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5의 게시물 표시

Mickey 17 Original Soundtrack / Jung Jae 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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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라는 미지의 무대는 인간에게 상상 이상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상상 이상으로 유해할 수도 있다. 목숨이 하나뿐인 불완전한 인류에게 수차례 재생산이 가능한 ‘익스펜더블’이 있다면 과학적 발전의 가능성은 매우 효율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계속해서 죽어야 하는’ 익스펜더블의 운명을 살게 된 미키의 캐릭터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쉽게 눈물을 쏟을 만큼 감성적이고 화를 낼 줄 모르고 저항할 줄 모르는 나약하고 순종적인 성격으로 그려졌다. 하긴, 빚에 쫓겨 도망친 처지에 우주에 갔다고 한들 무슨 인생 반전이 일어나길 바라겠는가. 한마디로 ‘루저’ 같은 ‘미키’는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웃음과 연민, 그리고 공감을 동시에 자아낸다. 미키 17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두텁게 만드는 존재들은 아마도 미키 18과 나샤일 것이다. 미키 18은 미키 17이 가진 본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소유자로 둘은 서로의 분신과 같고, 나샤는, 1부터 17 가운데 어떤 특정 성격의 미키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리프린트 되는 미키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초반에는 나샤와 미키가 품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육체적 갈망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가볍게 비춰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나샤가 ‘특공대’급 역량을 지닌 보안요원에서 불의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세우며 온화한 ‘여성 지도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서, 완전한 형태의 사랑, 숭고한 사랑의 모습으로 점진적으로 이행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은 것이 <미키 17>인가, 하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좀 고민이 되지만, 아무튼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음악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정재일이란 뮤지션의 이름에 오래 노출되어 왔지만 제대로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데뷔 초기의 긱스 활동이나 창작국악그룹 푸리, 소리꾼 한승석과 함께한 크로스오버 성격의 작업이나 미술가 장민승과 함께 한 ‘상림’ 프로...

Flora / Hiroshi Yoshi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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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무엇일까. 음악은 휴식이다. 음악은 나누는 것이다. 음악은 듣는 것이다. 물론, 음악은 라이브를 통해 보거나 ‘경험’될 수도 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음악 감상’에 한정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책과 영화는 시각 활동을 요구하지만 음악은 오직 청각에 의존한다. 집에서 바이닐 레코드를 듣는 일은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만일 그 레코드에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노래가 담겨 있다면 그와 나의 거리는 측정할 수 없거나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돼버릴 것이다. 위에서 내린 정의에 의하면 음악 감상은 ‘보는’ 행위, 혹은 ‘보기의 강요’로부터 정당하게 멀어질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간을 떠다니기 시작하는 일련의 결합된 소리 덩어리들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며 이미지인 형태로 다가와 마음의 심상을 이끌어낸다.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잡념을 떨치고 내면 혹은, 다소 비일상적인 의식의 어떤 층위에 깊이 잠겨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레코드인 히로시 요시무라의 <Flora>는 그런 면을 더욱 강조하는 작품이다. 히로시 요시무라는 일본 태생의 작곡가이자 사운드 디자이너였다. 그는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존 케이지의 전위적 음악, 플럭서스(Fluxus)의 실험 정신, ‘furniture music’(배경 음악)이라 명명된 에릭 사티의 작업 등에 큰 영감을 받아 아티스트다운 컴포지션들을 생산했고, 한편으로 그의 음악은 전시나 공간의 배경 음악에 대한 의뢰를 통해 공공의 목적에서 제작되고 소비되는 경향도 있었다. 이 두 갈래에서 이 뮤지션만의 균형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본능과 직관에 가까운 예술적 표현 욕망과 공공의 목적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타적 욕망 사이에서. 그의 음악은 차분하고 평화로우며 이지적이다. 부담스럽지 않고 걱정을 끼치는 법도 없다. 문득 템포를 늦추고 시야를 넓혀 주변 풍경을 둘러보도록 이끈다. 히로시 요시무라의 작품들 가운데 ...

Glory / Perfume G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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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퓸 지니어스의 <Glory>는 올해 나온 뮤지션의 일곱 번째 앨범이다. 요즘 나온 음악들 가운데 솔깃하게 들려온 앨범이라 리뷰해 보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최근 앨범 <Glory>에 대해 쓰기 위해 혹은 더 면밀히 알아 보기 위해 뮤지션의 이전 음악들을 되짚어 보았다. <Too Bright (2014)>, <No Shape (2017)> 그리고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2020)>를 중심으로 그의 음악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세 가지 앨범을 최소한의 고리로 연결해 보려 했다. 그의 이야기들은 투병하는 존재로서의 고통, 성소수자로서의 부딪침 등 비교적 명확한 테마들을 다루고 있었다. 주제의 깊이에서 오는, 종종 신화적으로 들리는 탈 세속적 사운드와 분위기 조성은 마이클 알든 헤드레어스(Michael Alden Hadreas)의 페르소나 퍼퓸 지니어스의 독보적인 캐릭터 형성과 존속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Too Bright>의 Queen과 Too Bright, <No Shape>에서는 Wreath, Die 4 you가 유난히 인상 깊었다. Die 4 you는 남다른 장악력을 가진 곡이었는데 뮤직비디오에도 잘 그려져 있지만, 욕망의 대상에게 구속된 존재의 움직임을 포착한 듯 관능적이고 비극적인 매혹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곡이었다.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의 첫 곡 Whole Life의 가사도 와닿았다. ‘인생의 절반이 지나가버렸어 / 그것이 떠다니도록, 씻겨 흘러가도록 해 / 내가 꾼 꿈에 지나지 않아 / 꿈에 지나지 않아(Half of my whole life is gone / Let it drift and wash away / It was just a dream I had / It was just a dream)라는, 나이 듦에 대해 자각할 때면 종종 공감하게 되는 흔한...

Call Me If You Get Lost / Tyler, the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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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 그가 내세운 것은 ‘타일러 보들레르’라는 새로운 캐릭터다. “길을 잃으면 내게 전화해”라는 꽤 힘이 되는 이 메시지는 앨범의 곳곳에서 흘러나오며 마치 영화 음악의 라이트모티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여행의 테마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이 메시지와 함께 <Call Me If You Get Lost> 여정의 공식적인 가이드와 같은 DJ Drama의 멘트들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면서 유랑의 컨셉을 도입한 앨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랩과 솔 음악의 매끄러운 결합을 보여준 전작 <IGOR>와 비교하면 이 앨범은 노래보다 랩의 비중이 높고, 데뷔 초기 그의 음악에 붙어지곤 하던 라벨인 ‘호러 코어’ 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외로의 여행 혹은 자신의 유년기 터전이던 곳을 떠나는 낯섦과 희열을 동시에 지니고 (내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멋진 일은 / 이십 대 무렵 처음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떠난 거야 / 난 내 거품을 벗어났고 시야가 넓어졌지 / 내 여권은 가장 가치 있어(The greate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me was / Bein' damn near twenty and leavin' Los Angeles for the first time / I got out my bubble, my eyes just wide / My passport is the most valuable—MASSA), 롤스 로이스, 요트 같은 부의 상징들을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진심 어린 감정들을 새겨내는 (그리고 새로운 보트 왜냐하면 나는 바다에서 우는 게 나으니까(And a new boat 'cause I'd rather cry in the ocean–CORSO, ‘Yonkers’가 나왔을 때 엄마는 보호소에 계셨어 / 그녀를 데리고 나왔을 때, 그 순간 내가 성공했다는 걸 알았지(Mom was in the shelter wh...