중하는 가벼운 청취였지만, 두 앨범 모두 느낌이 좋았다. 저스틴 비버의 감미롭고 내밀한 목소리, 과하지 않은 멜로우한 질감의 비트 등은 여전했다. 한층 세련되고 내추럴한 알앤비 팝 장르의 BGM이 여과 없이 나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이 기회에 잠깐 그의 데뷔 시기를 돌아보기로 한다. 캐나다 태생의 저스틴 비버는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악기들을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공유하려는 목적에서 그의 어머니가 비버의 알앤비 커버 곡들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것이 점차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레이블과 계약을 맺으며 데뷔 앨범을 내기에 이르렀다. 미성년기의 중성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뷔 앨범 <My World 2.0>에 수록된 Baby가 크게 히트하면서 그는 틴에이지 팝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EDM을 가미한 두 번째 앨범, <Believe>로 스타 이미지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고 팝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의 앨범들인 <Purpose>, <Changes> 그리고 <Justice>를 통해서는 스타로 출발한 이 뮤지션이 알앤비 뮤지션으로 체계적으로 도약해 나가는 행보를 읽을 수 있다. 이제 결혼과 출산을 겪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 있는 <SWAG>를 들고 돌아왔다. 탄탄한 기량과 비전이 스며든 <SWAG>는 저스틴 비버의 커리어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야심작이자 올 한 해를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팝 보컬 앨범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작업인 만큼, 뮤지션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실 세계와는 잘 화합하지 못해 우울증이나 불안 등을 안고 살아가거나 공황장애를 겪는 케이스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몇 가지 긍정적인 방향의 해결책이라면 일차적으론 송라이팅에 집중하는 것, 두 번째론 심리 상담을 받는 것, 그다음으론 종교적 신념을 강화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저스틴 비버도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되어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았고, 집요한 파파라치들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내면적으론 불안정한 시기를 거쳐야 했다. 그런 그의 음악세계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가 바로 ‘영성’인데, 이 앨범에도 그러한 신념이 잘 투영되어 있다. 몇 가지 트랙들에서 그의 메시지는 신념이 가져다주는 평화를 포착하고 있다. ‘영성’ 주제를 제외하곤 대부분 사랑 노래들이다. DAISIES 같은 달콤한 러브송도 있고, 구애의 측면에 집중한 YUKON, THINGS YOU DO, SWEET SPOT 등의 트랙들도 수록되어 있다. 또 사랑의 서약의 측면을 그린 WALKING AWAY, DEVOTION 등의 노래들도 만나볼 수 있고, 그래서 ‘사랑’에 대해선 제법 다면적인 서사를 다루고 있다고 파악하게 된다. 첫 트랙 ALL I CAN TAKE는 위태로운 상황에서의 신념을 다루고 있지만 영성에 대한 것인지, 사랑에 대한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기엔 애매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상대와 함께 헤쳐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선명히 담겨 있다. 이 곡이 다소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건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나 프린스(Prince) 등을 연상시키는 보컬 애드리브 표현들 때문인 것 같다. 사소하지만 그것들이 노래에 맵시 있는 공기를 불어 넣는다고 느꼈다.


DAISIES는 발표 당시 차트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사랑스러운 곡이다. 이 곡을 듣고 싫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 학창 시절에 비유한다면 반에서 가장 말끔하고 스타일이 좋은 친구 같다고 할까. 다음 곡 YUKON에서는 보컬을 디지털에 맞닿은 감성으로 풀어내며 이색적인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THINGS YOU DO는 스타카토적 그루브의 기타 리드로 데모곡 같은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다.


BUTTERFLIES부터는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있어 하나씩 짚어 보려고 한다. 우선 이 곡의 특유의 성찰적인 가사가 좋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 우리에게 남는 건 오직 사랑뿐 / 고통과 즐거움은 한 곳에 있고, 흑이나 백으로 나눌 수 없지 / 눈을 감아도 태양은 계속 빛을 내고 있으니까 / 나비들은 떠나가지 않아 (When the money comes and the money goes / Only thing that's left, uh, is the love we hold / Mix of pain and pleasure, never black and white / 'Cause the sun keeps shining, uh, when I close my eyes / Butterflies won't go away’ 라고 하는 부분. 그런데 도입에 삽입된 필드 레코딩 소스는 저스틴 비버가 그를 기다리고 서 있던 파파라치들 앞으로 걸어가 ‘당신들이 원하는 건 돈뿐이야, 사람에 대한 존중은 없어? 당신들은 오로지 돈밖에 몰라’ 하며 불쾌감을 드러내던 영상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장면 또한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의 형태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뮤지션이 의도적으로 이 소스를 노래에 삽입해 과거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거나 희화화하려 한 의도로 비춰졌다. STANDING ON BUSINESS도 파파라치와 충돌하는 장면을 수록했고, 제목도 바로 거기에서 따왔다. 또 다른 재미있는 포인트는 스킷의 형태로 들어간 SOULFUL과 THERAPY SESSION, STANDING ON BUSINESS에 등장하는 코미디언 드루스키(Druski)와의 대화 조각들이다. 그는 비버와 몇 가지 대화를 이어 가는데 마지막은 항상 블랙앤마일드 담배 권유다. 아무튼 이 세 개의 트랙들이 형성하는 분위기를 결코 간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레코딩이란 외부와 차단되어 이루어지는 작업에 가까운데, 위의 스킷들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는 작은 통로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


GLORY VOICE MEMO와 ZUMA HOUSE는 인터루드 역할을 하는 트랙들이다. GLORY VOICE MEMO는 디종(Dijon)이 피처링에 참여한 다음 곡 DEVOTION과 사운드 이미지를 공유하는 트랙으로 두 뮤지션의 접점을 읽게 된다. 위에서 이미 말했듯, <SWAG>에는 사랑의 여러 양상이 담겨 있는데, 아버지가 된 뮤지션으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 노래가 여기에 담겨 있지 않았다면 서운했을지 모른다. DADZ LOVE가 거기에 부응하는 트랙이다. 영아기의 아이에게 해줄 만큼 쉬운 단어들로 구성된 이 노래는 Lil B의 랩과 제법 다크한 비트와 함께 시크함을 살려 완성되었다. 405는 흐릿하고 몽환적으로 처리된 보컬과 사운드 팔레트를 특징으로 하며 눈길을 끈다.


예전에 퀘스트러브(Questlove)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상이 하나 있다. 저스틴 비버가 투나잇 쇼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하우스 밴드로 있던 퀘스트러브와 즉흥적으로 드럼 배틀을 하는 영상이었다. 아무튼 그때 저스틴 비버가 드럼 연주를 하는 걸 처음 보게 되었다. 파파라치에 시달리고 연애사나 경솔한 문제 행동 등으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른 팝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혹시 나처럼 저스틴 비버의 음악을 여태 자세히 들어보지 않고, 그를 패셔너블한 팝스타라고만 여기던 사람들이 있다면, <SWAG>를 꼭 들어보길 권한다. 뮤지션의 성숙도와 내적인 깊이, 파노라마를 보듯 풍부한 서사적 구성, 사운드 디렉션과 테크닉, 그리고 더블 앨범 형태의 완결성 등은 그의 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유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퀘스트러브와의 드럼 배틀 영상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Barbie the Album / Various Artists

Honey / Caribou

Two Star and the Dream Police / Mk.g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