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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24의 게시물 표시
Siamese Dream / The Smashing Pump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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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mese Dream>은 스매싱 펌킨스가 두 번째로 발표한 앨범이다. 내가 구매한 것은 2011년 리이슈반이지만 그룹이 이 앨범을 처음 선보인 것은 1993년이었다. 인디펜던트 레이블 서브팝을 중심으로 너바나, 펄 잼 등을 필두로 한 그런지 음악이 급부상하던 무렵이다. 1991년 데뷔 앨범 <Gish>를 발표한 스매싱 펌킨스도 그런지라 불리는 커다란 조류에 무리 없이 섞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앨범 작업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1집 투어를 마치고 기타리스트 제임스와 베이시스트 다아시가 연인 관계를 청산했고, 드러머 지미 챔벌린은 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빌리 코건은 불안과 우울에 시름하며 차고에서 생활하면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곡 작업에 매달렸다. 천사처럼 맑은 소녀들의 미소를 담은 커버 이미지와는 달리 앨범 작업은 난항을 겪으며 예정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주 민감히 더듬어지는 온갖 갈등의 상황들이나 현실은 비록 절망적이었지만 음악의 언어로 빚어진 그들의 이야기는 이 앨범에서 눈물겹도록 빛이 난다. 그룹의 히트곡 중 하나인 Today를 들어 보자. ‘오늘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최고의 날이야(Today is the greatest / Day I've ever known)’, 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이 가사가 완전히 그 반대편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정말 최고라고 말할 수 없는 날, 정말 완전히 최악의 여러 날들을 지나고 마침내 아무런 동요도 갈등도 없이 그저 잠잠한 날, 그런 날 말이다. 심리적으로 매우 괴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빌리 코건은 이 곡을 쓰던 당시 자살을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결국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이 곡은 그러한 생각과 그 반동 사이의 긴장을 포착하며 두 극점이 서로 필연적으로 교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Today가 스매싱 펌킨스만의 멜랑콜리하며 서정적인 멜로디와 디스토션 사운드의 깔끔한 조화로 찬란...
Blue Rev / Alvv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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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Rev / Alvvays 앨범의 타이틀인 ‘Blue Rev’는 보컬 몰리 랭킨(Molly Rankin)과 키보디스트 케리 매클레난(Kerri MacLellan)이 십 대 시절 즐겨 마시던 음료의 이름이라고 한다. 강변에서 석양이 지는 풍경을 마주하며 푸른빛이 감도는 음료를 마시는 두 사람의 낭만적인 장면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 앨범의 작업 과정에 그러한 낭만적 풍경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2집 <Antisocialities> 이후 멤버들은 의욕을 가지고 <Blue Rev> 작업에 임했지만 현실에선 여러 가지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데모 테잎이 도난당하고, 연습실로 사용하던 베이스먼트 공간엔 빗물이 들어찼다. COVID-19 팬데믹 또한 작업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전작과 5년이라는 예정보다 긴 텀을 두고 발표된 <Blue Rev>는 결국 그룹이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완성도 있게 새 앨범을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앨범은 2집 <Antisocialities>에 이어 슈게이징 사운드를 더욱 심화해간 앨범으로 평가받으며 주요 음악 매거진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첫 곡 Phamacist는 노이즈를 잔뜩 풀어놓은 슈게이징 트랙이지만 개별적 소리들이 서로 뭉개지지 않고 비교적 선명히 들려온다. Easy on Your Own?에서는 더욱 묵직한 분위기의 보컬을 내세우지만 특유의 씁쓸하며 로맨틱한 멜로디로 청자의 의식을 유영하도록 이끈다. 가사는 흔들리는 청춘의 고뇌를 담았다. ‘난 학교를 그만뒀어 / 대학 교육은 따분한 칼날일 뿐(I dropped out / College education’s a dull knife)’이라는 노랫말을 시작으로 화자는 내외부적으로 겪는 절망적 상황들을 반항적 시각과 함께 돌파해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끝났다고 말해요(If you don’t like it, well / Say it’s over, well)’. 위와 같은 도전...
Deeper Well / Kacey Musgr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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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er Well / Kacey Musgraves 지난주 다루었던 다미엔 주라도 만큼, 어쩌면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음악으로 손을 뻗기까지는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 했을 것이다. 뮤지션에 대한 내 관심이 아직 덜 무르익었을 때부터 <Deeper Well>을 들으며 그녀에 대해 알고자 하고 음악들과 친해지려고 했다. 서정적이며 차분한 분위기의 포크 곡 Too Good to Be True를 반복해 들을 때에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Deeper Well>이 컨트리 팝 싱어송라이터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여섯 번째 앨범이라는 사실이었다. 뜻밖에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하게 된 <Golden Hour>가 러스턴 켈리(Ruston Kelly)와 사랑에 빠졌던 행복한 시절 그려낸 이야기들이라면, <Star-Crossed>는 그와의 결별 이후 시작된 앨범으로, 상실의 아픔을 통과해야 하는 한 인간이자 뮤지션으로서의 성취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던 작업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2024년 도착한 <Deeper Well>은 끊임없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답 없는 질문들을 돌파해 가야 하는 아티스트로서 한 단계의 특별한 도약을 보여준다. 그녀는 보다 열린 사고로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거나 읽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자연에 더욱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점성학, 자연, 죽음, 신 등 대체로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미지의 테마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그런 것들을 노래 속 이야기의 밑바탕에 두고 있다. 앨범의 첫 곡 Cardinal은 그러한 초월적 견해가 전개되는 시작점이자 전환의 동기를 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이 곡은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시기 고인이 된 컨트리 가수 존 프린(John Prine)과 관련한 경험에서 빚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디널(홍관조)은 사랑했던 이가 죽으면 이승에 남은 사람들에게 곧잘 나타나는 상징적인 새라고 알려져 있다. 천국...
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 / Damien Jur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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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and Sisters of the Eternal Son / Damien Jurado 자기만의 신 이야기 다미엔 주라도는 역시 조금 생소한 뮤지션이 아닐까. 우리나라에 유난히 덜 알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물론 그의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음악에 노출되는 것을 충분히 허용하던 시절 내 귀에 그의 음악이 들려왔던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나는 ‘주라도(Jurado)’라는 그의 독특한 성을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Ghost of David>의 수록곡 Tonight I Will Retire를 몇 번 반복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피아노와 미니멀한 리듬 악기 구성으로 된 우울하고 절망적인 톤의 인디 포크 송. 하지만 내 관심은 뮤지션에 관한 더 깊은 탐구에 이르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런 그의 음악을 다시 찾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가 바로 그 매개였다. <바튼 아카데미>는 내가 정말 모처럼 극장에 가서 본 영화였는데, 2시간을 웃도는 상영 시간 동안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선 신기하게 느껴지던 영화였다.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의 영화를 ‘최고'라 손꼽는 시네필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디센던트>, <네브라스카>, <다운사이징> 등을 무척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그의 영화들은 조금 독특한 지점에서 유머를 이끌어내고 있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다소 냉소적인 시선이 배어든 유머라고 할까. <바튼 아카데미>는 눈에 띄는 전개도 없고, 배경도 1970년대이며 장소는 사립 기숙학교다. 보다 디테일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 전후로, 기숙사 생활을 하던 학생들이 홀리데이 시즌을 맞아 저마다 가족을 찾아 흩어진 다음이다. 영화는 전형적인 홀리데이 풍경 밖을 맴돌아야 하는 인물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늘 학생들로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