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4의 게시물 표시

헤어질 결심 Soundtrack / 조영욱과 사운드트래킹스

이미지
  이따금 수사물 영화의 세팅은 험한 말이나 조잡한 대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히스테릭한 풍경을 쉽게 연출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헤어질 결심>의 주요 인물 서래가 중국인이라 한국어에 서툴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 내려진 뜻밖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서래의 이방인다운 한국어와 유창한 중국어는 영화의 흐름에 균열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서래가 사극에서 배운 듯 고풍스러운 어휘를 사용할 때마다 해준이 멈칫하듯이, 서래의 말은 영화의 템포를 불현듯 늦추곤 한다. 서래가 사용하는 ‘마침내'나 ‘단일한'이라는 표현은 구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구어적으로 사용했을 때 분위기가 꽤 어색하고 우스워진다. ‘말씀으로 해드릴까요, 사진으로 할까요'라는 물음에 ‘말씀'이라고 대답하는 것도. 떠올려 보면 외국인의 한국말 ‘부족’ 현상이 자아내는 것은 빈틈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맺게 되는 이상한 하모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경찰과 간병인을 주인공들의 직업으로 삼으며 영화나 일상에서 제법 익숙한 테마들을 다루었지만, 안개 가득한 ‘이포'라는 가상의 도시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솜씨로 일상적이면서도 낯선 빛깔과 리듬을 장면에 부여해 관객을 매혹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은 해준과 서래의 로맨스이다. 해준이 형사이고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데 반해, 서래는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남편을 둘이나 잃었으며,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종잡을 수 없는 영혼이자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혼돈스러운 삶이 이어지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해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다. 해준은 서래에게 자상함을 보여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이유에서 금기가 되거나 결코 나란히 두지 못할 만한 것이 된다. 가능한 한 가장 멀리 있는 존재를 사랑하도록, 마치 두 사람에게 그런 벌이라도 내려진 것만 같다. 사실 이러한 ‘금기적' ...

Call Me by Your Name Soundtrack / Various Artists

이미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안-아메리칸 작가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는 17세 소년 엘리오와 대학원생 올리버가 만나 서로 사랑에 눈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게이의 사랑이다. 이 주제는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전작들인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다뤄진 ‘욕망’ 에 맞닿아 있고, 결국 감독의 ‘욕망의 발현’ 3부작을 완결하는 작품이 되었다. 엘리오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이성 친구 마르치아와도 교제를 한다. 하지만 마르치아를 향한 엘리오의 마음은 올리버를 향한 것과는 조금 다른 듯 비춰진다. 그 차이는 대상이 이성인지 동성인지 같은 근본적인 다름이나 단순히 엘리오의 마음에서 더 끌리는 대상이 지닌 특이성이나 고유성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올리버가 ‘손님'으로 이곳에 왔고, 곧 떠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싶은 심리가 엘리오의 무의식중에 자리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향해 강한 욕망을 느꼈다면 그 욕망은 대상을 잃는 것 또한 강하게 거부하려 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동성을 향한 사랑이 다소 금기 같아서,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비밀로만 간직해야 할 것 같아서, 첫사랑이자 첫 경험이어서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더 애틋함을 느꼈을 수 있다. 영화 내부에는 엘리오의 사랑을 질타하는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엘리오의 부모님도 그런 문제에 있어서 관대한 지성인 계층으로 설정되어 있고, 심지어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교수는 엔딩에 다다라서 아들에게 무척 의미심장하고 따스한 조언을 건넨다. 우리 몸과 시간, 관계라는 것은 유한하기에 그것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들이 부여하는 고통 또한 침착하게 받아들이며 시련을 통과해 나가기를 바라는 그의 조언은 엘리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고할 만하다. 그저 ‘작업 멘트'인지...

Evil Does Not Exist(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Soundtrack / Eiko Ishibashi

이미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최근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의 미니멀리즘 미학을 수행한다고 할 만큼 군더더기 없는 영화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단순한 스토리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사슴이 서식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 하라사와에 타쿠미와 그의 딸 하나가 둘이서 살아가고 있다. 조용하던 마을에 글램핑장을 설립하고자 하는 한 업체가 나타나고, 머지않아 마을에서 설명회가 열린다. ‘플레이모드' 직원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노린 술수를 숨긴 채 그저 형식적 절차에 임하듯 허술한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데, 마을 주민들은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고 시행 계획을 수정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이 설명회 시퀀스가 영화에 그려진 가장 표면적인 충돌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과 글램핑장 설립 계획의 충돌은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대립과 시골과 도시의 대립, 상업과 탈 상업적 가치의 대립으로 읽히기도 한다. 마을의 대표적 상업 공간인 식당조차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하라사와 물의 신선도에 경도된 미네무라 부부가 도쿄에서 이주하여 시작된 가게로, 영화는 아내 사치가 정성 어린 태도로 우동을 만들어내는 장면도 담아낸다. 영화는 비록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비트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몽매함을 냉소하거나 헐뜯고 있다. ‘자본의 논리'로는 결코 개입할 수 없고 참여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온전히 자연의 생명력으로 움직이는 오지 마을 하라사와의 무대 위에서 말이다.   설명회에서의 충돌이 영화에서 일어난 첫 번째 큰 사건이라면, 두 번째로 큰 사건은 결말부에서 일어난다. 두 번째 사건은 첫 번째와는 다르게 미스터리하고 무자비해 관객을 충분히 혼란에 빠트린다. 타쿠미는 건망증이 있는데 종종 하나를 픽업하러 가는 시간을 잊어버린다. 타쿠미의 건망증은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엄마가 부재하는 가정에서 치명적인 사건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기에 실은 매우 심각한 병이다. ‘플레이모드' 직원인...

All Born Screaming / St. Vincent

이미지
  세인트 빈센트는 자신의 일곱 번째 앨범 <All Born Screaming>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장 재미없는 앨범이에요'라고 말했다( https://ilovestvincent.com/pages/about-all-born-screaming ). 이전 작,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영화에 나올 법한, 다소 우스꽝스럽고 천박해 보이는 B급 컨셉을 표방한 <Daddy’s Home(2021)>이나 모큐멘터리 <The Nowhere Inn>의 주요 영상 등을 보면 그녀가 뮤지션이자 배우로서 내보이는 개성과 비틀린 유머 감각이 얼마나 젊고 발칙한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반체적이며 팜므파탈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버클리 음대를 중퇴하고 음악 산업의 현장 속으로 뛰어든 아웃사이더적인 면모와 당찬 자신감. 세인트 빈센트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보면서, 그녀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도약을 거치며 음악계의 색다른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세인트 빈센트의 일곱 번째 앨범 <All Born Screaming>은 직설적이고 담백한 태도로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 앨범은 꽤 진지한 톤을 갖고 있다. 이는 ‘전염병 이후(post-plague)’ 뮤지션의 질문이 보다 원초적인 곳을 향해 던져졌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모두 ‘비명을 지르며 태어’났고,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이 세상으로 떠밀려 나온 존재가 호흡을 시작했다는 뜻이므로 좋은 신호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앨범은 커버 이미지부터 파격적이고 저주스러우며 금기스럽다.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지점은 이것이 ‘전염병’ 이후의 고민에서 비롯된 작품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모든 일상적인 일들이 마비되었던 그 시기 문득 죽음에 대해 내다보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큰 탈이 없는 듯 지나왔지만 들여다보면 내부는 참혹했고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