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5의 게시물 표시

Out of Season / Beth Gibb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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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어두운 노래는 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그런 음악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베스 기번스에 이르렀다. 베스 기번스는 지금까지 세 장의 솔로 앨범을 냈다. 첫 번째는 2002년 나온 <Out of Season>, 두 번째는, 솔로 앨범이라고 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는, 폴란드의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Henryk Górecki)의 심포니 3번 ‘비통한 노래들의 심포니(Symphony of Sorrowful Songs)’ 라이브 앨범이다. 폴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가 지휘자로 나선 이 앨범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볼 수 있었는데, 무거운 선율이 이어지는 1악장은 일상에 달라붙어 미동 없던 감정을 쉽게 건드리며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아마도 기억 속에 ‘트립 합’이라는 라벨이 그룹 포티쉐드(Portishead)의 음악에 달라붙어 있었던 것 같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트리키(Tricky) 그리고 뷰요크(Bjork)의 초기 앨범들도 거기에 속했다. 포티쉐드의 음악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잊혀질 만큼 그리 각별하게 여겨지던 음악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Glory Box가 자아내던 이미지는 매우 강렬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포티쉐드의 음악을 들어보았을 때, 정작 그들에게 메인스트림의 성공을 가져다준 <Dummy>보다 오랜 텀을 두고 나온 <Third>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듣자마자 반해버린 곡은 Hunter. ‘만일 내가 넘어진다면, 나를 붙잡을 거야? 나를 그냥 지나칠 거야? 그저 잠시 기다려달라는 것 말고는 내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리란 걸 알잖아(And if I should fall, would you hold me? / Would you pass me by? / For you know I'd ask you for nothing / Just to wait for a while)’는...

Igor / Tyler, The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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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를 단순히 힙합 뮤지션으로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얼터너티브 힙합 컬렉티브 Odd Future 시절부터 그는 다방면의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자신과 다른 멤버들의 곡을 프로듀싱하고, 스케치 코미디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거나 멤버들과 공동으로 연출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패션 브랜드 ‘골프 왕(Golf Wang)’을 론칭한 뒤로 유서 깊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컬렉션에도 참여하게 된다.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루이비통의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예술 감독이 된 이후,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2024년 남성복 컬렉션을 타일러와 협업해 진행한 것이다. 타일러의 루이비통과의 인연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에는 패션쇼의 음악 디렉터로 참여해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한다.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살아가던 유년 시절의 그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학창 시절 발을 들인 드라마 클래스, 밴드 클래스에서는 여러 이유로 인해 쫓겨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말한다. 어린 시절의 ‘센 척’이라 해도 충분히 반감이 일어날 수 있는 발언들이 인터넷에선 끝없이 회자된다. 초기 앨범의 가사에 담긴 파격적이고 수위 높은 내용들로 인해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로부터 방문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까칠한 성미로 일부 동료 뮤지션들과의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 일부러 트러블을 만들고 다니는 것 같은 악동의 이미지와 함께 뮤지션으로서 자리해 간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행보에서 눈에 띄는 이점은, 좌절되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듬어 간 부분일 것이다. 2009년 데뷔 앨범 <Bastard>가 나올 때까지 근성 있게 마이스페이스에 음악을 올리며 여느 이십 대가 그러하듯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말이다. 타일러 더 ...

The Soul Album / Otis Re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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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게이와 아레사 프랭클린에 이어 이번에 오티스 레딩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만의 솔 음악’ 3부작을 구성해보게 되었다. 오티스 레딩의 이력을 살펴보면 아레사 프랭클린과 유사한 부분이 꽤 많다. 그도 어린 시절 침례교 교회를 거쳤고, 학교생활에 집중하기보단 일찍 음악계에 발을 들였고, 샘 쿡(Sam Cooke),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같은 뮤지션들을 자신의 확고한 음악적 롤 모델로 삼았다. 가스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오티스 레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택스(STAX) 레이블을 빠뜨릴 수가 없다. 마빈 게이가 모타운(Motown)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면 오티스 레딩은 스택스의 대표 주자였다. 미국에서는 지역적 특색으로 솔 장르를 크게 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설립된 모타운과 멤피스에서 태동된 스택스(Stax),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Philadelphia International)로 구분했다. 스택스는 남부 지역인 멤피스를 근거지로 한 만큼 서던 솔(Southern soul), 블랙 가스펠, 컨트리, 블루스 등을 접목한 참신하고 매력적인 음악으로 점차 입지를 굳혀 갔다. 당시 멤피스에 고조되던 인종 갈등의 긴장 속에서도 스택스는 인종 통합의 사례를 보여주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레이블의 에센셜 레코드들 중 하나인 <Green Onions>의 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 & The M.G.’s)도 흑인과 백인이 섞인 멤버 구성을 하고 있었다. 스택스의 자회사인 Volt라는 레이블도 있는데, 오티스 레딩은 원래 Volt 소속이었다. 기타 연주자 조니 젠킨스(Johnny Jenkins)를 차에 태워 세션 장소에 데리고 왔다고 하는 걸 보면 그 당시에 그는 레이블의 심부름꾼 같은 역할도 했던 것 같다. 부커 티 앤 더 엠지스와 조니 젠킨스의 세션이 마치고 우연히 오티스 레딩에게 기회가 주어져 그는 자신이 만든 두 곡을 불렀다. 하나는 Hey Hey Baby, 다른 하나...

Amazing Grace / Aretha Frank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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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아레사 프랭클린은 침례교 목사이자 순회 설교자이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0대 시절 어머니의 이른 죽음을 맞이한 뒤로 아버지를 따라 ‘가스펠 카라반’ 생활을 하며 투어를 하고 레코드를 녹음하기도 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에 뿌리가 되는 가스펠은 1960년대 미국에서 점차 확립되어 간 솔 음악이 태동할 수 있었던 근원이었다. 솔과 팝 보컬리스트로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이후인 1972년 그녀는 자신이 소녀 시절에 불렀던 음악들을 다시 찾았다. 1972년 아틀란틱을 통해 처음 나온 <Amazing Grace> 바이닐 레코드는 비평과 세일즈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가스펠 장르의 레전드 라이브 앨범으로 남았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그녀가 작고한 뒤인 2018년 이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라이브 앨범을 레코드로 감상하는 데 있어 영상 자료가 보충된다면 그것은 필히 두 배의 감동을 이끌어낼 것이다. 이 레코드를 감상할 때 다큐 <Amazing Grace>를 시청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다큐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뉴 템플 교회에서 이루어진 이틀에 걸친 공연의 전반적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노래하는 모습은 물론, 전반적인 사회와 곡 소개 그리고 피아노 반주를 맡은 제임스 클리블랜드(James Cleveland)의 모습, 무대의 분위기, 청중들의 열정적인 반응, 합창단원들이 활약하는 모습 등 사소한 부분들까지 말이다. 열창을 한 그녀의 얼굴에 땀이 맺히고 눈 화장이 번진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은 딸의 얼굴을 닦아주는 모습 또한, 레코드가 담아내지 않는 장면들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Precious Lord, Take my Hand / You’ve got a Friend를 들으면 가스펠이나 CCM에 친숙하지 않아도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함이 스칠 것이다. 캐럴 킹(Carole King)의 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